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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스포츠일반

부상이 바꿔놓은 ‘좀비 스타일’

등록 2014-05-23 18:53수정 2014-05-25 09:09

정찬성 선수가 지난 21일 자신의 체육관인 ‘코리안좀비 엠엠에이(MMA)’에서 어깨 재활운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타이틀매치에서 핵심 근육인 어깨를 다쳤다. 그는 스타일을 바꿔 부상을 극복하려 한다. 소설가가 의식적으로 문체를 바꾸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정찬성 선수가 지난 21일 자신의 체육관인 ‘코리안좀비 엠엠에이(MMA)’에서 어깨 재활운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타이틀매치에서 핵심 근육인 어깨를 다쳤다. 그는 스타일을 바꿔 부상을 극복하려 한다. 소설가가 의식적으로 문체를 바꾸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24) 종합격투기 선수 정찬성의 어깨
▶ 스포츠에서 우리는 인생의 단면을 발견하면서 때로 열광하고 자주 위로받습니다. 부상과 패배는 그 자체로 시련이지만 선수가 그것을 극복할 때 드라마가 됩니다. 종합격투기 선수 정찬성은 지난해 링에서 오른쪽 어깨를 다쳤습니다. 2012년에는 왼쪽 어깨를 다쳤습니다. 어깨 근육은 격투기 선수의 엔진입니다. 정 선수가 고장난 엔진을 어떻게 고치고 전진하고 있는지 찾아가봤습니다. 그의 부상 극복법이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리라 기대했습니다.

스포츠는 인생의 비유법이다. 대중은 스포츠에서 삶의 어떤 면을 발견하고 그것에 감동한다. 스포츠가 그저 기술의 완성도를 두고 경쟁하는 것이라면, 대중이 언더도그의 승리에 열광하고 멋진 패배에 박수를 보내는 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부상과 패배를 극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드라마다. 캐나다의 복싱선수 아르투로 가티는 2004년 잔루카 브란코와 세계복싱평의회(WBC) 주니어 웰터급 타이틀전을 펼쳤다. 가티는 과거 경기에서 오른손 뼈 부상을 입었다. 5회 복부 타격을 하다 오른손 뼈를 다시 다쳤다. 가티는 부서진 오른 주먹을 거의 쓰지 않고 왼손만으로 싸웠고, 한 차례 다운을 빼앗은 끝에, 이겼다. 그러므로 한 만화가의 표현을 빌리면, 스포츠에서는 이기는 것만큼 지지 않는 게 중요하며 굴복시키는 것만큼 굴복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링 위에서 빠진 어깨를 끼우려 하다

프로 종합격투기(MMA: Mixed Martial Arts) 선수 정찬성은 지금 어깨 부상과 싸우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2시40분 정 선수가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코리안좀비 엠엠에이’를 찾았을 때도 정 선수는 한창 어깨 재활운동을 소화하고 있었다. 종합격투기는 복싱, 레슬링, 주짓수, 킥복싱 등 때리고(격기), 던지는(투기) 기술을 링 위에서 겨루는 스포츠다. 어깨 상태를 먼저 물었다.

“근력이 달리는 상황입니다. 밖에서부터 펀치를 좀 크게 내면 아직 통증이 있어요.” 지난해 어깨 부상 장면이 기억나는지 물었다. “4라운드 초반이었어요. 어깨가 빠지기 전에도 뭔가 ‘덜컥’했었어요. 그때 경기중이어서 괜찮다고 느껴서 계속 싸웠는데 빠진 거죠. 왼쪽 어깨도 예전에 다쳤는데 (근육이) 찢어진 거지 빠진 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이거(오른쪽 어깨)는 한번에 확 빠진 거니까. 이런 느낌은 (선수생활 하며) 처음이었어요.”

정 선수는 표정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늘 단답형으로 답하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터뷰이에 속한다. 상대방에게 표정을 감추는 훈련의 결과일까? “(어깨에) 고통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팔을 들어올려야 하는데 의지대로 안 올라오니까, 빨리 싸워야 하는데 안되니 다시 (어깨를) 끼우려고 한 거죠. 그러다 상대에게 (어깨 빠진 것을) 들킨 거고요. 최대한 안 들키려고 신경 썼어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했는데 제 행동(어깨를 끼우려는 행동)에서 티가 난 거죠.”

