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빵~.”
30~31g의 말랑말랑한 흰색 정구공(지름 6.6㎝)에서 뿜어 나오는 소리가 연신 귀를 자극한다.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뿌옇게 뒤덮은 지난 5일 충북 진천선수촌. 오는 17~21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제15회 세계정구선수권대회에 대비해 12명의 남녀 정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지난 6월4일부터 5개월째 이곳에서 훈련중이다.
테니스를 바탕으로 해 일본에서 발전한 스포츠 때문일까?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정구(Soft tennis) 종목. 그래도 대표팀 선수들은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열심히 공을 튕긴다. 남종대(53) 정구대표팀 감독은 “정구가 아시안게임에서는 효자종목이지만 인기종목은 아니다”라면서도 “테니스보다 정구는 공이 물렁물렁하고 회전량이 많아 변화무쌍하고, 랠리도 많아 재미있다”고 했다.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7개 전 종목 금메달을 석권한 한국 정구대표팀은 이번에 금메달 3~4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김범준(26·문경시청)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남자부 3관왕(남자복식, 혼합복식, 남자단체전)에 올랐다. “당시 경기장 안에서는 ‘반짝’ 인기가 있었는데 끝나고 나니 금방 잊히더라고요. 아쉽긴 한데 3관왕 이후 경기에 자신감이 붙었어요. 이번 세계대회에서 금메달 2개가 목표입니다.”
“범준이가 작년 아시안게임에서 꽃을 피웠지요. 선배 (김)동훈이랑 (남자복식) 하면서. 잘생겼고 인기도 많은데 결혼해서….” 남 감독은 말끝을 흐리면서 웃었다. 김범준은 대구가톨릭대학에서 운동할 때, 영남대에서 체육을 전공하던 아내(조미애·23)를 만나 열애 끝에 지난해 1월 결혼했고 슬하에 딸(김소율)도 있다. 카카오톡 프로필에도 금메달 3개를 목에 걸고 있는 소율이의 백일사진이 걸려 있다. “소율이가 태어나서 운동할 때 더 힘이 나는 것 같아요. 훈련 뒤 ‘엄마 아빠’ 말을 할 줄 아는 소율이와 영상 통화하면 하루 피로가 말끔히 사라집니다.”
김범준이 지난 5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세계정구선수권대회에 대비해 훈련하고 있다.
김범준은 이번 세계대회에서 대학 1년 선배 김동훈(26·순천시청)과 호흡을 맞춰 남자복식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인천아시안게임 2관왕(남자복식, 남자단체전)의 베테랑 김동훈이 스트로크를 주로 하는 ‘후위’에 서고, 김범준은 발리를 주로 하며 승부를 내는 ‘전위’를 맡는다. 자신들의 장기를 고려한 포지션 배정이다. “동훈 형이 대학 때부터 파트너를 하며 많이 가르쳐줬다”고 고마움을 전하자, 김동훈은 “저는 점점 (실력이) 내려가는 처지이고, 범준이는 이제 더 잘한다”고 치켜세웠다. 7년째 남자복식 단짝인 둘은 2013년 동아시안게임에서 첫 메달(은)을 합작해냈다. 혼합복식에서는 김지연(21·옥천군청)과 짝을 이뤄 역시 금 사냥에 나선다.
당당히 국가대표이지만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가족과도 떨어져 지내야 한다. “5개월째 진천에서 운동만 하고 있는데, 솔직히 운동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선수촌을 몰래 나갈 생각은 엄두도 못 냅니다. 대신 스트레스는 선수촌 안에 있는 노래방에서 풀어요. 당구도 치고요.” 김범준의 애창곡은 이승기의 ‘내 여자라니까’와 허각의 ‘하늘을 달리다’. 스마트폰으로 요즘 인기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등을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주말에 가끔 외출 허락을 받아 가족을 만나고 오는 게 큰 힘이 된다. “가서 아이 보기 바빠요. 그래도 한번 갔다 오면 운동이 잘됩니다.”
한국 정구는 2011년 문경 세계선수권 때 금메달 7개 중 5개를 따내는 등 일본과 함께 세계 최강으로 군림해왔다. 때문에 남자 대표팀 에이스 김범준의 어깨가 무겁다. 10일 현지로 출국하며 “낭보를 꼭 전하겠다”는 그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한껏 묻어나왔다.
진천/글·사진 김경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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