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쇳말 놀이 ➊ 숫자 ‘2’
모든 스포츠는 ‘통’한다. 기록이든, 규칙이든, 용어든 마찬가지다. ‘열쇳말 놀이’는 그 점에 주목한다. 첫 시작은 숫자 ‘2’다. 숫자 ‘2’는 불운(2인자)을 의미할 수도, 도전(2등)을 뜻할 수도 있다. 스포츠 현장에서 꿈틀대는 숫자 ‘2’를 다양한 각도에서 풀어본다.
심정수, 홈런왕 이승엽은 ‘넘사벽’
아사다 마오도 김연아와는 ‘불운’ 영원한 2인자는 불행하다. 절대강자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비극이다.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 팀만 만나면 왜 그렇게 펄펄 나는지.” 프로배구 현대캐피탈 김호철 감독의 고민이었다.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유례가 없는 7연패를 달성한 삼성화재의 영광 뒤엔 현대캐피탈의 눈물이 있다. 현대캐피탈은 숙적 삼성화재의 7연패를 막기 위해 2013~2014 시즌 갖은 노력을 다했다. 삼성화재를 ‘타도하지 못한 죄’로 물러났던 김 감독을 다시 사령탑에 앉힌 게 대표적이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화재와 6번 맞붙어 4번 졌던 김 감독은 이번에도 정규 시즌 전적 2승3패, 챔프전 1승3패로 분루를 삼켰다. 현대캐피탈의 ‘삼성화재 트라우마’는 기록으로 나타난다. 프로배구 원년인 2005년부터 삼성화재를 상대로 한 현대캐피탈의 전적은 31승61패 승률 33.6%로 당연히 나머지 5개 구단과 비교해 가장 낮다. “안방인 천안에서 선수들이 더 긴장한다”는 하소연도 일리가 있다. 삼성화재를 상대로 한 안방 승률이 고작 35.7%(15승27패)다. 긴장한 탓에 안방 이점을 살리지 못했다. ‘라이온킹’ 이승엽(38·삼성)과 동시대를 보낸 심정수(39·은퇴)도 불운한 2인자였다. 심정수가 아무리 홈런을 많이 쳐도 늘 이승엽이 그보다 많이 때렸다. 심정수가 2003년 때린 53개 홈런은 한국 프로야구 한 시즌 홈런 수로는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지만 그해 이승엽의 아시아신기록(56개)에 묻혔다. 심정수는 2007년에야 31개로 홈런왕에 올랐지만 2004년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난 뒤였다. 모래판의 황제 이만기에 가려 만년 2인자 꼬리표를 달고 다녔던 이준희와 이봉걸, 훌륭한 경쟁자였지만 김연아에 막혀 올림픽 금메달 꿈을 이루지 못한 피겨스케이팅의 아사다 마오. 1인자와 2인자의 악연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말로 쉽게 위로가 되지 못하는 스포츠의 슬픈 드라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장성호, 최다안타 양준혁 추격
타이거 우즈, 다승왕 3승 부족 기록은 기억된다. 1등만 그렇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스나이퍼’ 장성호(37)는 현재 양준혁의 기록을 쫓고 있다. 현역 선수들 중 가장 많은 경기(2014경기)에 출장해 가장 많은 안타(2071개)를 친 선수지만 양준혁의 기록은 멀기만 하다. 타수(7332-6990)·안타(2318-2071)·2루타(458-390)·4사구(1380-1155)·볼넷(1278-1081) 등 통산 기록에서 뒤진 ‘2등’이다. 9년 연속 3할 타율을 때려냈던 실력이 있으나 점점 출장 경기수는 줄어들고 있다. 장성호가 통산 최다 안타 1등까지 남겨놓은 숫자는 ‘247’이다. 미국프로야구(MLB) 통산 최다안타 1위는 피트 로즈(4256개)다. 2위는 타이 콥인데, 로즈와의 차이는 불과 67개다. 24시즌 동안 그라운드를 누빈 콥이 해마다 안타 3개씩만 더 쳤다면 뒤집을 수 있었다. 타이 콥은 통산 타격 1위(0.3664)에 올라 있다. 통산 최다승 2위는 월터 존슨(417승)이다. 존슨은 1907년부터 1927년까지 워싱턴 세너터스에서 뛰었으며 통산 완봉승만 110차례(통산 1위) 거뒀다. 사이 영(511승)에 가리기는 했으나 데뷔 때부터 어깨를 다친 1920년까지는 오로지 변화구 없이 속구로만 상대 타자를 처리했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는 칼 말론이 통산 득점 2위(1만3528점)에 자리잡고 있다.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에 가려 우승 반지 한 번 못 껴본 그는, 통산 득점에서도 카림 압둘자바(1만5837점)에 밀려 2등에 만족해야 했다. ‘황제’로 불리지만 통산 기록에서는 아직 1인자가 되지 못한 이도 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39·미국)다. 피지에이(PGA) 투어에서 통산 79승을 거둬 샘 스니드(미국)가 기록한 82승에 이어 2위에 올라 있고, 메이저 대회에서도 통산 14번 우승해 잭 니클라우스(미국·18승)에 이어 2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니클라우스는 최근 인터뷰에서 “우즈가 언젠간 내 기록을 깨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니클라우스는 통산 준우승(19번)도 가장 많이 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조던에 가린 칼 말론·찰스 바클리…
