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야구 대표팀 선수들이 6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2017 세계야구클래식(WBC) 개막전 경기에서 한국에 연장 접전 끝에 승리한 뒤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일 한국에 충격적인 패배를 안긴 이스라엘의 승리 투수 조시 자이드(3이닝 무실점)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미국 출생이다. 다만 부모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이스라엘 대표 선수가 됐다. 자이드는 한국전 승리 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믿을 수 없는 경기였다. 숨을 쉴 수가 없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자이드는 세계야구클래식이 끝나면 돌아갈 곳이 없다. 그는 지난 시즌이 끝나고 메이저리그(MLB) 뉴욕 메츠에서 방출됐다. 자이드뿐만이 아니다. 2017 세계야구클래식(WBC) 이스라엘 대표팀은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선수가 많다. 대표팀 명단에 오른 선수 28명 가운데 27명이 미국에서 태어났고 이들 대다수는 현재 소속팀이 없거나 현역 메이저리거도 아니다. 이스라엘 대표팀은 정처없는 자유계약(FA)선수와 마이너리그 선수들로 급조된 ‘외인구단’인 것이다. 이들이 대표팀에 합류한 이유는 이번 대회를 통해 자신을 알리기 위한 목적도 크다.
이스라엘은 2006년(1회)과 2009년(2회) 세계야구클래식에 참가하지 못했다. 2013년(3회) 대회 땐 지역 예선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이후 이스라엘 야구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2015년 지역 예선에서 3전 전승으로 4회 세계야구클래식 출전 자격을 얻어내더니 공식 개막전에서 한국에 연장 접전 끝에 승리를 거뒀다. 미국 <뉴욕 타임스>는 “기적 중의 기적”이라며 “마이너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다윗(이스라엘)이 골리앗(한국)을 잡아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의 야구 역사를 돌아보면 이스라엘의 1라운드 개막전 승리는 과연 ‘기적’이라고 부를 만했다. 이스라엘은 2007년에 6개의 프로팀을 구성해 처음 자국 리그를 열었다. 이스라엘에 야구가 처음 소개된 1927년 이후 80년 만의 일이었다. 지금도 등록 선수는 800명 수준이다. 수치상으론 여전히 ‘야구 변방’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단기전에선 팀 성적이 선수들의 이름값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걸 보여주며 이스라엘 야구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이스라엘은 7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1라운드 A조 대만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 15-7로 승리, 2승을 챙기며 2라운드 진출에 바짝 다가섰다. 전날 연장 접전을 마치고 13시간 만에 치러진 낮 경기였으나 이스라엘의 방망이는 더욱 매섭게 돌아갔다. 홈런 2개 포함해 장단 20안타를 쏟아냈다. 제리 와인스타인 이스라엘 감독은 “일정이 빡빡했지만 우린 경쟁력 있는 팀이어서 자신감이 있었다. 선수들이 하나로 뭉친 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과감한 수비 시프트(변형 수비)가 통하는 데 대해서는 “적은 자료였으나 상대를 최대한 분석했다. 전력 분석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노력했다”고 밝혔다.
대만전에서 5타수3안타의 맹타를 휘두른 아이크 데이비스는 “세계야구클래식 선전을 통해 이스라엘에서도 야구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작은 변화가 눈덩이처럼 커져서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대회 첫 홈런을 기록한 라이언 라반웨이는 유대인으로 세계대회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과거 우리는 인종 때문에 많은 공격을 받았다”며 “유대인의 깃발을 흔들며 경기한다는 것은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있을 자격이 충분하며 이는 전세계 유대인에게 많은 영감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9일 네덜란드와 1라운드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권승록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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