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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나가노 노메달 아쉽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올림픽”

등록 2014-03-31 18:43수정 2014-04-01 10:21

소치올림픽을 끝으로 ‘21년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이규혁씨가 3월12일 인터뷰 장소인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양복 차림에 유쾌한 표정으로 스케이팅 자세를 잡아 보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소치올림픽을 끝으로 ‘21년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이규혁씨가 3월12일 인터뷰 장소인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양복 차림에 유쾌한 표정으로 스케이팅 자세를 잡아 보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빙속 ‘살아있는 전설’ 이규혁 선수
그는 1993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21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달려왔다. 올림픽 참가 6회로 국내 선수 중 최다 기록이다. 하지만 매번 메달은 그의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이 끝난 뒤 은퇴를 생각했지만 운명처럼 다시 올림픽에 나갔다. 마지막으로 출전한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서도 그토록 바라던 메달은 따지 못했다. 그는 소치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000m 경기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해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부터 시작된 긴 올림픽 여정을 마쳤다.

지난 3월12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간판 선수’ 이규혁(36·서울시청)을 만났다. 이제는 트레이닝복 대신 말쑥한 양복 차림의 신사로 나타난 그는 올림픽 메달을 향한 집념과 숱한 좌절의 시간들에 대해 초연하게 털어놨다. 2012년 대표팀 은퇴를 종용받던 때는 ‘침묵도 언어다’라는 <탈무드>의 글귀를 가슴에 새겼다고도 했다. 그는 요즘 “좋아서 죽겠다”면서도 빙상계의 현실을 말할 때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인터뷰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올림픽을 졸업하고 태극마크를 벗은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중3 겨울부터 올림픽에 나갔다.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너무 빠르다. 선수생활을 오래 해 다른 생각 할 겨를도 없이 여기까지 왔다. 올림픽 성적 때문에 좌절도 맛봤지만 늘 새로 단도리해서 다음 대회에 나갔다. 여지껏 내가 잘해서 올림픽에 나가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주위 사람들이 만들어준다는 것을 운동 20년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4년 전만 해도 몰랐다. 나한테 많은 것을 가르쳐준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선수생활 하면서 가장 후회한 순간은 언제인가?

“98년 일본 나가노 대회가 가장 후회스러우면서 다행스런 올림픽이다. 당시 메달을 땄으면 지금까지 선수생활 안 했다. 그때 지금의 반만 했어도 쉽게 금메달 딸 수 있었다. 너무 큰 기회를 날렸다. 아쉽다. 고집도 세고, 경험도 부족하고, 어려서 실패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기회를 날려서 다행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건방진 운동선수가 됐을 것이다. 4년 전에도 사실 많이 슬펐다. 사람들 앞에서는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아팠다. 나이도 많고 경기력도 많이 떨어져 또다시 올림픽에 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 올림픽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경기력과 심리상태도 좋지 않았는데 물 흐르듯 커트라인을 통과했다. 40명 중에 39번째였다. 나보고 한 번 더 올림픽 가라는 뜻이구나,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어서 도전하게 됐다.”

나가노 때 지금의 반만 했어도…

-좌절에서 일어설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무엇이었나?

“실패했기 때문에 다시 할 수 있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일찍 땄으면 이런 생활 오래 못했다.”

-워낙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인 것 같다.

“어릴 때와 지금 성격이 많이 변했다. 아침형 인간에서부터 제시간에 밥 먹는 것까지 생활습관 하나하나를 올림픽 금메달 따려고 바꿨다. 긍정적인 사람이 되려고 책도 많이 봤다. 끝나고 되돌아보니 나 자신이 꽤 괜찮아졌더라. 올림픽 메달 때문에 화도 났지만 배운 게 더 많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

“탈무드를 자주 읽는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얼마 전 힘들 때 읽으니 다르게 와닿더라. ‘침묵도 언어다.’ 누구한테 화내고 싶을 때 침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구나, 생각하고 계속 읽었다.”

-그때가 언제인가?

“재작년 대표팀 바깥으로 잠깐 나가 있을 때였다. 그때 ‘은퇴하라’고 해서 몇 분한테 서운했다. 선발전 때 성적이 1, 2등이었다. 순서대로 국가대표가 돼야 하는데 그게 어긋났다. 평가하는 사람들의 자질은 과연 누가 평가하는지 의심스러웠다. 화가 많이 난 상태에서 그 글귀를 읽었더니 ‘내가 굳이 말 안 해도 때가 되면 누군가 알게 해주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섯차례 노메달의 좌절
돌아보니 꽤 괜찮은 나로 단련
금 일찍 땄으면 건방진 선수됐을 것

한국 빙속 맏형 이규혁이 12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 경기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역주하고 있다. 2012.2.13  연합뉴스
한국 빙속 맏형 이규혁이 12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 경기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역주하고 있다. 2012.2.13 연합뉴스
-올림픽 끝나고 시간이 좀 지났는데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김연아가 ‘쉬고 싶고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는 것과 비슷하다. 평창올림픽 성공을 위해 일할지 고민하고 있다.”

-지도자, 아니면 행정가?

“구체적으로 생각 안 해봤다. 지도자도 재밌는 부분이 있다. 행정가들은 국가대표로 세계대회에 나가보지 않은 사람들이라 선수들과 의사소통이 다르다. 내가 그 위치에 있으면 선수들이 다른 데 신경 안 쓰고 운동할 수 있게 할 것 같다. 가능성은 다 열려 있다.”

-빙상연맹의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요즘 빙상연맹이 ‘욕’을 많이 먹어 안타깝다. 빙상인 전체가 욕먹을 만한 일을 하지는 않았다. 그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금메달도 따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몇 분 때문에, 그게 화가 난다. 누군가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투명하고 공정한 연맹으로 거듭나야 평창올림픽을 위한 경기력 향상에 집중할 수 있다.”