리버풀의 제라드도 ‘우승’ 못해봐 ‘무관의 제왕’은 최상의 기량을 보유하고도 끝내 최고 자리에 서지 못한 이들을 가리킨다. 칼 말론, 찰스 바클리, 존 스톡턴, 패트릭 유잉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미국프로농구(NBA)의 ‘전설’로 통했지만 우승 반지를 단 한 번도 끼지 못했다. 소속팀이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버틴 시카고 불스의 벽에 번번이 막혔다. 바클리는 은퇴 기자회견에서 “누구도 이런 식으로 경력을 끝내고 싶진 않겠지만 모든 게 끝났다”며 마음고생에 까맣게 타버린 속내를 드러냈다. 조던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게 그들에겐 불운이었다.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의 ‘캡틴’ 스티븐 제라드도 명문 구단 리버풀에서 16년간 뛰었지만 프리미어리그(EPL) 우승 반지를 껴본 적이 없다. 팀 동료 대니얼 스터리지가 “제라드는 리버풀을 위해 살았고, 또 죽을 것이다. 그를 위해 반드시 우승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올해는 강호 첼시를 따돌리고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어 우승을 노려볼 만하다. 미국프로야구(MLB) 한 시즌 20승 투수 마이크 무시나는 최강팀 뉴욕 양키스에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활약했다. 하지만 양키스는 그가 없었던 2000년과 2009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기막힌 불운이다. 역대 최다 홈런(762개) 기록을 가진 배리 본즈도 20년 넘게 최고 타자로 활약했으나 팀을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지는 못했다. 큰 대회와 인연을 맺지 못한 스타들도 있다. 이규혁은 2007~2011년 4차례 빙상세계선수권 챔피언에 올랐지만, 6차례 출전한 올림픽에서 최고 성적이 4위였다. 그는 소치올림픽 1000m 경기 뒤 “이제 싸움과 전쟁이 없는 조용한 삶을 원한다”며 얼음판에 작별을 고했다. ‘피겨여왕’ 김연아가 가장 존경하는 미셸 콴도 세계선수권 5회, 전미 선수권 9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가졌지만 올림픽 금메달은 목에 걸지 못했다. 육상의 아사파 파월(자메이카)도 비슷한 처지다. 2007년 100m 9초74를 기록해 한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통했지만,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세계선수권과 올림픽 메달이 없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양키스 은퇴할 2번 지터 영구결번
삼바축구 최다출전 카푸도 2번 1번 빌리 마틴, 3번 베이브 루스, 4번 루 게릭, 5번 조 디마지오…8번 요기 베라·빌 디키, 9번 로저 매리스. 메이저리그 전통의 강자 뉴욕 양키스에서 영구결번된 전설의 선수들이다. 양키스는 미국프로야구 팀 최초로 1929년부터 배팅 오더에 따라 등번호를 달기 시작했고, 점차 다른 팀들도 이를 따라 했다. 이제 양키스 2번이 영구결번 초읽기에 들어갔다. 조 토레 전 양키스 감독의 등번호(6번) 또한 영구결번될 예정이라 2번마저 영구결번되면 한자릿수 등번호를 단 양키스 선수는 더는 없게 된다. 양키스의 마지막 ‘넘버.2’는 2003년부터 12시즌 내내 팀 주장을 맡고 있는 ‘뉴욕의 연인’ 데릭 지터(40)다. 지터는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가 첫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양키스 팬이든 상대 팀 팬이든 기립박수로 그를 맞이한다. 1995년 5월29일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를 때 그는 의도치 않게 2번을 달았다. 1996년 신인왕을 수상한 뒤 현재까지 5차례 월드시리즈 정상에 섰고, 올스타에는 13차례나 뽑혔다. 양키스 팀 역사상 그만큼 안타(3326개)를 많이 때려낸 선수도, 도루(348개)를 많이 한 선수도, 타석(1만649개·이상 15일 현재)에 많이 선 선수도 없다. 포스트시즌에서 때려낸 안타수만 200개(20홈런)라 ‘미스터 노벰버’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오른쪽 윙백으로 공수에서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브라질 축구 대표팀 카푸도 백넘버 2번을 달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는 브라질에서 가장 많이 A매치에 출전했으며, 피파(FIFA) 월드컵 결승전을 3회 연속 누빈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축구의 경우 낮은 번호는 주로 수비수가 달게 되는데,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5차례나 주장을 맡은 수비수 게리 네빌 또한 백넘버 2번의 사나이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 가장 유명한 백넘버 2번은 농구 명예의 전당에 오른 모저스 멀론이다. 9개 다른 팀에서 뛰면서 12차례 올스타에 뽑혔고, 통산 득점 7위에 올라 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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