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현이 뜨고 있는데, 여자들도 분발해야겠네요.”
최근 안동오픈 여자단식에서 우승하면서 한국 여자실업테니스 무대 강자임을 다시 입증한 한성희(25·KDB산업은행)는 최근 남자프로테니스(ATP) 차세대 유망주로 주목받고 있는 정현(19·세계랭킹 88위)의 활약상이 자극제가 되는 모양이다.
인천 가좌동 한 실내코트에서 경쟁자인 홍승연(강원도청)과 실전게임을 마친 뒤 그는 “정현이 빨리 그랜드슬램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 침체된 한국 테니스가 다시 인기를 끌었으면 한다. 여자도 잘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사실 여자들도 국제대회 나가보면 실력은 비슷한 것 같은데, 한끗 차이인 것 같아요. 중요한 고비 때 잘하느냐 못하느냐, 뭐 그런 것이랄까.”
한성희는 서울 중앙여중·중앙여고 시절에 한국 여자테니스를 대표하는 유망주였다. 한솔의 후원을 받으며 그랜드슬램대회 주니어 여자단식 무대를 누볐다. 세계 주니어랭킹 30위권까지 진입하는 등 가능성을 보였다. 2013년 창단한 케이디비(KDB)산업은행 여자 1호 선수가 돼 주목도 끌었다. 하지만 이후 성장하지 못해 여자프로테니스(WTA) 정규 투어 무대에 진입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성희는 국내 여자실업무대에서는 엔에치(NH)농협은행의 이예라·홍현희, 인천시청의 한나래·류미, 강원도청의 홍승연·강서경 등과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나서 오픈대회를 주최하고 있는데, 올해 서귀포칠십리오픈은 강서경, 영원오픈은 이예라, 상주오픈은 한나래 등이 각각 여자단식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한성희는 안동오픈 결승에서 홍승연을 2-0(6:0/6:1)으로 가볍게 누르고 성인 무대 진출 6년 만에 첫 우승 감격을 누렸다. “고교 졸업 뒤 6년 만의 여자단식 우승이었지만, 너무 힘들게 시합을 해서 생각보다 담담했어요.” 6경기를 치러 그가 거머쥔 우승 상금은 600만원. 노력에 비해 너무 적은 상금이 아닐까? 그는 이런 질문에 “관중들이 오지 않고 인기가 없으니, 지자체에서 많은 상금을 내놓을 수 없는 사정을 이해한다”면서도 “상금이 올라가면 선수들은 더욱 힘이 나지 않겠느냐”고 했다.
한성희는 1m64, 58㎏의 몸집으로 포핸드스트로크를 특히 잘 친다. 그가 초등학교 때 테니스를 시작한 것은 현역 프로야구 선수인 황재균(롯데)의 아버지 영향 때문이었다. 한성희의 아버지(한현진)가 서울 사당초등학교 야구 감독이었는데, 당시 초등학생 황재균의 아버지 황정곤씨가 산업은행 테니스 감독이었고, 그의 권유로 테니스 라켓을 잡은 것이다.
한성희는 “좀 나이들고 프로로 성공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아직 그랜드슬램 시니어 무대에서 뛰는 꿈을 접은 것은 아니다”고 했다. “국내대회와 국제대회를 번갈아 뛰면서 좋은 결과를 얻고 싶어요. 무엇보다 제가 원하는 공을 치고 싶고, 즐기는 테니스를 하고 싶습니다.”
인천/글·사진 김경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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