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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그림 그리고 글 쓰기 좋아하는 나는…도전의 스케이터”

등록 2021-05-12 04:59수정 2021-05-12 08:48

[‘찐’한 인터뷰]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 이해인
한창 트리플 점프 배울 때
귀가 않고 링크장서 잠 자기도
그림 곁들인 훈련노트 매일 적어
“‘내일은 홧팅’이라는 글 많아요
피겨 세계선수권 국내 최연소 톱10에 들었던 이해인이 지난달 21일 서울시 노원구 태릉아이스링크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피겨 세계선수권 국내 최연소 톱10에 들었던 이해인이 지난달 21일 서울시 노원구 태릉아이스링크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초등학교 2학년 때다. 김연아가 등장하는 아이스 쇼에 갔다. 가장 먼저 “반짝반짝 빛나는 의상”이 들어왔다. 얼음 위 점프는 마냥 신기했다. 그때부터 부모님을 졸랐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되고 싶다”고. 8년의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세계선수권 무대(3월 말 스웨덴 스톡홀름)에 섰고 한국 피겨 사상 최연소 세계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하루에 한가득씩 웃는 일이 있는 것 같다”는 초긍정의 이해인(세화여고) 얘기다.

봄 햇볕이 따스했던 지난 4월 말 태릉 빙상장에서 만난 이해인은 16살 사춘기 학생 같다가도 피겨 얘기를 할 때는 사뭇 진지했다. 좌우명이 “시도조차 안 하면 성공할 기회조차 없다”라고 답할 때는 더욱 그랬다. 그런 삶의 모토가 지금의 작지만 강한 이해인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세계 주니어그랑프리 2개 대회 연속 우승 등 떡잎부터 남달랐던 선수다.

신기하기만 했던 트리플 5종 점프를 초등학교 5학년 즈음에 다 뛰었다. 가장 무서운 점프는 앞으로 가다가 정면을 보고 뛰어오르는 악셀 점프였다. 공중에 떴다가 곧바로 얼음판으로 ‘쿵’ 떨어진 적도 많았다. 점프가 안되는 날은 엉엉 울기도 했다. 점프가 잘 될 때는 아예 귀가하지 않고 링크장 안에서 잠을 잔 적도 있다. 자정 넘어 새벽 2시까지 연습하다가 잠을 자고 다시 오전 7시에 연습하는 식이었다. “한창 트리플 점프를 배울 때여서 조금이라도 더 뛰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했다.

훈련 노트는 매일 적는다. 스케이트 타면서 잘된 것, 안된 것 등을 적고 그날의 소소한 일상도 그림과 곁들여 기록한다. 이를테면 “스케이트를 타다가 바람이 불어 속눈썹에 물이 묻었는데 주위에서 우느냐고 물었다”와 같은. 이해인은 “나중에 읽어보면 오글거리는 글도 많다. ‘내일은 홧팅’이라는 말도 많다”며 웃었다. 가장 최근에 적은 내용은 “엄마가 김치볶음밥을 해줬다.” 김치볶음밥은 이해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세계선수권 출전 당시 현지에서 제일 먹고 싶던 음식이기도 했다.

피겨 세계선수권 국내 최연소 톱10에 들었던 이해인이 지난달 21일 서울시 노원구 태릉아이스링크장에서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피겨 세계선수권 국내 최연소 톱10에 들었던 이해인이 지난달 21일 서울시 노원구 태릉아이스링크장에서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나이답지 않은 풍부한 연기력은 노력의 산물이다. “영화 등장인물 표정을 따라 해보기도 하고, 팝송 노래에 맞춰 이런저런 표정을 지어본다.” 집에 있을 때는 큰 거울 앞에서 표정 연습을 하는데 “처음에는 가족들이 볼까 몰래 하다가 이제는 그냥 드러내놓고 한다.” 가장 자신 없는 것은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냥 째려보는 것 같다”고 한다. 같은 소속사 김연아의 도움은 없었을까. 이해인은 “2019~2020시즌에는 빙상장에 와서 안무도 봐주시고 도움도 많이 주셨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로는 기회가 없었다”면서 “나중에 만나면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꼭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19로 국내외 대회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갑자기 목적을 상실해” 심한 가슴앓이를 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 훈련할 수 없을 때는 스케이트장을 찾아 대전까지 내려가기도 했던 때였다. “너무 힘들어서 관둘까 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집중해서 얻은 결과물이 시니어 데뷔전 세계 톱10의 성적이다. 이해인은 “세계선수권에서 잘해서 10등 안에만 들면 좋겠다 싶었는데 너무 기뻤다. 나 자신을 토닥여주고 싶은 점수를 받았다”고 했다.

이해인(세화여고)이 3월24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2021 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연기를 펼치고 있다. 스톡홀름/AP 연합뉴스
이해인(세화여고)이 3월24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2021 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연기를 펼치고 있다. 스톡홀름/AP 연합뉴스

빙상장 밖에선 그저 감성 풍부한 고등학생으로 돌아가는 이해인의 취미는 그림 그리기. 늘 수첩이나 공책을 들고 다니는데 곧잘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쓴다. 최근에는 가족들 초상화를 일일이 그렸다. “제법 닮게 그렸다”는 게 가족들의 평이었다. 인터뷰 내내 이해인은 가족 얘기를 했는데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일도 온 가족이 다 함께 떡볶이를 먹은 일이라고 했다. 훈련과 대회 참가 등으로 4살 위 언니까지 네 가족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뭔가를 먹은 게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이해인에게 피겨는 “배움의 연속”이다. “매일 스케이트를 탈 때마다, 대회에 나갈 때마다 배우는 게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계선수권 때는 “체력이 부족하고, 스핀 레벨이 부족하고, 기술을 더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프리 스케이팅 때 점프 3개를 남겨놓고 힘들다는 느낌이 있어 체력 훈련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지금은 하체 훈련에 매진 중이다. 다행히 요즘 조금씩 힘이 붙는 느낌이 든다. 다이어트는 힘들지만 “살을 빼기 보다는 근육을 키워서 무거움을 이겨버리자”고 생각한다. 긍정은 이해인의 가장 큰 무기다.

그의 좌우명처럼 한 번의 점프를 더 뛰기 위해, 한 번의 스핀을 더 돌기 위해 도전을 이어왔던 이해인.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대표 발탁을 목표로 다시금 스케이트 부츠 끈을 꽉 조이고 있는 그는 얼음판 위로 들어가며 속삭인다. “잘해보자. 할 수 있어. 나야, 오늘도 잘 부탁해.”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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