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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한계에 다다르자 형언할 수 없는 장관이…

등록 2016-09-19 18:33수정 2016-09-19 18:33

<한겨레 21> 김완 기자의 트레일러닝 체험기
다음달 열리는 제주대회 코스 답사
초반 곶자왈길 황홀경이었지만
따라비오름에선 온몸 끊어질 듯…
능선 올라 초지 보니 ‘생의 포만감’
트레일런의 매력은 달리며 만나는 광경에 있는지도 모른다. 트레일런은 모든 길을 달린다.  사진 안병식 제주 울트라트레일러닝대회 디렉터 제공
트레일런의 매력은 달리며 만나는 광경에 있는지도 모른다. 트레일런은 모든 길을 달린다. 사진 안병식 제주 울트라트레일러닝대회 디렉터 제공
한 발을 내디뎌야만 또 한 발을 내디딜 수 있다. 너무 평범해서 평소에는 전혀 의식조차 할 수 없는 그 자연스런 행위가 인간에게 가장 비범한 고통을 줄 수 있음을 깨닫는 데는 채 3㎞도 필요치 않았다. “김 기자, 내일 같이 뛰어보실래요?” 그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취재차 제주에 갔을 때 만난 안병식 제주울트라트레일러닝대회 레이스디렉터는 평소 ‘크로스핏’을 좀 한다는 말에 이렇게 화답했다. 바로 내일 뛸까도 싶었지만 마침 운동화가 없었다. 대신 코스에 대해서 묻곤 안달난 사람처럼 앓았다. 안 디렉터는 18㎞ 코스는 “누구나 뛸 수 있다”고 했지만, 정말 내 몸이 산길 18㎞를 달릴 수 있는 상태인지 너무 확인하고 싶었다.

국내에도 몇몇 트레일런 대회가 있다. 하만 그중에서도 제주 대회는 매우 특별하단 꼬드김이 자꾸 귓전에서 맴돌았다. 세계 유수의 코스를 뛰어 본 안 디렉터는 “단언컨대 제주 오름 일대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스”라고 했다. 결국 20여일 만에 운동화를 짊어지고 다시 제주로 향했다.

눈으로 보기엔 완만해 보이지만, 오름을 오를 때면 종아리부터 시작된 통증이 온 몸을 덮쳐온다.  <한겨레 21> 김완 기자. 사진 안병식 제주 울트라트레일러닝대회 디렉터 제공
눈으로 보기엔 완만해 보이지만, 오름을 오를 때면 종아리부터 시작된 통증이 온 몸을 덮쳐온다. <한겨레 21> 김완 기자. 사진 안병식 제주 울트라트레일러닝대회 디렉터 제공
가시리 일대 오름을 달리는 18㎞ 코스는 곶자왈길을 달려 따라비오름~잣성길~큰사슴이오름을 왕복하는 코스다. 초반 2㎞ 곶자왈 길은 그야말로 황홀경이다. 길게 뻗은 나무 사이로 좁게 이어지는 길을 뛰고 있노라면, 살아 이런 길을 달리는 행복을 누린다는 만족감이 온몸에 나른하게 퍼져나간다. 숲의 향기가 서걱거리며 밟혀나가는 나뭇가지 그리고 간간이 나무들 사이로 쳐들어오는 햇살까지. 모든 것이 더 이상 조화로울 수 없는 평화 그 자체다.

물론, 거기까지다. 그 길은 따라비오름을 오를 수 있는 동력을 추동해내는 호객과 같다. 오름의 경사는 눈으로 보기엔 완만하다. 하지만 막상 달려 올라가려면 허벅지 근육의 힘으로 땅의 경사를 제쳐내는 게 얼마나 버거운지 온몸이 끊어질 듯하다. 팽팽해진 종아리의 압박이 ‘그만 뛸까’ 하는 마음의 소리로 전환되는 과정을 계속 달리는 것으로 극복해내야 한다.

그 갈등과 고통이 한계치에 다다를 때쯤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오름의 능선들이 서로 마주보며 포개지듯 이어지고 그 너머로 이곳이 내가 알던 제주인가 싶을 정도의 넓게 펼쳐진 초지가 눈에 들어온다. 한라산과 맞닿은 하늘을 바라보며 흐른 땀을 식히는 기분은 말론 형언조차 되지 않는 생의 포만감을 준다.

그리곤 잣성길이다. 잣은 제주어로 ‘널따랗게 돌로 쌓아올린 기다란 담’을 뜻한다. 2㎞가량 이어지는 잣성길을 달릴 때는 ‘계속 이만하면 끝까지 달릴 수 있겠다’는 착각인지 자신감인지 안도감 같은 것이 치미는데 그건 생의 도전에 한 고개를 넘어온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만족감이 아닐까도 싶다. 그 마음을 추진력으로 큰사슴오름을 달리면 된다. 큰사슴오름을 오르는 길은 폭신한 섬유질로 짜인 그물망으로 덮여 있어 훨씬 수월하다. 그렇게 큰사슴오름을 돌아 내려와 유채꽃프라자까지 오면 18㎞ 구간의 절반이 끝나는 9㎞ 지점이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면 완주다. 솔직히 말하면 돌아가는 길엔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뇌 스스로 달리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에너지 낭비라고 판단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무아지경이다. 그 산길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돌아가는 것뿐이고, 어찌 됐든 시작했던 자리로 가야 끝낼 수 있단 생각에 지배당한다. 그렇게 17.8㎞를 달려냈다. 시간은 3시간17분. 나른한 행복감과 비범한 고통과 말론 형언할 수 없는 광경을 보고 몸에선 2㎏ 정도가 빠져나갔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고 했던가. 그렇게 달렸다, 달렸노라. 달려보라.

제주/<한겨레 21>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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