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택(왼쪽)이 1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에서 홍성찬(횡성고)에게 서브 시범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학연이나 지연 따지면 안 되지만 어쩝니까? 고향집이 서로 100m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
17일 오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13번 테니스코트. 올해 한국 남자테니스 유망주로 급부상한 홍성찬(18·횡성고3)의 전담코치를 자청한 이형택(39)은 첫 훈련 뒤 이렇게 말하며 껄껄 웃는다. 둘의 고향은 공교롭게도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으로 같다. 21살 차이지만 같은 우천초등학교를 다니며 그곳에서 테니스를 시작한 공통점도 있다.
홍성찬은 올 시즌 첫 그랜드슬램대회인 호주오픈 주니어단식 준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대한테니스협회가 삼성증권의 재정적 후원을 받아 앞으로 정현과 함께 그를 집중 후원하기로 하자, 이형택이 새까만 고향 후배의 전담코치를 맡아 세계적 선수로 키우겠다고 발벗고 나선 것이다. 이형택은 2~3년 전 테니스협회 주니어육성팀 지도자로 있으면서 홍성찬 등을 지도한 적 있다.
“2년 전 가르칠 때보다 성찬이는 더 힘이 생겼고, 전체적으로 플레이에 안정성이 생긴 것 같아요.” 이형택은 이렇게 칭찬하면서도 따끔한 질책을 잊지 않는다. “공을 더 빨리 잡아 쳐야 하는데 뒤에서 공이 맞는 것 같아요. 잘못 배운 서비스 폼도 바꿔야 하고….”
한국 남자선수 최초로 2000년 유에스(US)오픈 남자단식에서 그랜드슬램대회 16강 진출 쾌거를 이룬 ‘하늘 같은’ 스승의 따끔한 질책에 제자는 고개를 끄떡이며 이날 연신 파워 넘치는 스트로크를 코트에 꽂았다. “성찬이는 다른 유망주들에 비해 멘털이 좋습니다. 경기 중 절대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아요. 파워는 좀 달리지만 경기 풀어나가는 능력이 괜찮습니다.”
홍성찬은 세계적 권위의 주니어대회인 오렌지볼 12살부와 14살부, 에디 허 국제주니어대회 14살부 등에서 남자단식 정상에 오르며 일찌감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초등학교 때는 국내 대회 122연승을 올리는 등 천하무적이었다.
2007년 8월 남자프로테니스(ATP) 남자단식 랭킹 38위에 오르면서 한국남자테니스의 역사를 새롭게 쓴 이형택은 지금의 홍성찬이 18살 때 자신보다 낫다고 평가한다. “제가 고교생 때는 퓨처스대회 뛴다고 생각도 못 해봤어요. 성찬이뿐 아니라 이덕희, 정현 등 요즘 어린 선수들은 제가 어렸을 때보다 경험이 더 많아요.”
이형택은 한 템포 빠른 스트로크와 리턴 능력을 집중적으로 가르쳐 줄 계획이다. “성찬이는 키(1m74, 64㎏)에 비해 서브가 나쁜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강한 서브보다는 상대의 서브를 빨리 잡아 치는 게 승부에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리턴에 장점을 만들게 할 계획입니다.” 이형택은 앞으로 홍성찬과 짝을 이뤄 복식 경기에도 출전할 참이다. 무려 21살 차이가 나는 복식 파트너인 셈이다. 이형택은 “일찍 결혼했으면 성찬이가 아들뻘”이라며 웃는다. 둘은 23일부터 일본 고후에서 시작하는 국제테니스연맹(ITF) F3퓨처스대회를 겨냥하고 있다. 와일드카드로 복식경기에 출전하는 이형택은 “몸상태가 아직 올라오진 않았다”며 손사래를 친다. 홍성찬은 “처음 출전하는 해외 퓨처스대회이지만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현이 형처럼 랭킹 포인트를 쌓아 더 높은 급 대회에서 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경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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