-투명하고 공정한 것은 사람 문제인가, 아니면 시스템 문제인가?

“사람 문제다. 뉴스에 많이 나오는 그분이 전부 잘못했겠나. 잘한 부분도 굉장히 많고, 그분 때문에 올림픽 메달도 많이 나왔다. 어느 순간 (힘이) 모아지면서 누군가는 피해를 받는 느낌이 생겨난 것 같다.”

-안현수의 선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선택 이전에 나하고는 선후배 관계다. 올림픽 못 나가 좌절이 컸는데 소치에서 성공했으니 우선 축하해주고 싶다. 선수들이 ‘안현수 문제’를 언급하면 때가 묻지 않나. 선수는 경기 잘하면 박수 받고 못하면 반성하는 것으로 충분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문제가 생기는 현실을 바꿔야 되지 않나?

“공정하면 된다. 한쪽으로 너무 기울어지다 보니 욕심도, 편가르는 일도 생긴다. 한 명보다 여러 명이 의견을 내고 논의를 거치는 게 중요하다. 선수일 때는 답답한 부분도 말하지 않았지만 은퇴했으니 의사 전달은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신중하게 생각해서 정말 ‘아니다’ 싶으면 의견을 내서 개선해야 한다.”

-평창올림픽 전망은 어떤가?

“열악한 환경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선수가 없다’. 선수를 보물 다루듯 해줘야 한다. 메달 못 딴다고 방치하고 소외시키면 은퇴나 포기, 두 가지 선택뿐이다. 지금 있는 선수를 얼마나 잘 보살피느냐가 관건이다. 그 속에서 후배들이 따라오는 그림이 좋다. 그러지 않으면 실패한다.”

-후배들을 잘 챙기는데.

“전에는 금메달 따려고, 나를 위해 운동했다. 지금은 ‘후배들이 어떻게 하면 운동을 더 잘할 수 있을까’를 훨씬 더 많이 생각한다.”

-이상화, 김연아와 친한데 비결이 있나?

“같은 종목을 하고 있어 대화가 잘 통한다. 이상화는 중학교 때부터 봤다. 가족같이 함께 지내온 시간이 길었다. 김연아는 대회 때 한두 번 보고 하니 선후배로 아는 사이가 됐다.”

-이상화가 좋아했다고 하던데?

“학교 선후배로 좋아하고 그런 거 아닌가. 내가 국가대표 시작했을 때 그 친구는 스케이트 시작할 나이였다. 내 기억도 어릴 때 선배 보면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얘기가 나왔던 것 같다.”

2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린 제22회 소치동계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해단식에서 이규혁(왼쪽), 이상화 선수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4.2.25. 연합뉴스
2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린 제22회 소치동계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해단식에서 이규혁(왼쪽), 이상화 선수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4.2.25. 연합뉴스
-이상화가 선수생활을 더 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본인의 선택이다. 가족처럼 지내와서 운동도 강압적으로 시키고 많이 혼내기도 했다. 어느 순간 성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되겠더라. 예전 같으면 ‘너 평창올림픽 가!’라고 말했을 텐데 이번엔 ‘내가 너라면 생각도 안 하고 나간다,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이상화는 뭐라 답했나?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심석희가 은메달 따고 미안하다고 말했을 때,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했다. 선수가 가장 미안해할 때는 언제인가?

“나도 처음에는 ‘죄송하다’고 했다. 다른 선수 대신 대회 나가서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 많은 사람들한테 미안해해야 한다. 하지만 올림픽 나가서 최선을 다한 선수가 미안해할 일은 없다.”

은퇴 뒤 지도자? 행정가? 고민중
지도자는 선수 보물 다루듯
선수는 스케이트가 즐거워야

-마지막 경기였던 소치올림픽 1000m 출발선에 섰을 때 특별한 기분이 들었을 텐데?

“유일하게 바뀌지 않는 게 스타트라인에서의 마음가짐이다. ‘이 시합을 어떻게 잘할까’ 집중하는 것뿐, 그 외 다른 생각 안 한다.”

-결혼 계획은 있나?

“지금껏 아낌없이 운동할 수 있었던 힘은 가족이었다. 하지만 점점 가족 속에서 멀어져 있었다. 1년 열두 달 중에서 열 달은 합숙으로 떨어져 있고, 겨우 한두 달 집에 머물 때도 친구 만나러 나가고. 너무 가족한테 소홀했다. 결혼하면 가족과 같이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것이다.”

술 마시고 라면 실컷 먹고…지금 좋다

-평소 운동 말고 무슨 일 하나?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지금은 선수 은퇴했으니 술도 마신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술을 좋아하게 됐다. 술 때문에 사람 만나지는 않고 사람 때문에 마신다.”

-술 말고 어떤 음식 좋아하나?

“음식은 안 가린다. 라면 맛있게 먹는다. 먹지 말라고 해도 너무 당긴다. 운동선수들이 금기시하는 게 튀김·라면 등 인스턴트 음식이다. 이제 경기할 때 에너지를 위한 것보다 건강을 위해 먹어야 하는데, 어떤 보양식보다 친환경 음식이나 식습관이 중요하더라.”

-어린 선수들한테 한마디 한다면?

“스케이트를 재밌게 타야 한다. 재미없으면 관둔다. 선수들보다 선생들한테 더 당부하고 싶다. 재미없이 강압적으로 가르치면 선수 되기 전에 모두 포기한다. 선수가 된 이후에도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일 많은데 과정은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

인터뷰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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