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원이 24일 밤(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2019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식 16강전에서 세계 1위 딩닝을 상대로 포핸드를 구사하고 있다. 대한탁구협회 제공
여자단식 세계랭킹 1위인 중국의 딩닝(29)은 1m71의 큰 키가 위협적이고, 상대하기 껄끄러운 왼손잡이 셰이크핸드 전형이다. 그런 그가 끈질기고 날카로운 커트 수비를 구사하는 1m59의 단신 서효원(32·한국마사회) 앞에 네트를 사이에 두고 만리장성처럼 떡 버티고 서 있다. 2011년과 2015년, 그리고 2017년 세계대회 여자단식을 제패한 여자탁구의 ‘마녀’가 아니던가?
딩닝은 고비 때마다 양 무릎을 약간 구부린 채로 서서 공을 앞에 띄워놓은 뒤, 마치 도끼질하듯 스핀이 많이 들어간 서브를 넣어 상대 리시브 실수를 유발하고 포인트를 가져가는 스타일이다.
여자단식 세계랭킹 1위인 중국의 딩닝. 대한탁구협회 제공
지구촌을 호령하는 그런 중국 선수를, 서효원은 이번엔 꼭 한번 이기고 싶었다. 2013년과 2017 세계대회에서 두번씩이나 중국의 류스웬한테 덜미를 잡혀 여자단식 8강과 16강 진출에 실패한 아픈 경험 때문이었다. 그래서 류스웬(세계 5위)을 다시 만나 복수하고 싶었다.
그러나 상대는 바뀌었고 이번에도 쓴잔을 마셨다. 24일 밤(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헝엑스포에서 열린 2019 국제탁구연맹(ITTF) 월드챔피언십(세계탁구선수권대회 개인전 대회) 여자단식 16강전에서다.
서효원은 회전이 많은 왼손 톱스핀 드라이브 공격을 구사하고 공격에 완급 조절능력까지 겸비한 딩닝을 맞아 잘 싸웠지만 세트스코어 1-4(6:11/9:11/11:5/6:11/9:11)로 지고 말았다. 2013년 세계대회에 이어 다시 8강행 좌절. 그토록 갈구하던 세계대회 메달의 꿈도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서효원이 딩닝을 상대로 날카로운 커트를 구사하고 있다. 대한탁구협회 제공
서효원과 맞서고 있는 딩닝. 대한탁구협회 제공
그러나 서효원은 울지 않았다. 경기 뒤 오른 무릎을 냉찜질용 비닐 붕대로 칭칭 감고 나온 그는 “처음에 자리를 잘 못 잡아 힘들었던 것 같다. 어떻게 연습하면 되는지 방향을 알게 됐다”며 다시 세계무대에 도전할 뜻을 비쳤다.
한국 나이로 어느덧 33살. ‘맏언니’의 탈락으로 유남규 감독의 한국 여자탁구대표팀은 선수 전원이 8강에 한명도 들지 못하고 보따리를 싸게 됐다.
“이번이 마지막 세계대회인가?”. 이런 질문이 나오자 서효원은 “이제 나이를 먹어 체력적으로 힘들다”면서도 자신의 도전은 멈출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아직 목표를 이룬 게 없다. 후배들과 경쟁해 못하면 은퇴하겠지만, 몸이 허락하는 한 탁구를 계속할 것이다.”
‘탁구가 지겹지 않나, 이제 다른 것을 하고 싶지 않느냐’고 거듭 물었더니 그는 “제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게 탁구밖에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서효원은 “지난해 생긴 일본프로탁구리그에서 뛰었는데 일본 팬들도 많이 생겼다”며 “아직도 한국말로 ‘계속 해주세요’, ‘자기만의 탁구를 쳐주세요’라고 일본 팬들이 편지를 보내온다”고 했다. 심지어 나고야까지 3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자신의 경기를 보러온 일본팬도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 탁구는 걸출한 토종 스타가 나타나지 않자 십수년 동안 전지희(포스코에너지), 최효주(삼성생명) 등 중국에서 귀화한 선수들로 버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효원은 수비전형이면서도 기회가 왔다 싶으면 매서운 드라이브 공격을 망설이지 않고 폭발시키며 당당히 세계랭킹 11위를 달리고 있다. 아직 번쩍이는 메달은 목에 걸지 못했지만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그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부다페스트/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