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한국시각) 러시아 피시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4 소치 겨울올림픽 폐막식에서 마스코트인 토끼, 북극곰, 눈표범이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다음 대회는 4년 뒤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다. 소치/연합뉴스
올림픽 폐막식을 보고
스토리텔링과 음악
디지로그 빛난 무대
평창도 준비 시작을
스토리텔링과 음악
디지로그 빛난 무대
평창도 준비 시작을
소치 겨울올림픽 폐막식은 잘 만든 한 편의 예술퍼포먼스였다. 언어가 없으니 논버벌 퍼포먼스라고 해야겠다. 개막식이 러시아 국가의 역사와 위대함을 과시하며 스펙터클한 서사를 이끌어낸 공연이었다면, 스위스 연출가 다니엘레 핀치파스카가 기획한 폐막식은 환상과 꿈을 그린 유쾌하고 즐거운 예술공연이었다. 물론 러시아라는 국가를 과시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이번 올림픽 자체가 작정하고 국가의 위신을 세우는 작업이다.
폐막공연은 ‘러시아의 반영’이라는 제목으로 예술에 반영된 러시아의 문화유산을 보여준다는 의도였다. 미술, 음악, 무용, 문학, 공연(서커스) 등 장르별로 구분하여 각각에 맞는 방식으로 풀어나간 것이 다채로움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런 의도와 구성은 예술부문에서 풍부한 자원을 가진 러시아에 적합한 방식이었다. 샤갈, 차이콥스키, 톨스토이 등 러시아가 내세우고 싶은 예술부문 거장들의 이야기와 이미지들은 풍성하고 넉넉했다.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 비올리스트 유리 바시메트 등 현역으로 활동중인 스타 예술가들과 볼쇼이·마린스키 발레단, 전통 서커스까지 망라되었다. 러시아가 자랑하고 싶은 근현대 예술적 자원이 총동원된 것이다.
소치의 폐막공연은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성공에 특히 기여한 것으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단순하고 명쾌한 스토리텔링이다. 성공적인 예술서커스 등 대형 공연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서사구조와 닮았다.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장관들을 단순한 이야기구조로 꿰어 대규모 관객들과 쉽게 통한 것이다. 쉽고 명쾌한 이야기구조는 수만명의 관객과 문화적 배경이 다른 수많은 지구촌 시청자에게 접근하는 기본 조건이다. 둘째는 음악이다. 대사가 없고 이미지가 압도하는 프로그램에서 이들을 연결하고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소리다. 일반 공연도 그렇지만 이런 종류의 공연에서 소리의 몫은 절대적이다. 더욱이 러시아는 음악 자산이 매우 풍요로운 나라다. 러시아 작곡가들의 곡만으로 프로그램을 끌고 가는 데 무리가 없었다.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음악들이 공연을 더욱 공연답게 만들었다. 셋째는 테크놀로지다. 초대형 프로그램에서 테크놀로지와 아날로그의 적절한 결합은 필수적이다. 출연자들의 움직임과 퍼포먼스는 기술적으로 도움을 받으며 완성된다. 최근 초대형 이벤트에서 보여주는 기술의 진화는 놀라울 정도다. 소치 폐막공연은 공간을 확장하고 영상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등 테크놀로지의 도움으로 더욱 빛났다.
폐막식 마지막 무대에 오른 평창올림픽 홍보 공연은 아쉬웠다. 공연 현장에서 일한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처음부터 소치는 쉽지 않은 작업 환경이었을 것이다. 아리랑 메들리와 가야금 연주, 아이들과 한국 선수들이 눈사람과 어우러져 춤추는 장면 등이 등장하는 공연 내용은 폐막공연 전체 기조와 맞추기 어렵고, 대형 운동장 공연에서 기본적으로 받아야 할 기술 지원 등은 부족했을 것이다. 폐막공연 전체의 콘셉트와 완전히 다른 우리만의 콘셉트로 8분 만에 대등한 감흥을 주는 것은 힘든 일이다. 운동장은 넓고 폐막 현장은 어수선했다. 현장 관객을 제외한 절대다수는 공연을 텔레비전으로 보게 되는데 무정한 카메라는 겉돌았다. 열심히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공연이었다.
4년 뒤 평창에서는 우리가 주도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이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그를 감당할 기술이나 문화적 자원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치 개폐막 공연이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을 우리나라 안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소치에서 만든 개폐막식 무대는 재료와 원천은 모두 러시아에서 찾았지만 요리에는 세계가 참여한 작품이다. 그렇다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시간이다. 평창도 슬슬 시작할 때다. 그래도 많이 빠르다고는 할 수 없다.
이승엽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학과 교수
이승엽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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