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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설퍼도…크리켓은 내 운명!

등록 2016-02-16 18:49수정 2016-02-16 18:49

13일 성균관대(수원)에서 진행된 크리켓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한 지원자들이 본격적인 테스트에 앞서 김승철 대한크리켓협회 회장으로부터 국가대표 훈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왼쪽) 지원자들은 유연성 테스트(가운데)부터 공 캐치(오른쪽)까지 4가지 실기 테스트를 치른 뒤 면접을 보았다.   수원/김양희 기자 <A href="mailto:whizzer4@hani.co.kr">whizzer4@hani.co.kr</A>
13일 성균관대(수원)에서 진행된 크리켓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한 지원자들이 본격적인 테스트에 앞서 김승철 대한크리켓협회 회장으로부터 국가대표 훈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왼쪽) 지원자들은 유연성 테스트(가운데)부터 공 캐치(오른쪽)까지 4가지 실기 테스트를 치른 뒤 면접을 보았다. 수원/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스포츠 ON] 크리켓 국가대표 선발전

공 잡는 게 참 어설프다. 순간 반응 동작이 떨어진다. 누군가 옆에서 말한다. “축구만 했었다네요.” 얼굴은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했다. 그래도 표정은 살아있는 무한 긍정의 17살. ‘제2의 박지성이 되겠다’는 다부진 포부로 축구를 시작했지만 그보다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운동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운동을 하면 제일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부상으로 야구 접은 선수부터
축구부 출신·귀화 외국인들까지
태극마크 꿈을 향해 16명 지원

유연성·점프·왕복달리기 이어
캐치·송구 테스트까지 100여분
17일 합격여부에 희비 갈리지만…

“맨손으로 공 잡을때 쾌감 느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생 같아”
국내 비인기 종목에 온몸 던져

4개월 전 그는 선배의 권유로 난생처음 ‘발’이 아닌 ‘손’으로 하는 ‘크리켓’ 종목을 만났다. 그리고 13일 오후 경기도 수원의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 수성관에서 열린 크리켓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했다. 선발전 참가를 위해 제주도에서 상경한 강준혁군은 말했다. “공이 강하게 날아오면 일단 두렵지만 그걸 어떻게든 잡아낼 때 쾌감이 있는 것 같아요. 공을 맨손으로 잡으면 손이야 당연히 아프죠. 그래도 일단 잡으면 웃게 돼요. 그 맛이 좋은 거 같아요.”

강군에게 크리켓을 권유한 학교 선배, 유호균(19)군 또한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축구를 하다가 관뒀다. “순천에서 기숙생활을 하면서 축구를 했는데 제주도 가족들과 떨어져 경제적, 심적으로 너무 힘들어서”였다. 그 또한 다른 선배의 권유로 크리켓을 접했다. 유군은 “크리켓은 공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도 팀 전체의 단합도 동시에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강군과 유군은 크리켓 대표 선발에 대비해 제주도에서 4개월 동안 매일 4시간씩 공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훈련했다.

이날 선발전에 참가한 지원자는 모두 16명이었다. 이들 중에는 기존에 크리켓 국가대표였던 선수들도 9명 포함돼 있었다. 캐치와 송구 능력 등에서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월등할 수밖에 없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 참가했던 박수찬(26)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연습하듯 여유롭게 코트를 휘저으며 테스트에 임했다. 그는 사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 야구를 했다. 어깨 부상 때문에 프로 진출이 어려웠던 차에 이를 안타까워한 친구가 야구와 비슷한 크리켓을 권했고 못 이기는 척 시작하게 됐다.

“크리켓은 아웃 하나 잡는 게 너무나 어려워요. 그래서 팀 단합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50점을 내면 세리머니를 하는데 그때 팀 구성원들이 우리 모두 ‘하나’라는 느낌을 갖게 돼요. 그 희열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박수찬은 크리켓을 인생에 비유했다. “사는 게 제 맘대로 안 되더라고요. 저도 야구선수로 탄탄대로를 걸을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부상이 크리켓 선수가 되게 한 거죠. 크리켓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운동은 대충 공의 방향이라도 짐작해볼 수 있는데 크리켓은 그게 어려워요. 인생처럼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거든요.”

크리켓을 처음 시작한 제주도 소년들이나 이미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던 국가대표의 크리켓에 대한 열정은 한국에선 꽤 낯선 풍경이다. 한국은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44개 종목 중 유일하게 크리켓 종목에 선수를 내지 못했다. 이후 허겁지겁 준비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 비로소 첫 출전을 할 수 있었다. 크리켓은 영국과 인도, 호주 등 영연방 국가들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인도, 파키스탄 등에서 국기로 통한다.

크리켓 경기는 팀당 11명으로 진행된다. 원형 경기장의 한가운데 위치한 직사각형의 ‘피치’에서 볼러(투수)와 배트맨(타자)이 대결한다. 20m 거리를 둔 피치 양 끝에는 ‘위킷’이라는 기둥 두 개가 있다. 야구로 치면 위킷은 베이스다. 투수가 반대편 위킷 앞에 선 타자 쪽으로 공을 던지면 타자가 이를 받아치고 반대쪽 위킷에 서 있던 주자는 타자의 위킷 쪽으로 달려간다. 두 선수가 교차해 반대쪽 위킷에 배트를 대면 1점을 얻는 식이다. 10개의 아웃을 잡아야만 공수 교대가 되기 때문에 체력과 집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날 실기 테스트는 엎드린 자세로 손을 최대한 밑으로 뻗는 유연성 테스트와 서전트점프(제자리에서 수직으로 뛰기), 배트를 들고 20m 왕복달리기 등 기초체력 테스트, 그리고 캐치와 송구 능력 테스트로 이뤄졌다. 코치가 배트로 직선타, 뜬공, 땅볼을 쳐주면 이를 맨손으로 잡아 정해진 위치까지 정확히 송구해야 한다.

코트를 분주하게 오가며 공을 낚아채고 있는 지원자들 중에는 귀화한 파키스탄·방글라데시 출신 외국인도 5명이나 있었다. <티브이엔>(tvN)의 장수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에서 방글라데시 출신 외국인 청년 역을 맡아 감초 구실을 했던 스잘(21)도 그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선발전 내내 진지한 눈빛으로 임했고 기본기도 비교적 탄탄했다. “8살부터 16살까지 크리켓을 했어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크리켓을 좋아하게 된 거죠. 그러다 16살에 한국 가정으로 입양됐어요. 그리고 20살이 넘어서는 생계 때문에 연예계 쪽도 가봤는데 어렸을 적 꿈인 크리켓 대표가 계속 머리에 남아 있는 거예요. 그래서 두 달 전에 귀화신청을 해서 한국 국적을 취득했어요. 오로지 이 크리켓 대표가 되고 싶어서였어요.”

크리켓 국가대표에 뽑히기 위한 경쟁은 1시간40분 남짓 진행됐다. 이후 개인 면접 등이 별도로 이어졌다. 17일 합격자 명단(12~15명)이 발표되는데 결과에 따라 지원자들의 희비가 갈린다. 비록 국내 저변이 취약한 종목이지만 ‘국가대표’를 갈망하는 이들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한국에도 크리켓 국가대표가 있습니다”라고.

수원/글·사진 권승록 기자, 김양희 기자 ro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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