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중일 감독이 고교 시절 가장 잘 던졌다던 슬라이더 그립을 잡고 자세를 취한 모습. 사진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와이드인터뷰]
거침없는 ‘돌직구 승부’ 보여주는 삼성 라이온즈 사령탑 류중일 감독
“2015년에는 판도가 달라질 것. 템포 빠른 야구 하는 한화 김성근 감독은…”
거침없는 ‘돌직구 승부’ 보여주는 삼성 라이온즈 사령탑 류중일 감독
“2015년에는 판도가 달라질 것. 템포 빠른 야구 하는 한화 김성근 감독은…”
그와 처음 만난 때가 2000년이었다.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작전수비코치였던 그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종종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곤 했다. 15년이 흐르는 사이 그는 삼성 사령탑이 돼 있다. 2011년 초보 감독 때부터 일을 내더니 4년 연속 정규리그 및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다. 프로야구 사상 처음이다. “선수 때 한 번도 우승 못했던 것에 대한 보상인 것 같다”며 한결 같은 미소를 짓는 ‘야통’ 류중일(51) 감독을 최근 대구야구장에서 만났다. 투수로도 뛰었던 고교 시절 가장 잘 던진 구질이 슬라이더였지만 지도자 데뷔 이후 그는 거침없는 ‘돌직구 승부’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시리즈 끝나고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
“오랜 만에 골프도 치고 지인들 만나서 술 한잔도 하고 그랬다. 골프는 정말 안 맞아서 세 번 모두 100타를 쳤다.(그의 골프 최고 성적은 68타. 그에게 100타는 ‘재앙’ 수준에 가깝다.) 우승한 뒤 기쁜 마음은 한순간인 것도 같다. 감독이란 자리는 늘 불안하니까 우승하고 난 다음 ‘이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이런 대장정을 펼쳤나’ 하는 마음에 허탈하기도 했다. 물론 준우승을 했다면 아팠겠지만…. 우승 다음날부터 ‘또 (내년 시즌) 시작이구나’ 싶었다. 그래도 코치로 3번, 감독으로 4번이나 우승했으니까 복 받은 것 같다.”
-4년 동안 한국시리즈 치르면서 언제가 제일 힘들었나.
“솔직히 3패(1승)까지 몰렸던 작년이 제일 힘들었다. 올해는 이승엽, 박석민, 김상수가 너무 못 쳐서 경기를 풀어가면서 힘이 들었다. 5차전이 고비였는데 5차전 패하고 7차전까지 갔다면 1, 4차전 못 쳤던 앤디 밴헤켄(넥센 히어로즈)을 다시 만나니까 장원삼이 있었더라도 아마 지지 않았을까도 싶다.”
-마무리였던 오승환(한신 타이거스)이 일본에 진출하면서 올 시즌 전력은 약해진 상태였는데.
“J.D 마틴과 야마이코 나바로가 검증이 안된 상태였는데 잘해줬다. 오승환이 없는 게 가장 큰 위기였는데 임창용이 초반에 잘 버텨줘서 위안이 됐다. 아마 임창용이 없었다면 안지만, 차우찬 둘 중 한 명이 뒤로 가야 하는데 그러면 중간이 비어서 우승 못했을 것이다. 임창용이 블론세이브(9개)도 많았지만 잡아준 경기가 더 많다. 아마 내년이 더 고민스러울 듯하다. 기본은 임창용이 마무리를 하겠지만 혹시 더 구위가 좋은 선수가 있다면 바꿀 수도 있다. 블론세이브를 했을 때 가장 힘든 것은 본인이기 때문이다. 과연 임창용을 대체할 선수가 있을까도 싶은데 스프링캠프 때 일단 선수 준비는 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몇년 째 시즌 초반에 팀이 하위권에 있어도 전혀 조급해보이지 않던데.
“평소 말도 빠르고 목소리도 크고 행동도 빨라서 주변 사람들이 성격이 급할 거라 생각 하는데 어려운 일이 닥칠수록 한 번 더 생각하면서 느긋해지는 편이다. 선친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화를 낼 때 꼭 3번 생각하고 3번 생각해도 화낼 것 같으면 그때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감독이 바빠지면 코치가 바빠지고, 결국엔 선수까지도 바빠진다. 순간에 휘둘리기 보다는 조금 더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시즌을 길게 보면서 장기적으로 팀을 운영하려고 한다.”
