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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오르면 안돼요, 리듬감 있게 산을 타세요”

등록 2014-03-18 19:58수정 2014-03-19 15:40

숲길체험지도사 유승희씨가 리듬감 있게 북한산을 오르고 있다. 산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그는 멸치와 땅콩 등을 산에 가져와 산짐승들을 위해 뿌려준다.
숲길체험지도사 유승희씨가 리듬감 있게 북한산을 오르고 있다. 산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그는 멸치와 땅콩 등을 산에 가져와 산짐승들을 위해 뿌려준다.
[건강과 삶] ‘숲길 체험 지도사’ 유승희씨
주섬주섬 배낭을 뒤진다. 비닐봉지를 꺼낸다. 봉지 안에는 술 안주로 그만인 마른 멸치와 땅콩이 가득 있다. 멸치와 땅콩을 그는 나무 주변에 뿌린다.

“이렇게 뿌려 놓으면 겨우내 먹을 것이 없어 헤매는 산짐승들이 와서 먹어요.”

그동안 배낭에 나와 나의 산행 친구들인 ‘인간’의 먹을 것만을 넣어 다니던 ‘이기심’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한 번도 산을 지켜주고, 인간과 화합을 모색하며 살아가고 있는 산짐승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산새들의 정겨운 지저귐만을 소중하게 생각했을 뿐, 그 산새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지 않았고, 그 산새를 위해 어떤 배려가 필요한지도 느껴보지 않았다.

산짐승들을 위한 조그만 선물을 남긴 그는 이제 주변의 담배꽁초와 비닐봉지 등을 섬세하게 줍기 시작한다. 기억해 보니 그는 산에 오르면서 보이는 대로 ‘쓰레기’를 주워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버리는 이가 있으면 줍는 이도 있어야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요.”

그와의 산행은 유쾌하고도 특별했다. 지난 13일 오전,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듯 쌀쌀한 바람이 산자락을 감도는 서울 북한산 의상봉 기슭에 접어든 그는 마주치는 등산객들과 빠짐없이 인사를 나눈다. 거침없이 먼저 인사말을 건넨다. “안녕하세요, 좋은 산행 되세요.”

밝게 웃는 표정으로 나누는 인사에 상대방도 그냥 가질 않는다.

“어머, 어제 뵌 분이네요. 호호.” 40대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반가워한다. 아마도 진심으로 하는 정겨운 인사말이었기에 기억할 것이다.

‘숲길 체험지도사’ 유승희(70)씨의 이런 행동은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산행을 하며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 유씨는 고교 시절에 야구 명문 덕수상고의 야구선수였다. 유격수로 활약하던 그는 대학을 진학하며 야구를 그만두었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 졸업 뒤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결혼을 하곤 새벽마다 산에 올랐다. 신혼살이는 우이동에서 했기에 도봉산을 올랐고, 신림동으로 이사해선 관악산을, 다시 일산으로 이사해선 북한산을 올랐다. 약수 받아 나르는 것은 식구들을 위한 봉사였다. “지난 세월 매일 쓴 일기를 들춰보니 북한산만 천여번 올랐더군요.”

숲길체험지도사 유승희씨가 리듬감 있게 북한산을 오르고 있다. 산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그는 멸치와 땅콩 등을 산에 가져와 산짐승들을 위해 뿌려준다.
숲길체험지도사 유승희씨가 리듬감 있게 북한산을 오르고 있다. 산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그는 멸치와 땅콩 등을 산에 가져와 산짐승들을 위해 뿌려준다.

야구선수 출신으로 꾸준히 산행
일흔 나이에도 젊은이 못지않아
동작 끊어지지 않게 관성 유지
‘고양이 걸음’으로 체력 아껴야
1자로 걸으면 다리에 힘 생겨

무역회사에 취직한 그는 ‘놀봄산악회’에 가입해 본격적인 산행을 했다. 주말마다 수도권의 산에 다녔고, 한 달에 한 번씩 장거리 산행을 다녔다. 전국의 대부분 산에 올랐다. 유럽이나 미주 대륙 출장 때도 틈을 내서 높은 산에 올랐다.

