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의 2015 한국시리즈 우승 때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겸 구단주와 함께 트로피를 들어올린 김승영 두산 베어스 사장(왼쪽). 김승영 사장은 1991년부터 야구단에서 근무해 온 베테랑 프런트다. 연합뉴스
2001년은 조금 특별한 해였다. 프로야구 담당 팀이 처음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했다. 당시 두산 베어스는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기적 같은 드라마를 연출했다. 10승대 선발투수 한 명도 없이 우승해 ‘미러클 두산’이라고도 했다. 우승 뒷풀이 때 김인식 감독(현 2017 WBC 감독)이 췄던 허슬 춤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22일 두산을 21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끈 김태형 감독은 당시 플레잉 코치였다. 구단 프런트를 보면, 김승영 사장은 당시 잠실야구장 운영본부장이었고, 김태룡 단장은 운영팀장이었다. 그렇다. 핵심은 ‘사람’이다.
2001년 이후 15년이 흘렀지만 두산 프런트는 직책, 직위만 바뀌었을 뿐 거의 그대로다. 당시 홍보과장은 현재 운영 1팀장(김승호 부장)이 돼 있고, 1군 매니저는 운영 2팀장(김정균 부장)이 돼 있다. 스카우트 팀(이복근 부장)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아마추어 선수들을 보고 있다. 두산 화수분 야구의 뿌리다. 모그룹으로부터 내려오는 소위 ‘낙하산’ 인사가 없이 아래로부터 차근차근 위로 올라가는 인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장, 단장이 바뀔 때마다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여타 구단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그럴까. 두산 베어스 사무실 공기는 어색함 없이 아주 친숙하다.
사장, 단장이 1990년대부터 야구단에서만 25년 이상 근무하며 산전수전 다 겪었으니 구단 운영에 있어서는 최고의 베테랑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야구단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간파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과거 경험을 통한 미래 전략 구상 또한 탁월하다. FA선수 계약 등에서 과감히 선택과 포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경험에 기반한다. 두산은 2013년까지 외부 FA선수 영입이 단 한 명(그것도 두산에서 데뷔해 FA계약으로 롯데로 갔던 홍성흔을 재영입한 것)뿐이었으나 2014년 말 좌완 장원준을 당시 FA투수 최고액인 4년 84억원에 영입하면서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외부에서 영입된 FA투수들의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했던 KBO리그 상황이라 당시에는 “두산이 과하게 돈을 썼다”는 인식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투자는 성공적이었다. 장원준은 올해도 15승을 올리면서 두산 선발 마운드의 강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사실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의 시작도 두산이었다. 여성팬들을 공략한 마케팅 등 다양한 시도들을 두산이 맨 처음 했다. 두산의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마케팅은 프로 스포츠 구단 사상 8년 연속 100만 홈관중을 이끌었다. 끊임없이 독자적 생존을 모색해온 스포츠 전문 경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 뒤에는 오롯이 야구단과 청춘을 함께해온 베테랑 일꾼들이 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