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가르비녜 무구루사가 15일(현지시각) 2017 윔블던 여자단식 우승트로피를 머리에 얹고 좋아하고 있다. 여자프로테니스(WTA) 누리집
“나는 그의 플레이를 보고 성장했다. 그는 믿기지 않는 선수였다.”
시상식 직전, 마이크 앞에 선 가르비녜 무구루사(24·스페인)는 방금 전 결승전에서 1시간17분 만에 물리친 비너스 윌리엄스(37·미국)에 대해 존경을 표했다. 그러곤 비너스를 향해 “소리!”(Sorry)라고 외친 뒤 “여기에 와서 (나의) 롤모델을 이기고 우승해 너무 흥분된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또 “2년 전 (이 대회) 결승에서 서리나(비너스의 동생)에게 패한 뒤 그가 나에게 ‘언젠가는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게 오늘이 됐다”며 좋아했다.
■ 그랜드슬램 결승서 윌리엄스 자매 누른 첫 선수
15일 오후(현지시각) 영국 런던 윔블던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2017 윔블던(총상금 3160만파운드·463억원) 여자단식 결승전에서 세계 15위이자 14번 시드인 무구루사가 세계 11위이자 10번 시드인 비너스 윌리엄스의 ‘노장 돌풍’을 2-0(7:5/6:0)으로 잠재우고 생애 두번째 그랜드슬램 단식 타이틀을 차지했다. 우승상금 220만파운드(32억4000만원)의 거액도 챙겼다.
앞서 무구루사는 지난해 프랑스오픈(롤랑가로스) 여자단식 결승에서 당시 세계 1위로 35살인 서리나를 2-0(7:5/6:4)으로 누르고 생애 첫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이로써 그는 그랜드슬램대회 여자단식 결승에서 비너스-서리나 윌리엄스 자매를 누른 첫번째 선수가 됐다. 그 이전에 스위스의 마르티나 힝기스가 유에스오픈 여자단식 결승에서 윌리엄스 자매와 두번 만났는데, 1997년 결승에서는 비너스를 눌렀으나 1999년 결승에서는 서리나한테 진 바 있다.
무구루사는 특히 2015년 윔블던 결승에서 서리나한테 0-2(4:6/4:6)로 진 것도 말끔히 설욕했다. 게다가 1994년 당시 37살이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체코)를 누르고 우승한 콘치타 마르티네스 이후 스페인 선수로는 두번째이자 23년 만에 윔블던 여자단식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됐다. 콘치타는 이번 대회 무구루사의 임시코치로 활약해 눈길을 끌었다.
2011년 프로로 전향한 무구루사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태생으로 어머니(스카를레트 블랑코)는 베네수엘라, 아버지(호세 안토니오)는 스페인 출신이다. 6살 때 스페인으로 이사해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는데, 2014년 스페인을 위해 뛰기로 결정했다. 현재 거주지는 스위스 제네바다. 성장하면서 서리나 윌리엄스와 피트 샘프러스(미국)를 좋아했다. 1m83, 73.2㎏.
가르비녜 무구루사가 15일(현지시각) 2017 윔블던 여자단식 결승전에서 비너스 윌리엄스의 샷이 챌린지 신청을 통해 아웃으로 판명돼 우승이 확정된 순간, 코트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감격의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누리집
■ 결승에서 멈춘 비너스의 30대 돌풍
이번 대회 8강전에서 올해 프랑스오픈 챔피언 옐레나 오스타펜코(20·라트비아)를 2-0(6:3/7:5)으로 누르는 등 30대 돌풍을 일으키며 “나이는 (경기의) 요소가 아니다”라던 비너스 윌리엄스. 그는 1세트에서는 팽팽히 맞섰지만 이번 대회 앞선 6경기에서 체력을 소모한 탓인지 2세트에선 강서브와 스트로크, 빠른 발, 뛰어난 코트 커버능력을 갖춘 13살이나 젊은 무구루사에게 완전히 밀려 스트로크 실수를 연발하며 무너졌다. 비너스는 서브 최고시속 114마일(182.4㎞)과 위너(Winner) 17개로, 무구루사(105마일, 14개)보다 앞섰으나 2세트 들어 급격한 체력 저하를 보이며 맥을 추지 못했다. 범실(비너스 24개, 무구루사 11개) 차이가 승부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1세트에서는 둘이 자신의 서브게임을 서로 따내며 4-4로 팽팽히 맞섰다. 그러나 비너스가 자신의 서비스로 시작한 9번째 게임을 러브게임으로 따내며 5-4로 앞선 뒤, 무구루사의 서브게임에서도 40-15까지 리드해 승부의 추가 그에게 기우는 듯했다. 무구루사는 여기서 힘을 냈다. 기어코 듀스를 만든 뒤 게임을 따내며 게임스코어 5-5로 동점을 만들었고, 내리 2게임을 얻어내며 7-5로 1세트를 51분 만에 마무리지었다. 2세트는 완전 무구루사가 압도했다. 무구루사는 강력한 서브와 스트로크로 1세트 10번째 게임부터 내리 9게임을 따내는 괴력을 선보였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