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한국여성산악회 이승형 회장
“역시 산악인들의 우정은 따뜻하고 강한 것 같아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성균관대의 공연장 대관이 취소되는 바람에 희망나눔 음악회를 안타깝게도 취소했거든요. 하지만 이미 예매한 관객들 상당수가 환불 받지 않고 그대로 후원을 해주기로 했어요. 아웃도어전문업체 블랙야크와 오들로에서도 약속대로 후원을 해준다고 하고요. 그래서 올해는 ‘모금행사’로 하기로 했어요.”
오는 12일 ‘제10회 희망나눔 음악회’를 준비했던 이승형(63) 한국여성산악회장은 3일 산악인들의 온정 덕분에 ‘산악인 고 김형일 가족돕기’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며 안도했다.
여성산악회는 1993년 첫 여성 히말라야 원정대 파견을 계기로 창립했다. 그뒤 유명무실해졌다가 2002년 재결성해 740명이 가입해 있다. 산에서 다치거나 숨진 산악인과 그 유가족들을 돕자는 취지로 2011년부터 희망나눔 음악회를 열어 지금껏 13명에게 1억원 이상을 후원했다.
다치거나 숨진 산악인·가족 위해
“10년째 십시일반 13명 자활 도와”
12일 예정 ‘희망나눔 음악회’ 취소
관객들 환불 대신 ‘성금’ 모금하기로 삼남매 모두 스포츠클라이밍 대표
김자하·자비·‘암벽여제’ 자인씨 키워
“2011년 첫 음악회는 권혜경 부회장이 우연히 영월의 한 요양원에서 2006년 북한산 인수봉 추락사고 이후 소식이 끊겼던 김기섭씨를 만나면서 시작됐어요. 대학 산악회 때부터 수많은 등정 루트를 개척한 김씨가 경추가 마비되는 바람에 생활고에 쫓겨 산골의 요양원에 의탁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여성산악회 회원들끼리라도 십시일반 성의를 모으기로 한 거예요.”(이 회장)
“그때는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노래 연습을 해서 직접 공연을 했는데 그 준비과정부터 참 재미있었어요. 록그룹 부활의 리더 김재희씨 등이 찬조 출연을 해주고, 산악인 출신 독지가가 500만원을 희사해주고,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님이 서울 청담동 킹콩빌딩의 청담아트홀 무료 대관도 해준 덕분에 첫 음악회가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요.”(권 부회장)
이듬해부터 입장권을 발매하고 재능기부해준 강산에를 비롯해 초대 가수도 섭외해 정식 공연을 하게 되면서 희망 나눔 음악회는 여성산악회뿐 만 아니라 전체 산악인들의 잔치로 자리를 잡았다. 4년간 공연 수익금의 일정액을 후원받은 김씨는 재활에 성공해 지금은 기자 경험을 살려 책을 쓰고 시인으로도 활동중이다. 1984년 한국 여성 첫 안나푸르나 등정의 주인공이었으나 같은 산악인 남편과 불의의 사고로 사별한 뒤 2003년부터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김영자씨의 사연도 알려 후원을 했고, 그는 지난해 화가로서 전시회도 열었다. 오토바이 사고로 부상당한 산악인, 빙벽을 타다 추락한 산악인의 수술비, 추락사한 산악인의 유자녀의 대학 입학금, 케이2(K2봉) 원정대 출신 산악인의 위암 수술비 등 해를 거듭하면서 후원 수혜자도 다양해졌다. 기아차산악회의 김정근씨처럼 용돈을 모아 해마다 음악회에 기부하는 정기 후원자들도 늘고 있다.