15년 전 무역회사를 그만둔 그는 은퇴 뒤에도 꾸준히 산에 올랐다. 단순히 자신의 건강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같이 산행하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산의 나무를 사랑하고, 산의 짐승들을 아끼는 산행이었다. 마침 지난해 산림청에서 올바른 산행 지도자를 육성하는 ‘숲길 체험지도사’ 제도를 마련하자, 그는 1기로 지원했다. 숲길체험지도사는 숲길의 생태자원을 보호하고, 산림 환경의 중요성과 올바른 등반 요령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100시간의 이론교육과 30시간의 실습교육을 거쳐 자격증을 따냈다. 가장 나이가 많았다. 대부분 등산 전문가들이었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올바른 산행 방법과 암벽 등반의 요령 등을 익혔다.

“산을 오르는 것은 지구 중력에 저항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힘이 들어요. 수평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몇배의 산소가 필요하고 에너지가 소모돼요. 건강을 위해서 오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오르는 산행은 쉽다고 막 오르면 안 돼요.”

유씨가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산길을 뛰어 오르내리는 것. 특히 빠른 시간에 긴 거리 산행을 경쟁하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수도권의 불암산~수락산~도봉산~북한산을 연이어 오르내리는 이른바 ‘불수도북’ 같은 산행은 무릎 관절을 다치게 하기 때문에 말리고 싶다고 한다.

“젊은 시절 산을 좋아하고 열심히 다니던 선후배들이 지금은 같이 산행을 하더라도, 산 초입에서 자리 잡고 앉아 산에 오르지 않아요. 관절이 고장 나 있기 때문이죠.”

유씨는 ‘고양이 걸음’으로 산행하라고 조언한다. 오를 때는 낮은 데부터 딛고 오르고, 내려갈 때는 높은 곳부터 조심스럽게 디뎌야 한다는 것이다.

“산길을 힘을 주며 올라가면 안 돼요. 금방 피곤해지고 체력 소모가 많기 때문이죠. 오를 때에는 약간 발끝을 올려서 발바닥 전체로 지면을 누르는 듯 사뿐하게 발을 착지시켜야 해요. 보폭은 작게 해야 해요. 올라갈 때는 신발끈을 약간 느슨하게 매면 걷기가 편하죠.”

경사가 심한 곳을 오를 경우에는 천천히 한발 한발 일정한 템포로 올라가야 한다. 성급하게 서두는 것은 피해야 한다. 또 너무 자주 쉬게 되면 리듬이 깨진다. 힘이 부치면 1, 2분 서서 휴식한 후, 다시 일정한 템포로 걷는 것이 중요하다.

유씨가 강조하는 것은 산행의 리듬감이다. 전체적으로 산에 오르는 동작이 끊어지지 않고, 연속적으로 리듬감 있게, 움직임의 관성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배낭을 잘 메야 한다고 한다. “산에서 9㎏ 정도의 배낭을 메면, 오를 때는 평지보다 9배, 내려갈 때는 평지보다 6배 정도의 산소가 필요합니다. 가능한 한 상하, 좌우 움직임을 작게 해 에너지의 소비를 줄여야 하죠.”

그래서 유씨는 산을 오르내릴 때 어깨춤을 추듯 ‘덩실덩실’ 부드럽고 리듬감 있게 몸을 움직인다. 그래서 몸과 배낭의 하중을 그 리듬에 따라 유연하게 이동시킨다.

그의 배낭은 자신이 직접 제작했다. 산길에 휴식을 취할 때 배낭을 깔고 앉을 수 있게 접이식 철제 의자를 배낭에 부착시킨 것이다. 의자는 배낭 등받이 구실도 한다.

4-3-3 체력 안배도 유씨가 강조하는 ‘산행 전략’이다. 산에 오를 때 체력의 40%를 쓰고, 내려올 때 30%를 쓴다. 나머지 30%는 완전히 산에서 내려온 뒤에도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유사시 위험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힘이 빠졌다고 터벅터벅 8자로 걸으면 무릎 관절염에 걸려요. 다리를 안쪽으로 모아 1자로 산길을 걸어 보세요. 다리에 한결 힘이 생깁니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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