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주도하는 국제태권도연맹(ITF) 시범단이 지난달 28일 한국 태권도의 본산 국기원을 사상 처음 방문해 시범공연을 한 뒤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국기원 제공
“9월에 오시죠? 기다리고 있겠습네다.”
북한이 주도하는 국제태권도연맹(ITF) 시범단(36명)이 8박9일 동안의 방한 일정을 모두 마치고 1일 오후 늦게 출국하는 자리. 북 시범단의 4차례 태권도 공연 해설 때 특유의 목소리로 주목을 끌었던 김영월 조선태권도위원회 해설원이 남쪽 태권도 관계자들에게 남긴 말이다. 박영칠 북 시범단장은 “앞으로 태권도 시범이 4차에 머무르지 말고 계속돼 나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북한의 스포츠계 거물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과 리용선 총재가 이끄는 국제태권도연맹 시범단이 떠났다. 그러나 뿌리는 하나이지만 둘로 갈라진 태권도를 통해 모처럼 한몸이 된 남북 스포츠 교류의 여운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리 총재는 앞서 지난달 23일 시범단을 이끌고 입국하면서 “우리 민족의 자랑인 태권도의 통일적 발전을 통해 우리 민족을 위해 좋은 일을 기여하기 위해 왔다”고 소감을 밝혔는데, 실제 10년 만에 이뤄진 북 시범단의 방한을 계기로 정치적 긴장관계 때문에 그동안 꽉 막혀 있던 남북 스포츠 교류에 물꼬가 트이고, 나아가 남북관계 개선에도 훈풍이 불어올 것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 주도의 세계태권도연맹(WTF)이 오는 9월17일부터 21일까지 평양 태권도전당에서 열리는 제20회 국제태권도연맹 세계선수권대회에 참여해 시범공연을 하기로 북쪽과 구체적 합의를 도출한 것은 현재의 남북 긴장관계 상황으로 볼 때 지대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달 24일 2017 무주 세계태권도연맹 세계선수권대회 개막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축사를 통해 당시 현장에 있던 장웅 위원 등 북쪽 인사, 국제올림픽위원회 고위 관계자들을 향해 2018 평창겨울올림픽의 남북 단일팀 구성, 북한 응원단 참여 등을 공식 제안한 것도 남북 스포츠 교류 확산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국제태권도연맹(ITF)의 리용선(왼쪽) 총재와 장웅 명예총재 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지난달 28일 국기원을 방문해 사인을 하고 있다. 국기원 제공
장웅 위원은 지난달 29일 방한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의 만찬에서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을 구성했을 때 그걸 위해 2년 동안 협상했다. 그렇게 힘든 일이다”라며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하지만 바흐 위원장이 앞서 “문 대통령의 남북 단일팀 구성 제안이 인상적이다. 올림픽 정신에 부합한다”고 이미 환영 의사를 표시한 바 있어 북쪽이 수용만 한다면 이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있다.
바흐 위원장은 3일 오전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과 평창겨울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 문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현실적으로 평창겨울올림픽이 7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등 일부 종목의 남북 단일팀 구성, 북 마식령 스키장 활용 등에 대해 북한과의 합의를 끌어내기란 쉽지 않고 현실적인 걸림돌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과 바흐 위원장의 청와대 회동 결과에 따라 급진전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경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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