올해 수혜자는 1998년 탈레이사가르 정상 등정 후 하산중 추락사한 고 김형진씨와 그뒤 2011년 촐라체봉 세계 최단 시간 등반에 도전했다가 산에 묻힌 친형 고 김형일씨의 부모다. 딸마저 위암으로 떠나 자식을 모두 앞세운 김씨 형제의 부모는 연로해져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 들어 세계 최고봉 무산소 등정에 잇따라 성공하면서 한국이 산악 강국으로 꼽히기도 하고, 산이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덕분에 등산·트레킹 인구가 전국민의 절반이 넘을 정도라고들 해요. 그에 비례해 사고 사례도 늘고 있지요. 히말라야에서 사망하거나 묻혀 있는 우리 산악인이 90여명을 헤아릴 정도니까요. 하지만 대부분 친목 활동으로 이뤄지다보니 산악인들을 위한 복지나 돌봄제도는 전혀 없는 형편이죠. 십시일반 후원 활동도 여성산악회의 음악회가 거의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 회장이 이처럼 산악인 복지 문제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단순히 여성산악회 대표라는 감투 때문만은 아니다. 그와 남편 김학은(65·전 대한산악연맹 고양시 부회장)씨 부부는 자타공인 ‘산악인 가족’이다. 40여년 전 겨울 소백산에서 등산 가이드와 초보 등산객으로 처음 만나 산악회 활동을 하며 결혼한 부부는 2남1녀 세남매를 모두 세계적인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도 키웠다. 큰아들 자하, 둘째아들 자비, 외동딸 자인씨의 이름조차 등산장비 자일의 ‘자’에 하켄의 ‘하’, 카라비너의 ‘비’, 인수봉의 ‘인’을 붙여 지을 정도다.
딸 자인씨는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 리드 최다 우승(28회) 보유자이자 2017년 높이 555m의 롯데월드타워 123층을 기구 없이 맨손으로 등반해낸 바로 그 ‘암벽여제’다. 2015년 결혼한 소방공무원 출신 사위 오영환씨가 최근 더불어민주당 ‘영입 인재 5호’로 총선에 나서면서 또한번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자하씨는 현역 은퇴하고 오랫동안 여동생 코치로 활약하다 지금은 중국 대표팀 코치가 됐고, 현역 대표선수인 자비씨는 지난해 천만 흥행 영화 <엑시트>의 주연배우들과 감독에게 암벽타기를 개인 지도해주기도 했다.
‘스포츠 클라이밍 1급 공인심판 여성 1호’로 자녀들 뒷바라지에 헌신한 이 회장은 2007년 자인씨가 대학에 들어간 뒤 여성산악회에 가입해 꾸준히 임원으로 활동을 해왔다. 등산과 음악을 함께 즐기는 에델바이스요델클럽의 부회장도 맡고 있다.
“2015년 네팔 대지진 때 ‘한국인 부부 낙석 맞아 중상’ 뉴스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 부부였어요. 그래도 또 산에 가야 마음이 편하니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그게 모든 산악인, 산꾼들의 마음인 걸 아니까, 힘 닿는 날까지 서로 도와야지요.”
희망나눔 모금계좌는 국민은행 650701-01-412439(예금주 김정란).
ccandori@hani.co.kr
지난해 중국 하바설산 원정을 떠나는 이승형(왼쪽 둘째) 회장을 남편 김학은(맨왼쪽)씨와 ‘암벽여제’ 딸 김자인(오른쪽 둘째)씨와 사위 오영환(맨오른쪽)씨가 배웅하고 있다. 사진 이승형 회장 제공
“10년째 십시일반 13명 자활 도와”
12일 예정 ‘희망나눔 음악회’ 취소
관객들 환불 대신 ‘성금’ 모금하기로 삼남매 모두 스포츠클라이밍 대표
김자하·자비·‘암벽여제’ 자인씨 키워
2011년 서울 청담동 킹콩빌딩 아트홀에서 열린 ‘제1회 희망나눔음악회-산을 만나다’ 공연에서 한국여성산악회 회원들이 직접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 한국여성산악회 제공
이승형(가운데) 회장은 2002년 자녀들이 출전한 대회에서 오심 시비를 겪은 뒤 직접 자격 시험에 도전해 ‘스포츠클라이밍 1급 공인심판 여성 1호’가 됐다. 그 열정으로 김자하(맨왼쪽)·자비·자인(맨오른쪽) 삼남매를 모두 세계적인 스포츠클라이밍 선수로 키웠다. 사진은 2009년 8월 춘천레저프레대회 때 모습이다. 사진 연합뉴스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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