정 선수는 지난해 8월3일 세계 최대 격투기단체인 유에프시(UFC) 페더급(62~66㎏) 챔피언인 브라질의 조제 아우두 선수와 브라질에서 타이틀전을 벌였다. 많은 도박사들이 챔피언인 조제 아우두 선수의 승리를 예상했다. 예상보다 잘 싸웠다. 3라운드부터 흐름이 정 선수 쪽으로 넘어왔다. 4라운드에 오른팔을 크게 휘둘렀다. 훅의 궤적이 컸다. 주먹이 아우두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순간 어깨가 쑥, 탈골됐다. 투포환 선수가 돌리던 쇠뭉치가 원심력으로 날아가는 것처럼, 크게 회전하던 오른 주먹의 원심력 때문에 어깨가 빠졌다. 왼손으로 오른팔을 부여잡고 다시 어깨를 끼워 맞추려 했다.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챔피언은 한쪽 팔을 쓸 수 없게 된 정 선수를 타격했다. 경기가 끝났다.

어깨 근육은 종합격투기 선수 정찬성을 상징하는 근육이다. 의학적으로 ‘어깨’는 견관절·견갑골(넓적한 삼각형 모양의 뼈)과 그 둘을 덮고 있는 삼각근, 힘줄 등을 통칭한다. 배드민턴을 오래 친 사람들이 걸리는 ‘오십견’이 대표적인 어깨 근육 질환이다. 일반인들이 ‘어깨가 빠졌다’고 표현하는 ‘탈골’은 뼈마디가 어긋나는 부상을 가리킨다. 뼈 주위 근육과 인대도 손상된다. 잡고 던지는 유도 선수는 전완근(팔꿈치부터 손목 사이 근육), 이두근을 많이 사용하지만, 팔을 뻗어 타격하는 복싱 선수는 활배근(허리와 등을 덮은 평평한 근육)과 삼두근, 어깨 근육을 더 많이 사용한다. 따라서 타격기를 주로 사용하는 선수의 어깨 부상 확률이 높다. 타격기 선수의 큰 엔진은 하체이며 작은 엔진은 어깨다. 5분 5라운드 내내 어깨 근육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방어해야 한다. 복싱 초심자들은 3분 1라운드 동안 두 팔을 드는 것조차 힘겹다.

정 선수는 왼쪽 어깨를 2012년 유에프시 대회 더스틴 포이리에와의 시합에서 다쳤고, 오른쪽 어깨를 지난해 다쳤다. 1987년생인 정 선수는 중학교 때 합기도를 배우며 격투기를 시작했다. 킥복싱을 배웠고 이후 종합격투기를 배웠다. 양 어깨, 무릎을 다친 적이 있고 얼굴엔 안와골절(눈 주위 뼈 부상)을 입었다. “킥복싱 할 때부터 하체로 때리는 타입이 아니라 어깨로 때리는 타입이었습니다. 그래서 양쪽 어깨에 다 무리가 온 것 같아요. 격투기 선수 대부분 무릎, 허리, 어깨를 잘 다치죠. 목도 그렇고요. 스물네댓부터 부상을 달고 살았어요. 포이리에전의 경우, 왼쪽 어깨를 경기 전에 다쳤어요. 미트를 치다 다쳤습니다. 당시 저와 포이리에의 경기가 메인 이벤트여서 포기할 수 없었죠. 정상적이었다면 포기했을 겁니다.”

어깨 부상은 직업병 같은 것이다. 직업병을 가진 직업인이 묵묵히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처럼 정 선수는 직업병을 극복하고, 때로 그냥 견디면서 묵묵히 링에 오른다. 정 선수는 재활 전문가 2명의 도움을 받고 있다. 처음엔 팔을 올리는 일상적인 동작도 하지 못했다. 주 단위로 재활운동의 방법과 세기를 달리했다. 기본 재활은 마쳤다. 지금은 근력운동을 하고 있다. 아직 부상 전 어깨와 팔 힘의 40% 정도에 불과하다. 진 경기를 보는 일은 “미치도록” 괴롭지만 최대한 이른 시간에 돌려본다. 대신 그 뒤론 보지 않는다. 패배로부터 성장해온 정 선수의 ‘패배 극복법’이다.

