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안(안현수)이 22일(한국시각) 아이스베르크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m 경기에서 우승한 뒤 러시아 국기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소치/연합뉴스
‘불멸의 기록’ 세운 안현수 기자회견
“한국에 뭔가를 증명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나?”
공식 기자회견 도중 이런 질문이 나왔다. 그러자 빅토르 안(29·한국 이름 안현수)은 “선수는 누구나 결과로 보여주기를 원한다. 누구에게 뭔가를 증명하기보다는 이것이 나의 목표였다. 다시 올림픽에 나와 경기를 치를 수 있는 것 자체가 너무 기뻤고, 거기에 의미를 두고 싶다”고 답했다.
22일 새벽(한국시각) 아이스베르크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마지막날. 안현수는 남자 500m(41초312)에 이어 5000m 계주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며 겨울올림픽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21살의 나이에 출전한 2006 토리노 올림픽에서 3관왕(남자 1000m, 1500m, 5000m 계주)에 오른 이후 8년 만의 두번째 3관왕(1000m 금 포함) 등극.
비록 8년이란 간극이 있었지만, 심각한 무릎 부상을 극복해낸 인간승리였다. 특히 천부적인 스케이팅 기술, 인코스를 파고들며 때로는 아웃코스를 폭발적으로 질주하며 순식간에 앞선 선수를 뒤로 따돌려버리는 감각은 그가 여전히 ‘쇼트트랙 황제’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올림픽 쇼트트랙에서 이런 업적을 이룬 선수는 없었다.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쇼트트랙 4개 전 종목에서 금메달을 일궜다. 금메달 6개(동 2개) 역시 남녀 통틀어 최다 기록이다. 중국의 왕멍이 보유했던 올림픽 쇼트트랙 최고 성적(금4, 은1, 동1)을 뛰어넘었다. 미국의 안톤 오노가 가진 올림픽 쇼트트랙 최다 메달(8개)과 타이를 이뤘다.
안현수는 러시아로 귀화한 이유가 한국내 한체대와 비한체대의 파벌싸움 때문은 아니라고 했다. “파벌싸움은 있었지만 그게 러시아로 귀화한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운동을 정말 하고 싶었고, 나를 믿어주는 곳에서 마음 편히 운동을 하고 싶었다. 모든 걸 감수하겠다는 생각으로 내린 결정이었고, 그 선택에 지금도 후회가 없다.”
러시아를 선택한 이유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러시아에 올 때는 처음부터 귀화에 대한 생각과 확신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다. 여기서 훈련하면서 좋은 환경과 시스템을 봤고, 솔직히 부상이 컸는데도 나를 믿어준다는 것이 가장 컸다. 처음 와서 1, 2년은 힘들었다. 적응 문제도 있었고 나의 조급함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를 믿어주고 마음 편하게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러시아는 나를 인정해주고 믿어주는 곳이어서 결정을 내렸다.”
안현수는 “귀화 이유에 대해 아버지가 너무 많은 인터뷰를 하셨다. 그런 부분에서 아버지와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부풀려졌다. 아버지가 나를 너무 아끼는 마음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하지만, 나 역시 피해를 보는 부분도 있었기에 의견 충돌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2008년 무릎 부상을 당했고 그 여파로 1년에 4번의 수술을 했다. 그래서 (2010) 밴쿠버 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이 열리기 전에 한달밖에 운동을 못한 상태에서 선발전에 출전했고 결국 탈락했다. 나에게 특혜를 줘야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에는 한국의 룰이 있고 거기에 맞춰서 준비를 해야 했다.” 그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자꾸 나 때문에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리고 한국 선수들과 부딪히는 것 같은 기사들이 많이 나가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후배들을 위해 혹은 빙상계를 위해 조언해줄 게 있느냐는 질문에도 답했다. “양쪽에서 운동을 해본 결과, 선수들에게 맞는 운동은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많은 선수도 있고 어린 선수도 있는데 같은 운동을 하다 보면 좋아지는 선수도 있겠지만 안 좋아지는 선수도 있다. 러시아에서 훈련하면서 각자에게 맞는 다른 프로그램을 가지고도 대표팀이 함께 운동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현장에서 열띤 응원을 벌인 우나리(30)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결혼식만 안 올렸을 뿐이지 사실상 부부관계다. 한국에서 혼인신고도 했다. 러시아 쪽에서 배려를 많이 해줘 함께 시합도 다니고 항상 곁에서 힘이 되는 사람이다.”
소치/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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