-안지만, 윤성환, 배영수 등 5명이 자유계약(FA) 신분이 된다. 삼성은 2005년 이후 외부 에프에이 영입이 전혀 없는 팀이었는데.
“일단 본인들 얘기를 들어봐야 하고 구단 조건도 있을 것이다. 네 번 우승하고도 외부 에프에이를 잡으면 욕 먹을 것도 같은데 아무래도 내부 에프에이 계약 진행 상황을 봐야만 할 것 같다. 우리 선수들이 나이가 많아서 3년 후면 세대 교체가 필요할 텐데 2군에 선수들이 많은 편이 아니다. 엔씨, 케이티가 창단되고 계속 우승도 하면서 신인드래프트에서 4년째 13~14번째 순서로 신인들을 뽑아왔다. 3년 후에는 상황을 봐야 할 것 같은데 지금으로선 외부 에프에이 영입 계획이 없다.”
-평소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수비코치는 투수, 야수, 포수를 다 집합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때부터 대화를 많이 하면서 장단점을 알아왔다. 감독이 되고서도 성격을 못 바꾸겠더라. 그래서 수비코치 시절처럼 하고 있다. 선수들하고 미팅 때는 핵심적인 것이나 큰 그림에서만 짚어주면 선수들이 잘 따라와준다. 11년 동안 코치 생활을 했기 때문에 선수들도 나를 잘 알고, 나도 선수들을 잘 안다. 팀이 정말 어려울 때는 베테랑 선수 몇몇과 소주 몇 잔씩 기울이면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눈다. 외국인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일본 스프링캠프 때 외국인선수들과 따로 식사자리를 마련해 이런저런 대화를 한다. 한국야구 얘기도 들려주고 그들로부터 한국 투수들 얘기도 듣고. 식사 끝무렵에는 몇 승, 몇 할, 몇 홈런 식으로 꼭 내기를 하는데 못 지키면 서로의 아내에게 가방을 사주기로 한다. 작년에 릭 밴덴헐크가 13승 한댔는데 못해서 스프링캠프 때 우리 아내 가방을 사왔더라. 올해는 밴덴헐크와 나바로가 내기한 만큼 성적을 내서 반대로 내가 사줘야만 한다.”
-김인 사장 등 프런트와도 갈등이 없다.
“2011년에 처음 감독이 됐을 때 진짜 불안했다. 준우승 팀을 맡았으니 우승밖에 답이 없는데 선수들까지 많이 아프니까 너무 불안했다. 그래서 오키나와 전지훈련 때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술로 힘든 마음을 다독이기도 했다. 그런데 시범경기 들어가기 직전에 김인 사장이 한 신문기사를 오려서 줬다. 성악가 김우경 인터뷰 기사였는데 제목이 ‘어느날 완벽주의를 버렸다. 비로소 노래가 즐거워졌다’였다. 그러면서 ‘그냥 있는대로 하소’라고 말해주더라. 그때부터 편안해진 것 같다. 지금도 김인 사장은 성경 구절에 좋은 문구가 있으면 문자로 보내주신다. 그대로 보관해놓고 수시로 읽어본다. 이번 아시안게임 금메달 땄을 때도 맨 처음 더그아웃으로 달려와 함께 포옹하고 그랬다.”
대구야구장 감독실에는 그때 김인 사장에게 받은 신문 기사가 4년째 탁자 위에 놓여 있다. 감독실 옆벽에는 ‘아너 소사이어티’(1억 이상 기부한 사람들의 모임)에서 수여한 감사패도 걸려 있다. 류 감독은 지난해 말 재계약(3년 계약금 6억원·연봉 5억원)에 성공한 뒤 2억원을 기부했다. 이 또한 선친의 뜻이 반영됐다. 야구 감독 연봉 5억원은 그가 처음이었다.