작년 8월 UFC 페더급 챔피언전
4라운드에 크게 휘두른 오른팔
주먹 빗나가자마자 어깨가 쑥
다시 끼우려다 상대에게 들켜
집중적 타격 당한 뒤 경기 끝 

격투기 선수 어깨는 작은 엔진
스트레이트 칠 때 힘 빼지만
5분 5라운드 내내 어깨 근육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방어해야
어깨 부상은 직업병 같은 것

부상 덕분에 앞으로 ‘앞손 먼저’

복싱을 처음 수련하는 초심자는 ‘펀치는 하체 힘에서 나온다’는 말을 지겹게 듣게 된다. 아래에서 위로 전달되는 힘이 회초리의 움직임을 낳듯, 하체의 힘과 움직임이 엉덩이와 허리 근육을 거쳐 주먹에 도달하는 것이 교과서적 펀치다. 스파링을 준비하면서 ‘거리두기’를 배운다. 오른손잡이의 기본 자세(스탠스)는 오른쪽 45도 각도로 몸을 틀어 다리를 벌리고 서서 앞손인 왼손을 굽혀 왼쪽 눈 높이쯤에 대고, 뒷손인 오른손은 입가에 위치해 얼굴을 방어하는 자세를 취한다. 이런 자세에서 앞손인 왼손으로 잽을 던져 상대와의 거리를 재고 적절한 타이밍에 뒷손 오른손 공격을 하는 것이 초심자용 조합이다. ‘잽(왼 주먹)-잽(왼 주먹)-원(왼 주먹)투(오른 주먹)-원투’가 기본 공식이다.

주먹을 뻗어 공격하면 역으로 상대방에게 공격을 허락할 틈이 생긴다는 방어의 기본 원리도 이즈음 배우게 된다. 복싱 초심자는 “뒷손 큰 펀치는 아끼라”는 지적을 숱하게 듣게 된다. 상대가 맞아주기만 한다면 큰 펀치를 휘두르는 게 이익이다. 문제는 대부분 상대방이 맞지 않는다는 데서 생긴다. 팔만 뻗는 왼손 잽은 공격력이 약하지만 상대방이 피해도 다시 회수해 방어에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뒷손인 오른손은 파괴력이 크지만 실패하면 공격자는 몸의 균형을 잃고, 팔을 원래 방어 자세로 되돌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빈틈을 노출시키게 된다. 그래서 공격은 상대방에게도 공격의 시작이 된다.

정 선수의 펀치는 변칙적이다. 잽을 자주 던지기보다 뒷손인 오른 주먹을 내어 상대방에게 일부러 빈틈을 내보이면서 그 공격을 피하고 재반격에 나서는 스타일이었다. 미세하게 거리를 유지하기보다 붙어서 싸우는 인파이터나 슬러거에 가까웠다. 대중은 그 스타일에 열광했다. 그는 유에프시 페더급 랭킹 5위지만, 인기는 1~2등이다.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유명해졌다.

정 선수는 스타일을 바꿔 부상을 극복하려 한다. “팔다리가 길지만 붙어서 싸우는 게 더 자신있어요. 앞손 공격은 작은 공격이다 보니 상대방이 안 속을 수도 있고 (반격을) 안 들어올 수도 있어요. 그러나 ‘투’는 (상대방이) 무조건 들어오죠. 그걸 1년, 2년, 5년 하다 보니 (상대방) 움직임만 봐도 뭐가 올지 아니까 ‘투’로 (공격을) 시작하는 방법을 알아버린 거죠. 그거에만 의존하다 보니 이것(잽)으로 시작하는 걸 몰랐던 거죠. 지금 좋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 이게(뒷손으로 공격) 안되니까 다른 걸로 시작해보자’라고요.”

종합격투기는 그냥 ‘남자들의 싸움’이 아니다. 격렬한 신체 접촉을 걷어내고 보면, 그것은 일대일 단식 스포츠의 하나다. 재활운동이라는 지루한 일상을 견뎌야 버틸 수 있다는 직업이라는 측면도 다른 스포츠와 다르지 않다. 가티는 2004년에 흰 수건을 던지지 않았다. 정 선수도 그럴것이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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