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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9개국 사이클 꿈나무들 “두바퀴만 더 탈게요”

등록 2014-07-23 18:41수정 2014-07-23 22:09

이반(맨 앞·동티모르)을 비롯한 중장거리 선수들이 21일 오후 훈련이 끝난 뒤 250m 트랙을 줄지어 달리며 근육을 풀어주고 있다. 영주/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반(맨 앞·동티모르)을 비롯한 중장거리 선수들이 21일 오후 훈련이 끝난 뒤 250m 트랙을 줄지어 달리며 근육을 풀어주고 있다. 영주/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동티모르·몽골 등 10대 후반 18명
아시아사이클센터 캠프 초청
30도 넘는 트랙서 ‘훅훅’ 구슬땀
10명은 트랙 사이클 ‘첫 경험’
“언젠가는 챔피언 되고 싶어요”
내달8일 광명 세계선수권 참가
아시아사이클센터(WCC-KS)
문화체육관광부의 개발도상국 스포츠 지원 프로그램(ODA)의 일환으로 아시아 각국의 사이클 선수와 지도자들을 육성하기 위해 지난해 설립됐다. 지난해 1·2차에 걸쳐 11개 나라 22명의 선수와 11명의 코치를 초청해 훈련 캠프를 열었고 국내에서 열린 대회에도 참가했다. 올해는 8월14일(1차)까지 주니어 선수들, 그 뒤 9월14일(2차)까진 성인 선수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2차 캠프에 참여한 선수들은 인천아시안게임까지 참가하게 된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후원하고 대한사이클연맹이 운영한다. 국제사이클연맹은 전담 코치를 파견해 선진 교육 프로그램을 전수한다.

벨로드롬은 뚜껑 없는 찜통 같았다. 시멘트가 덧칠된 트랙의 열기는 온도계에 찍힌 ‘32’라는 숫자로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그 열기 속에서 18명의 소년·소녀들이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본 그들의 피부색은 제각각이었다. 한걸음 더 다가가서 본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았다. 한껏 들떠 있었다.

9개 나라 이방인 18명의 동거는 지난달 26일 시작됐다. 장소는 경북 영주시 송학산 자락의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훈련원. 17살 안팎인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사이클 선수라는 것이다. 국적도 실력도 ‘형편’도 천차만별이었다. 자신의 트랙용 자전거를 직접 가지고 온 선수는 6명뿐이었다.

음식도 기후도 낯설었지만 무엇보다 더 낯설었던 건 처음 경험하는 사이클 트랙이었다. “18명 중 10명이 트랙(벨로드롬)을 한번도 타본 적 없는 선수들이었어요. 첫 훈련 때 선수들은 신기해했지만 우린 암담했어요. 넘어지고 서로 부딪히고. 어떻게 가르칠까 막막했었죠.” 이들을 초청한 아시아사이클센터의 업무를 전담하는 박성웅 대한사이클연맹 기획이사가 기억하는 첫 훈련의 추억이다. 한·중·일과 이란, 말레이시아, 타이 등 아시아에서 사이클 트랙을 보유한 나라는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고 한다.

오전과 오후 각각 3시간의 훈련과 밤 10시면 숙소의 불이 꺼지는 수도승 같은 한달여의 시간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40도 가까운 경사를 두려워하던 선수들은 이제 벨로드롬에만 들어서면 눈빛이 진지해진다. 21일 250m 트랙에선 오전엔 스타트 훈련이, 오후엔 개인 추발 훈련이 진행됐다. 땡볕에 헬멧까지 쓴 이들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지루하거나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의욕이 충만하긴 함께 온 코치들도 마찬가지였다. 몽골에서 온 볼드바타린 볼드에르데네 코치는 “6바퀴만 타면 된다”는 한국 코치에게 계속 “두바퀴만 더 타자”고 졸라댔다.

훈련이 끝나고 온몸에 달라붙은 사이클복을 벗으니 나이에 맞는 모습을 찾아갔다. 동티모르에서 온 이반 피르스 드 아라우주(17)를 붙잡고 인터뷰를 하고 있으니 지나가던 선수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서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밥 먹었어요?”라고 먼저 묻는다. “오, 이반, 인터뷰? 유 슈퍼스타.” 이반을 보고선 다들 한마디씩 하며 놀리더니 벤치에 앉아 저희들끼리 또 짧은 영어를 주고받는다. 툭툭 건드리면서 웃고 떠들 땐 영락없는 ‘고딩’들이다.

하이릴 라솔(왼쪽·말레이시아) 등 선수들이 21일 오후 훈련에 앞서 롤러연습장에서 코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몸을 풀고 있다. 영주/박종식 기자
하이릴 라솔(왼쪽·말레이시아) 등 선수들이 21일 오후 훈련에 앞서 롤러연습장에서 코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몸을 풀고 있다. 영주/박종식 기자
개구쟁이 같은 모습이지만 이들 중 일부는 지금 자국 사이클의 선구자로 거듭나는 중이다. 동티모르에서 온 노에 이잘타상 아마랄 봉(17)과 이반은 모두 동티모르 최초의 트랙 사이클 선수다. 스리랑카에서 온 사룰리 판찰리 나왕게(17)와 우데시니 니란자니 쿠마싱헤(18)도 마찬가지다.

노에와 이반은 해마다 동티모르에서 열리는 국제 산악자전거 대회인 ‘투르 드 티모르’를 보고 자전거의 매력에 빠져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한달 남짓한 시간 만에 노에는 이미 트랙 사이클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지금은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트랙 선수권 챔피언이 되고 싶다. 동티모르에도 하루빨리 벨로드롬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이미 자국 주니어 산악자전거 대회에서 우승 경험이 있는 이반은 “트랙이 산악자전거보다 더 위험한 거 같다”며 웃었다. “트랙에서 넘어졌었냐?”고 묻자 눈을 크게 뜨더니 “난 안 넘어졌다”며 손을 내저었다.

18명 중 16명은 내달 8일 경기도 광명에서 열리는 2014 세계 주니어 트랙선수권대회에 참가한다. 한달 동안의 노력을 평가해볼 기회다. 이들은 ‘아시아사이클센터’ 유니폼을 맞춰 입고 참가할 예정이다. 사이클 선수이면서 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육지영 코치는 “한달 동안 눈에 띄게 실력이 늘었다. 아직 메달권에 들긴 어렵겠지만 3~4년 뒤면 시상대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린 선수들은 사이클에 대한 의욕을 새로 가지게 됐다. 어른들의 가장 큰 보람이기도 하다. 박성웅 이사는 “여전히 많은 나라의 사이클 선수들이 비싼 장비와 참가 비용, 시설 부족 등의 이유로 국제대회에 나오지 못한다. 한국에서의 소중한 경험들이 이들 나라에 전파돼 사이클 저변이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동티모르의 조르즈 페레이라 코치는 “훈련이나 교육 내용 대부분이 처음 경험한 것들이라 신기했다. 돌아가서 반드시 우리 연맹이나 정부에 건의를 하겠다”고 말했다.

영주/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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