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의 지난 1월 2018 호주오픈 경기 모습. 대한테니스협회 제공
정현의 리턴샷은 강력했고 각도가 깊었다. 긴 랠리만 하면 페더러가 다소 밀리며 실수를 연발했다. 문제는 서브였다. 페더러는 자신의 서브 때마다 각도가 예리한 에이스(총 12개)를 폭발시키며 경기를 주도했다. 정현은 서브 에이스가 1개도 없었다. 서브와 노련미가 둘의 승부를 갈랐다. 매치포인트에서도 페더러는 가운데 선에 떨어지는 서브 에이스로 경기를 마무리하는 등 ‘테니스 황제’ 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16일(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언 웰스의 테니스 가든에서 열린 2018 남자프로테니스(ATP) 월드투어 비엔피(BNP) 파리바오픈(총상금 797만2535달러·약 85억원) 단식 5회전(8강전). 세계 26위 정현(22·한국체대)은 세계 1위 로저 페더러(37·스위스)를 맞아 선전했으나 1시간23분 만에 세트점수 0-2(5:7/1:6)로 지며 4강 문턱에서 좌절했다. 이번 대회는 4대 그랜드슬램대회 바로 아래 등급대회인 마스터스 1000 시리즈의 하나로 ‘제5의 메이저대회’로 불린다. 23번 시드인 정현은 3회전(32강전)에서 세계 15위 토마시 베르디흐(33·체코)를 2-0(6:4/6:4), 16강전에서 세계 34위 파블로 쿠에바스(32·우루과이)를 2-0(6:1/6:3)으로 잡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1번 시드 페더러의 벽을 넘지 못했다.
정현은 지난 1월 2018 호주오픈 남자단식 4강전에서 처음 페더러와 맞섰으나 발바닥 물집 부상으로 2세트에서 기권했다. 당시 1세트는 1-6으로 내줬고, 2세트 2-5로 뒤진 상황에서 경기를 포기했다. 정현은 그동안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단식에서 지난해 8월 로저스컵 16강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정현은 경기 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좋은 경기해서 일단 기쁘다. 페더러에게 많은 걸 배울수 있었던 경기였다. 다음에 만나면 조금 더 좋은 모습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음에 페더러와 경기를 하게 된다면 좀더 공격적이고, 리턴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페더러의 첫 서브로 시작한 1세트에서 정현은 먼저 3게임을 내주며 흔들렸다. 그러나 이후 리턴샷이 살아나며 내리 3게임을 가져오며 균형을 맞췄다. 이후 4-4, 5-5로 팽팽한 승부가 이어졌다. 그러나 페더러는 11번째 게임을 서브 에이스로 따내며 6-5로 앞섰고, 정현의 서브 게임마저 가져가며 1세트를 7-5로 마무리했다.
페더러의 서브게임으로 시작된 2세트에서도 정현은 힘을 쓰지 못했다. 정현은 내리 3게임을 내준 뒤 1-3을 만들었으나 이후 연이어 게임을 내주며 1-6으로 무너졌다. 페더러는 올 시즌 개막 이후 16연승을 올리며 2006년 25살 때 자신이 세운 최다연승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정현이 호주오픈 4강 진출과 이번 8강 진출 등으로 올해 벌어들인 상금은 10억원(10억1000만원·94만5741달러)을 넘어섰다. 또 이번 8강 진출로 랭킹포인트 180점을 얻어 다음주 발표되는 세계랭킹이 23위까지 오를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 25위인 일본의 니시코리 게이(29)를 넘어 현역 아시아 선수 중 최고랭킹을 기록하게 된다. 니시코리는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정현은 아시아 넘버원이 되는 것에 대해 “매우 기쁘다. 니시코리가 여태까지 잘해왔다. 그를 정말 존경하고, 그가 앞으로 부상에서 벗어나서 더 좋은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경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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