“아버지 때문에 야구를 하게 됐었는데 프로 입단 뒤 항상 그런 말씀을 하셨다. ‘너는 중·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등록금 안 내고 공부했다. 받기만 했던 사람은 받아만 왔기 때문에 줄 줄은 모른다. 하지만 네가 야구를 잘해서 혹시나 큰 돈을 만질 기회가 있으면 주변을 살펴보고 꼭 나눠라’라고. 계약금 받고 아내와 상의도 않고 기부를 결정했는데 나중에 말하니까 ‘잘했다’고 하더라.”
-두 아들들에게는 어떤 아버지인가. (그의 큰아들은 유격수 김상수와 나이가 같다.)
“친구 같은 아버지다. 운동하는 사람으로 계속 밖에만 있었는데도 애들이 나를 참 좋아해준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늘 미안한 게 자기 이름으로 못 살아왔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늘 ‘류중일 감독 아내’, ‘류중일 감독 아들’로 불린다. 그런 부분에서 미안하다.”
-유승안 경찰청 감독처럼 아들들도 야구 선수를 시키지 그랬는가.
“큰 아이(호윤)는 야구를 시키려고 일단 쇼트트랙을 시켰었다. 야구를 하려면 발목이 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윤이 친구가 더 잘 타더라. 단 한 번을 못 이겼다. 개인 종목은 한 번 뒤쳐지면 평생 따라만 가다가 끝이 날 수도 있어서 관두게 했다. 야구를 좋아해서 3학년 즈음해서 시켜보니까 야구 할 수 있는 폼이 절대 아니었다. 운동신경은 좋은데 선수를 할 만큼은 아니었다. 공 잡는 것 보니까 딱 알겠더라. 둘째(승훈)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집 앞 놀이터에서 봤던 한 아이의 폼이 너무 예뻤는데 그 아이 부모께 찾아가서 ‘끝까지 후원할 테니 야구선수 시켜라’라고 설득 못 시킨 게 지금까지도 후회된다.”
-화제를 바꿔서 내년에는 10구단 체제가 된다. 가장 부담되는 팀은 어디인가.
“2015년에는 판도가 많이 달라질 것 같다. 쉬는 날이 없어져서 연승, 연패 팀이 많아질 듯하다. 감독자 회의에서 엔트리를 28명(26명 출전)으로 늘리는 것을 제안 중인데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날씨가 추울 때 5인 로테이션으로 하면 힘들기 때문에 4~5월은 6인 로테이션으로 갈 예정이다. 내년에 가장 부담되는 팀은 아무래도 한화다. 김성근 감독은 템포가 빠른 야구를 한다. 데이터에 따라서 투수 교체나 대타 투입이 많다. 검증된 감독이기 때문에 나 뿐만 아니라 다른 팀도 조심해야할 것 같다. 우리가 우승을 했지만 전력이 월등했던 것도 아니었고 내년에는 10구단 케이티(kt)를 빼면 동등한 입장이 아닌가도 싶다.”
-‘형님 리더십’, ‘엄마 리더십’ 등의 말이 나오는데 ‘류중일의 야구’는.
“‘믿음의 야구’라고 하는데 믿는다고 다 되겠는가. 한 팀에서만 계속 해왔기 때문에 코치, 선수들 개개인의 장단점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선수들 개개인의 심리를 꿰뚫고 있다고 보면 될 듯하다. 선수들한테 진짜 필요한 얘기를 해주려고 하고 또 들어주려고 한다. 크게 보면 ‘소통의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겠고, 작게 보면 ‘형님 리더십’, ‘엄마 리더십’이 될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선수, 코치, 감독 시절을 점수로 매긴다면.
“선수 때는 부상이 많았기 때문에 70점, 코치 때는 그래도 우승을 3번 했으니까 80점. 감독은…현재로서는 99점? 너무 후하게 준 건가? 그래도 감독 된 뒤 계속 우승했으니까. 다 채워버리면 안되니까 다른 목표를 위해 1점은 남겨두겠다.”
대구/글·사진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감독 처음 부임했을 때 김인 사장이 손수 오려서 준 신문 기사. 사진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올 초 2억원을 기부하고 받은 감사패. 사진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류중일 감독이 고교 시절 가장 잘 던졌다던 슬라이더 그립을 잡고 자세를 취한 모습. 사진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