조기성이 25일 일본 도쿄 아쿠아틱센터에서 열린 2020 도쿄패럴림픽 수영 남자 평영(SB3) 50m 예선에서 힘차게 물살을 가르고 있다. 도쿄/사진공동취재단
처음 시작은 “수영을 하면 걸을 수 있다”는 지인의 말 때문이었다. 선천적 뇌병변 장애를 가진 조기성(26)은 2008년 그렇게 수영을 시작했다. 대인기피증에 방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던 그가 세상으로 나온 계기였다.
무섭기만 했던 물은 희망을 키우는 공간이 됐다. 수영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2009년 수원시장배 장애인수영대회 자유형 50m에서 동메달을 차지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조기성은 “그 대회 전까지는 꿈이 없었지만, 메달을 처음 딴 뒤 삶의 목표와 목적이 생겼다”고 했다.
조기성은 수영에 소질이 있었다. 두 발 대신 두 손을 활용해 마음껏 물살을 갈랐다. “팔, 어깨 등 98% 이상 상체 근육을 사용해 경기를 운영”하는 스타일이다. 국내 대회를 넘어 각종 국제대회를 휩쓸었다. 그런 그가 이름을 널리 알린 건 2016 리우패럴림픽. 첫 패럴림픽 도전에서 그는 자유형(S4) 3관왕(50m·100m·200m)에 올랐다. 3관왕 달성 뒤 그는 “저처럼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들, 보이십니까? 여러분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힘내십시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정말로 수영을 통해 세상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자유형이 주 종목인 조기성은 이번 도쿄패럴림픽에서는 처음으로 평영에도 출전했다. 조기성은 25일 저녁 6시38분 일본 도쿄 아쿠아틱센터에서 열린 2020 도쿄패럴림픽 남자 평영(SB3) 50m 결선에 나서 51초58을 기록했다. 전체 8명의 선수 가운데 6위다. 메달권인 3위 스즈키 다카유키(일본)의 49초32에 2초26 뒤졌다. 전체 1위는 로만 자다노프(러시아패럴림픽위원회)로, 46초49를 기록해 세계신기록을 썼다.
조기성은 이날 결선에서 예선(53초11)보다 1초 이상 기록을 앞당기며 개인 최고기록을 썼지만, 평영 최강자들과 경쟁에서 조금 힘이 모자랐다. 경기가 끝난 뒤 조기성은 “기록을 깼기 때문에 만족하고 기분이 좋다”면서 “(평영에) 계속해서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조기성이 주 종목 자유형에 더해 평영까지 도전한 이유는 수영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조기성은 “자유형이 주 종목이라 계속 자유형만 하다 보니 기록에 대한 정체기가 와서 힘들었다. 이러다가 수영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 것 같아 새로운 종목인 평영에 도전했는데 기록을 줄여나가는 재미가 생겼다. 평영을 통해 수영에 대한 동기부여가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수영하는 게 재미있다”며 웃기도 했다.
조기성의 도전은 계속된다. 조기성은 26일 자유형(S4) 100m 예선, 30일 자유형(S4) 200m 예선, 내달 2일 자유형(S4) 50m 예선에 차례로 도전한다. 주종목을 앞둔 조기성은 “평영에서 역사를 쓰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자유형은 제 명성을 지키겠다”며 벼르고 있다. 조기성은 내달 3일 남자 배영(S4) 50m에도 나선다.
한편 한국 장애인 수영 간판 조원상(29)은 이날 남자 접영(S14) 100m 결선에서 58초45를 기록하며 출전선수 8명 가운데 7위에 올랐다. 2012 런던패럴림픽 남자 자유형(S14) 200m 동메달리스트인 조원상은 이번이 세 번째 패럴림픽 도전이며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예고했다.
패럴림픽 수영 종목은 크게 3가지로 분류한다. S는 자유형, 배영, 접영, SB는 평영, SM은 개인혼영을 뜻한다. 알파벳 옆 숫자는 장애유형과 정도를 의미한다. 1∼10은 지체장애, 11∼13은 시각장애, 14는 지적장애다. 숫자가 적을수록 장애 정도가 심하다는 뜻이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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