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양말은 언제까지 신을까?’ 대회에 참가하면 질 때까지 같은 양말을 신는 서리나 윌리엄스(미국)가 10일(현지시각) 열린 2라운드 경기 때 서브를 하는 모습. 멜버른/로이터 연합뉴스
스포츠 선수들은 경기 전 달걀 후라이를 절대 먹지 않는다. 경기에서 “깨질까 봐”서다. 죽도 기피 음식이다. 당연히 “죽 쑬까 봐”서다.
따르자니 귀찮고, 안 따르자니 꺼림칙하다. 징크스(혹은 루틴)란 게 그렇다. 한 경기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스포츠 선수들은 오죽하겠는가.
호주 멜버른에서 한창 진행 중인 호주오픈 테니스. 선수들의 징크스도 각양각색이다. 남자 메이저대회 통산 최다 우승 기록에 도전하는 라파엘 나달(스페인)은 ‘징크스 덩어리’다. 코트에 꼭 라켓 하나만 들고 등장하고 반드시 오른발로만 선을 넘어 코트에 들어선다. 의자 앞에는 차가운 물병과 차갑지 않은 물병 두 개가 놓여 있어야 하는데 이때 상표를 코트 쪽으로 향하게 둔다. 공을 칠 동안 발놀림 순서 또한 매번 같아야 한다. 서브할 때는 반드시 신체 7개 부위를 만진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로저 페더러(스위스)는 숫자 ‘8’에 유독 집착한다. 8개의 테니스 라켓을 들고 다니며 세트가 끝날 때마다 코트에 물병 8개가 있는지 꼭 확인한다. 경기장 타월도 8개가 있어야만 한다. ‘테니스 여제’ 서리나 윌리엄스(미국)는 양말에 민감한데 대회 기간 질 때까지 같은 양말을 계속 고집한다. 지는 날이 양말을 갈아신는 날이다. 허리 시술을 받고 재활중인 정현은 경기 당일 양치질을 한 후 정확히 6번 헹구는 습관이 있었다.
역대 테니스 선수 중 가장 충격적인 습관은 앤드리 애거시(미국)가 갖고 있다. 애거시는 우연찮게 속옷을 입지 않고 경기를 치르고 강한 적을 물리친 뒤부터 계속 경기 때 속옷을 입지 않았다. 코트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주요 부위를 노출했을 법도 한데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회 마지막 날은 항상 빨간색 옷을 입는 타이거 우즈. 연합뉴스
골프 선수들의 루틴도 다양하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대회 마지막 날 빨간 셔츠를 입는다. 김세영 또한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빨간 바지를 입는다. 맨 처음 시작이 ‘우즈 따라하기’였는데 역전 우승이 많아 이젠 ‘빨간 바지의 마법사’, 혹은 ‘빨간 바지의 승부사’로 불리기까지 한다. 우즈, 김세영과 달리 메이저대회에서 9차례 우승했던 게리 플레이어(남아공)는 항상 검은 옷을 입었다. 그가 ‘블랙 나이트’(검은 기사)로 불리는 이유다.
톰 왓슨은 골프 코스에 경기 전 소금을 뿌리고는 했다. “경기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프로 데뷔를 하지 않고도 7년 동안 유에스오픈 4회, 디오픈 3회 우승에 빛났던 바비 존스는 경기 전 항상 모차르트, 비발디 등의 클래식을 들었다. 벤 호건은 경기 당일 국수를 즐겼으며 샘 스니드는 특정 초콜릿 바(킷캣)를 매일 먹었다. 이 밖에도 4라운드 내내 같은 번호의 골프공을 쓰는 선수도 있다. 왜냐고? 안 하면 불안한 ‘징크스’ 때문이다.
KBO리그에서는 은퇴한 박용택과 김태균이 항상 경기 전 30분 정도 라커룸에서 낮잠을 잤다. 작년 신인왕 소형준(KT 위즈)은 경기 전날 “경건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 숙소를 깔끔하게 청소하고 경기 때는 항상 같은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주문해 먹는다. 은퇴한 정근우는 경기 전 절대 밥을 말아먹지 않았는데 “경기를 시원하게 말아먹을 수 있어서”였다. 작년에 한국인 메이저리거 타자로는 최초로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은 최지만(탬파베이)은 경기 때 늘 검은 팬티만 입는다. “불안해서 팬티에 구멍이 나도 입는다.”(최지만)
여자배구에서 임명옥(한국도로공사)은 홍삼을 멀리한다. “먹으면 아팠기 때문”이다. 대신 남편이 사주는 비타민으로 체력 보강을 한다. 강소휘(GS칼텍스)는 경기 전 리시브 연습을 많이 안 하는 편이다. “너무 많이 하면 오히려 다리가 풀려서 경기 중 리시브가 더 안 되기 때문”이다. 부용찬(OK금융그룹)은 경기 전 일부러 조용한 음악을 골라 듣는다.
안 만들려고 해도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징크스. 새해에는 과연 어떤 징크스들이 만들어질까.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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