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이 8일 새벽 독일 뮌헨에서 귀국한 뒤 이날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센터코트 미디어룸에서 후배 권순우, 이덕희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한테니스협회 제공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첫 우승은 언제쯤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가?”(기자)
“그건 잘 모르겠지만, 최근 톱선수들과 맞붙어봤고 4강까지 해봤다. 이제 사정권에 오지 않았나 한다. 운도 따라주고 모든 것이 따라줄 때 가능하지 않을까….”(정현)
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테니스경기장 센터코트의 2층 미디어룸. 이날 2017 휠라(FILA) 서울오픈 국제챌린저테니스대회(총상금 10만달러)가 시작된 가운데, 요즘 잘나가는 정현(21·한국체대)을 비롯해, 바로 아래 후배인 권순우(20·건국대), 이덕희(19·서울시청) 등 한국 남자 테니스 주역 3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7일(현지시각) 독일 뮌헨에서 끝난 남자프로테니스 투어 250시리즈인 비엠더블유(BMW)오픈에서 이형택 이후 한국 남자 선수로는 10년 만에 처음 정규투어 단식 4강 쾌거를 이룬 뒤, 이날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정현은 피곤함도 잊은 채 밝은 표정이었다. 그는 최근 한달 동안 클레이코트 대회에서 이룬 성과에 대해 “코칭스태프의 변화도 있었고, 그런 부분이 다는 아니겠지만…. 코트에서 긍정적으로 하려다 보니 좋은 결과가 있었던 같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테니스가 좀 더 재밌어졌다. 예전에는 코트장에서 나만의 리듬이 없었는데, 지금은 코트에서 리듬이 경쾌해지면서 재밌어졌다”고 했다.
세계 158위 기도 펠라(27·아르헨티나)한테 1-2(6:4/5:7/4:6)로 패한 비엠더블유오픈 4강전에 대해서 정현은 “3세트에서 저도 기회가 있었고 상대도 기회가 있었는데, 중요할 때 운도 안 따라주고, 그 선수가 워낙 잘 친 것 같다. 정신력 싸움인데 그것이 모자라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패인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결과론이지만 (전날 일몰로 연기된) 8강전을 치르고 나서 그날 4강전을 했는데, 8강전 뒤 너무 긴장감이 풀려서 마음 편하게 한 게 독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정현(가운데)이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센터코트 미디어룸에서 이덕희(왼쪽), 권순우와 함께 기자회견 뒤 파이팅을 하고 있다. 대한테니스협회 제공
정현은 최근 바르셀로나오픈(500시리즈) 8강, 그리고 비엠더블유오픈 4강 등의 선전으로 8일 발표된 세계랭킹이 78위에서 66위로 상승했다. 2015년 10월 51위에 오른 게 그의 개인 최고랭킹인데, 이런 상승세라면 조만간 이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클레이코트에서 강해 28일 개막하는 시즌 두번째 그랜드슬램 대회인 2017 프랑스오픈(롤랑가로스)에서도 기대를 모은다.
정현은 클레이코트에 대해 “제 플레이 스타일상 안 맞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좀 친해졌다”면서, 프랑스오픈 목표를 묻는 질문에는 “그동안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1회전에서 이긴 것밖에 없다. 이제 두번 이기는 게 첫번째 목표다. 이기면 바로 그 자리에서 목표 수정해야죠”라고 답했다. 프랑스오픈에서 3회전 이상 오르겠다는 것. 그는 “이번 한달 동안 한 포인트도 헛되게 하지 않았다. 프랑스오픈에서도 그런 마음으로 할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한국 남자 테니스 레전드 이형택과 비교되는 것과 관련한 질문에 정현은 “운동선수로 이형택 원장님을 넘어서는 게 좋지 않을까. 언젠가 그날이 오면 제2의 이형택에서 벗어나 제1의 정현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정현은 “몸 상태를 냉정히 체크해봤다. 오늘 귀국해 내일 경기를 치르는 것은 무리다. (프랑스오픈 이전에) 투어 대회도 나가야 해서 이번 서울오픈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음주 열리는 부산오픈 국제챌린저 출전 여부에 대해선 답을 유보했다.
정현은 영어 실력이 향상된 것에 대해 “인터뷰용 영어 공부에 매진한 덕이다. 경기 뒤 질문이 늘 뻔한데, 미리 준비한 영어 답변에 상대 선수 이름 정도만 바꾸는 식으로 돌려막기를 하는 것”이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했다.
이날 질문은 정현에게 집중됐는데, 최근 데이비스컵 등에서 절정의 기량을 선보인 권순우는 “현이 형이 잘하고 있으니 부럽기도 하다. 같이 공을 치던 형이 잘하니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정현의 어떤 점을 배우고 싶냐는 질문에 “기본 공을 칠 때도 안정적”이라고 답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서울시청 스포츠단과 테니스 선수로는 처음 입단식을 한 이덕희는 “현이 형이 원래 잘하는 것은 알았다. 항상 배우고 따라가고 싶었다”고 했다. 청각장애에도 세계 142위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이덕희는 올해 서울 마포고를 졸업한 뒤 연봉 1억원에 서울시청과 3년간 계약했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