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이는 스포츠
수원시 장안구 엘아이지(LIG) 인재니움 배구단 체육관에는 웃기고도 살벌한 한자어(?)가 샤워실 문 앞에 붙어 있다. ‘하기실음 관두등가’(河己失音 官頭登可). 친절하게 “물 흐르듯 아무 소리 없이 열심히 하면 높은(원하는)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뜻도 풀이돼 있다. 몇 년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한참 화제가 됐던 이 문구를 붙인 사람은 다름 아닌 문용관 엘아이지손해보험 감독이다. 문 감독은 “선수들이 매 경기 절박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으면 하는 뜻에서 인터넷에서 직접 출력해 붙였다”고 했다. 2005년 V리그 출범 이후 한번도 우승한 적이 없는 엘아이지손보는 ‘불분불계 불비불발’(학문을 하는 데 우선 분발심이 있어야만 한다)이나 ‘승리는 스스로 오지 않는다. 염원하고 실천하여 쟁취하는 것이다!’ 등 분발형 글귀들을 체육관 곳곳에 붙여놓고 있다.
우승을 향한 타는 목마름은 현대캐피탈 합숙소 겸 훈련장인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천안)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Winner takes it all)’는 글귀가 훈련장 한가운데 붙어 있다. 2006~2007시즌 챔프전 우승 이후 삼성화재에 계속 막히면서 해마다 패자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현대캐피탈의 속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7시즌 연속 챔프전 우승에 빛나는 삼성화재 훈련장에는 어떤 문구가 있을까. 바로 ‘팀에 헌신하자’다. ‘겸병필승’(謙兵必勝: 겸손하면 이긴다), ‘전승불복’(戰勝不復: 승리는 반복되지 않는다) 등 자만을 경계하는 한자성어도 체육관 빈곳을 채우고 있다. 삼성화재 구단 관계자는 “팀에 헌신을 안 하면 분업배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신치용) 감독이 다 같이 공감하자고 몇년 전부터 걸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프로야구 더그아웃에도 정신력을 강조하는 문구가 여럿 있었다. 양상문 엘지(LG) 감독은 5월 중순 취임 직후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슬로건을 잠실야구장 더그아웃에 붙였다. 당시 양 감독은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고 싶었고, 스스로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해야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았다”고 밝혔다.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엘지는 이후 기적 같은 반전 드라마를 쓰면서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창단 2년 만에 가을야구에 오른 엔씨(NC)의 홈구장인 마산구장 더그아웃 입구에 붙어 있던 문구는 ‘조금만 더 힘내자!’였다. 넥센 히어로즈의 목동야구장 더그아웃 양쪽 벽에는 지금도 ‘나의 최고의 적은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떨치자’와 ‘오늘 경기에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자’라고 적혀 있다. 선수들은 새해 다짐과도 같은 문구들을 매일 보면서 다시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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