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윔블던 남자단식에서 희비가 엇갈린 노박 조코비치(오른쪽)와 로저 페더러. 런던/EPA 연합뉴스
만 38살 나이에도 싱싱한 체력으로 5시간에 육박하는 경기를 거뜬하게 소화해낸 ‘위대한’ 로저 페더러. 잔디코트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면서도 부릅뜬 두눈으로 페더러를 응시하는 강한 멘탈과 놀라운 리턴 능력으로 세계랭킹 1위의 위용을 과시한 노박 조코비치.
윔블던 경기 사상 최장인 4시간57분 동안의 혈전은 결국 조코비치의 승리로 끝났지만, 둘은 세기의 명승부로 지구촌 팬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는 “불행하게도 이런 매치조차도 단지 한 명의 승자만 있을 수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둘의 희비는 어디서 갈렸을까?
노박 조코비치(왼쪽)와 로저 페더러가 각각 2019 윔블던 남자단식 우승트로피와 준우승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14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윔블던의 올잉글랜드 론 테니스클럽에서 열린 2019 윔블던(총상금 3800만파운드:558억원) 마지막날 남자단식 결승에서 1번 시드인 노박 조코비치(32·세르비아)가 2번 시드로 세계 3위인 ‘황제’ 로저 페더러(38·스위스)를 세트 스코어 3-2(7:6<7:5>/1:6/7:6<7:4>/4:6/13:12<7:3>)로 잡고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우승 상금 235만파운드(34억7천만원).
경기 뒤 남자프로테니스 투어는 “페더러가 대부분 (경기 내용의) 주요 부분에서 이겼다. 세계 1위를 상대로 7번이나 브레이크에 성공했고(조코비치는 3번), 퍼스트·세컨드 서브 포인트에서도 더 우위를 보였다. 네트플레이 포인트도 더 많았다”며 “그러나 조코비치는 3번의 타이브레이크에서 모두 승리했고 그것이 차이였다”는 평가를 내렸다. 실제 페더러는 서브 에이스 25-10, 공격 성공횟수(Winners) 94-54로 두 부분에서 절대적 우위를 보였다. 전체 포인트에서도 페더러가 218-204로 앞섰다. 그러나 페더러는 수비 능력이 뛰어난 조코비치와의 랠리 싸움에서 결정적 순간 밀리며 승기를 잡지 못하고 무너졌다.
페더러는 특히 이날 5세트 게임스코어 8-7로 앞선 상황에서 자신의 서브게임 때 40-15로 앞서며 더블 매치포인트 기회를 잡았으나 결국 듀스를 허용한 끝에 게임을 내줘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 1월 호주오픈 남자단식에서 우승한 조코비치는 올해 두번째 그랜드슬램대회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윔블던 남자단식에서는 통산 5회 우승(2011, 2014, 2015, 2018, 2019년)을 차지했다. 특히 호주오픈 7회, 프랑스오픈 1회, 유에스(US)오픈 3회 등 그랜드슬램대회 남자단식 우승 기록을 통산 16회로 늘렸다. 페더러(20회), 라파엘 나달(18회)에 이은 역대 3위 기록이다.
윔블던 남자단식 역대 최다인 9회 우승을 노리던 페더러를 침몰시킨 조코비치는 경기 뒤 코트에 앉아 잔디를 뜯어 씹어먹는 장면을 보여주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는 “내 생애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경기였다”고 했다.
조코비치가 2019 윔블던 남자단식 우승 확정 뒤 코트의 잔디를 맛보기 위해 잔디를 뜯고 있다. 런던/신화 연합뉴스
조코비치가 코트 잔디를 뜯어 맛을 보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조코비치는 이날 승리로 페더러와 상대전적에서 26승22패를 기록했고, 윔블던에서 페더러와 4차례 만나 3승1패를 기록하는 등 우위를 지켰다. 윔블던 결승에서만 2014년(3-1 승)과 2015년(3-2 승)에 이어 올해까지 3번 만나 모두 페더러를 잡고 우승했다.
이날 윔블던 단식 역사상 처음으로 5세트 12-12에서 타이브레이크가 실시돼 관심을 끌었는데, 집중력이 강한 조코비치한테 유리하게 작용했다. 경기시간은 윔블던 사상 최다였지만, 그랜드슬램대회 최다는 아니다. 앞서 지난 2012년 호주오픈 남자단식 결승에서 조코비치와 나달이 그랜드슬램대회 사상 최다인 5시간53분의 혈전을 벌인 바 있다(조코비치 3-2 승리).
페더러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했더라면 만 37살11개월의 나이로 프로 선수들의 그랜드슬램대회 출전이 허용된 1968년 이후(오픈 시대) 최고령 그랜드슬램대회 남자단식 우승 기록을 세울 수 있었으나 문턱에서 좌절했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