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코트에 들어선 순간부터 빠져나갈 곳은 없다.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고, 옆에는 경쟁자가 나란히 같은 벽을 보며 서 있다. 공을 무작정 세게만 때려서도 안 된다. 길게 튕겨 나와 상대방에게 ‘킬샷’의 기회를 내줄 수 있다. 계산된 각도로 공이 가지 않을 때도 많다. 때론 강한 샷보다 속도를 죽인 코너 샷이 필요하다. 구륜회 대표팀 감독은 말한다. “인생하고 참 많이 닮지 않았어요? 경쟁 속으로 들어가면 뒤로 물러설 곳이 없게 되죠. 공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주는 것도 아니고. 상대가 강하든, 내가 강하든 승자는 한명뿐이고 둘 중 한명이 이겨야만 문은 열리죠.” 스쿼시 국가대표팀은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인천 부평구 열우물스쿼시경기장을 ‘펑, 펑’ 소리로 가득 채우고 있다.
테니스·배드민턴·정구 등 일반 라켓 종목이 네트에 의해 구분된 코트에서 서로 마주서서 경기를 펼치는 것과 달리 스쿼시는 가로 6.40m×세로 9.75m×높이 4.57m 이상의 반 코트에서 상대와 같이 서서 공을 주고받는다. 서브할 때만 공을 맨 처음 앞벽에 맞춰야 하고 이후에는 뒷벽, 옆벽 다음에 앞벽을 맞춰도 된다. 바운드는 한번만 허용된다. 천장을 제외한 4개의 벽과 바닥 등 5면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어 ‘입체당구’라고도 한다. 실제로 당구의 스리쿠션처럼 스리월 보스트(볼이 벽면에 3번 맞음), 투월 보스트(볼이 벽면이 2번 맞음) 작전 등이 있다. 5번 연속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대표팀 맏언니 박은옥(37)은 “공간지각력이 필요해서 한번이라도 당구를 접해본 남자 선수들이 더 빨리 습득하는 면이 없지 않다”고 했다.
사방이 벽으로 막힌 반코트서
2바운드 전에 공 쳐내는 경기
강하게 때론 약하게 상대 교란
“테니스 힘·배드민턴 민첩성 필요”
여자 단체전서 은메달 이상 목표
볼이 천장에 닿아도 괜찮은 라켓볼과는 달리 스쿼시는 벽에 표시된 빨간 줄 위로 공이 맞으면 아웃이 된다. 보호 안경(고글)을 쓰고 하는 라켓볼을 스쿼시라고 잘못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스쿼시는 보호 안경을 쓰지 않는다. 골프공, 탁구공보다 작은 스쿼시공은 안이 빈 고무공이다. 선수용 스쿼시공은 검은색(일반코트), 혹은 흰색(유리코트) 바탕에 노란 점이 찍혀 있는데 탄력이 떨어져서 열을 가해줘야만 바운드가 잘된다. 워밍업 5분 동안 선수들이 계속 세게 공을 벽에 치는 것도 고무공을 달구기 위함이다. 가끔 고무공 내부 열이 높아져 터지기도 한다.
경기는 5세트 3선승제로 펼쳐지고 11점을 먼저 얻어야 세트를 따낸다. 경기 평균시간은 40분 정도지만 랠리가 길어질 경우 2시간까지도 펼쳐진다. 경기 동안 심박수는 180~220까지 치솟는데, 스쿼시 운동량은 테니스의 1.5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 감독은 “테니스의 힘과 배드민턴의 순발력, 민첩성이 필요한 게 스쿼시”라고 했다.
제일 중요한 전술은 티(T)존으로 불리는 중원 장악이다. “티존을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상대보다 훨씬 덜 뛰게 되고 발리컷 등의 공격을 주도할 수 있기 때문”(박은옥)이다. 스쿼시의 뜻이 ‘구석에 밀어 넣다’인 것처럼 경기 때 옆벽과 구석 활용을 잘해야만 한다. 구석이나 모서리에 정확히 맞추고 공 속도를 죽여 상대 라켓이 들어갈 공간을 주지 않는 것을 ‘킬샷’이라고 하는데, 어설프게 킬샷을 했다가는 불규칙 바운드가 돼 상대에게 역습의 기회를 내줄 수 있다. 구륜회 감독은 “공간이 넓지 않아서 상대가 웬만하면 공을 다 받아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센스를 발휘해 방향 조절을 한다든지 힘 조절을 해서 상대가 공을 받아낼 수 없게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좁은 공간에서의 싸움이라 공간 확보와 더불어 치열한 두뇌싸움도 필수다. 공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움직임도 간파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박은옥은 “스쿼시는 같은 공간에서 상대와 같이 호흡하면서 상대의 심리를 읽어가며 경기하는 게 가장 큰 매력이지만 쉴 새 없이 머리를 써야 한다”고 했다.
스쿼시는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한국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여자단식 동메달(이해경),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여자 단체전 동메달 등 지금껏 동메달 2개를 수확했다. 말레이시아·파키스탄·홍콩·인도 등의 실력이 출중하다. 이번 대회에서는 여자 단체전에서 은메달 이상의 성적을 바라고 있다. 광저우아시안게임 때처럼 배드민턴 선수 출신으로 공중 볼 처리가 능숙한 박은옥, 백핸드 드롭이 강한 송선미(24)의 활약이 필요하다. 에이스 박은옥은 “한국에서 하는 아시안게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고, 송선미는 “여름에 실내 코트에서 이렇게 땀을 흘리는데 좋은 성적으로 보답받고 싶다”고 했다.
인천/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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