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다 마오가 19일(현지시각) 아이스베르크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겨울올림픽 피겨 여자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점프 뒤 넘어지고 있다. 소치/연합뉴스
소치 2014
엉덩방아 찧는 등 부진하자
일 언론 ‘소치의 비극’ 분석
“늘 곁에 있던 어머니 2년전 사망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에 무너져”
엉덩방아 찧는 등 부진하자
일 언론 ‘소치의 비극’ 분석
“늘 곁에 있던 어머니 2년전 사망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에 무너져”
아사다 마오(24·일본)가 아이스링크 중앙으로 나왔다. 연기를 펼치기 전 긴장한 모습이 엿보였다. 그는 첫 점프인 트리플악셀을 시도하다 단체전에 이어 또다시 엉덩방아를 찧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아사다는 19일(현지시각) 열린 2014 소치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16위(55.51점)에 머물렀다. 일본 석간신문 <후지>는 이날 아사다의 부진을 “소치의 비극”이라고 보도했다.
아사다는 2011년 12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다음날 “내년 3월에 열리는 프랑스 세계대회 대표 선발을 겸한 일본피겨스케이팅대회에 출전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열도는 모두 “아사다의 강인한 정신력에 박수”를 보냈다. 아사다가 우승을 차지하자 또다시 그의 정신력을 칭찬했다. 일본 언론들은 “21살의 아사다 마오가 강인한 정신력으로 우승했다”고 보도했다. 아사다의 주니어시절 코치였던 야마다 토모코는 “아사다는 오늘도 강했다”고 칭찬했다. 사토 노부오 코치는 “그의 성장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어머니를 잃고 출전했던 대회에서 우승을 했지만, 아사다는 여전히 ‘어머니의 환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대회 우승 후 “엄마가 내려왔다. 이제 기쁘게 생각한다”며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아사다에게 어머니는 그의 전부였다. 메달을 따면 “가장 먼저 드리고 싶은 사람도 어머니”였다.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아사다는 가장 먼저 어머니의 목에 메달을 걸어줬다.
아사다에게 어머니는 연습과 경기에 언제나 함께한 어머니 그 이상의 존재였다. 아사다의 스트레칭을 도와주고, 밤 늦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귀가하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아사다는 그런 어머니한테 항상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았다. 아사다는 어머니의 애정으로 자신의 재능을 링크에서 꽃 피운 ‘비운의 천재 소녀’였던 셈이다.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는 그냥 즐겁게 스케이트를 탔고, 소녀의 프라이버시까지 잔소리를 늘어놓던 언론 조차도 두렵지 않았다.
김연아가 주목받기 전까지 일본 언론들은 ‘미라클 마오 시대’를 지나 새로운 ‘시니어 마오’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아사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목표를 설정해 줄 어머니는 더 이상 없었다.
아사다는 이날 ‘나만이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던 트리플악셀에서 실수를 연발했다. <마이니치>는 아사다의 실패 이유로 ‘긴장’과 ‘혼란’을 들었다. 아사다는 단체전에서 실패했던 점프에 대한 중압감도 컸지만, 어머니의 부재 속에서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강한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이 너무 지나쳤는지 “스스로 내 안에서 무너졌다”고 했다.
모두가 소치 올림픽에서 아사다의 부활을 기다렸지만 눈물을 닦고 일어서려는 아사다의 멘털은 어머니라는 ‘유리 상자’에 갖혀 있는 듯 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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