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속 1000m 21위…‘올림픽 20년 도전’ 마침표
세계선수권 4번 우승했지만 올림픽선 노메달
세계선수권 4번 우승했지만 올림픽선 노메달
“올림픽 메달이 없어 약간은 부족한 스케이트 선수로 남게 됐다. 그러나 올림픽 때문에 많이 배웠다.”
올림픽 무대만 6번째 밟은 국가대표 빙상팀의 맏형 이규혁(36·서울시청)이 12일(현지시각) 러시아 소치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2014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 경기를 끝으로 올림픽 무대에 ‘안녕’을 고했다. 올림픽 무대 마지막 기록은 1000m 1분10초04. 전체 40명 중 21위. 스스로 “올림픽 메달이 없어 부족한 선수”라고 했듯이 이날 상위권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한 점 아쉬움 없는 질주를 하고 싶었는지 6조 출발부터 이를 악물고 달렸다. 600m 지점을 41초76에 통과하는 등 당시까지 뛴 선수 가운데 가장 빨랐다. 하지만 이후 급속히 체력이 떨어졌다. 이규혁은 “600m 지점까지 갔을 때 예전 같으면 메달을 가늠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체력의 한계를 고백했다.
1991년부터 24년간 태극마크를 달아온 이규혁은 스케이트 선수 출신인 부모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1993년 독일에서 열린 월드컵을 계기로 국제무대에 데뷔했고, 이후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부터 이번까지 6번의 올림픽 무대에서 500m와 1000m 메달에 도전했다. 올림픽보다 낮은 수준의 월드컵에서는 여러 차례 정상에 서기도 했다. 단거리 종목의 최강자를 가리는 세계스프린트대회에서 2007, 2008, 2010, 2011년 4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2011년에는 종목별 세계대회 500m 정상에 올랐다. 월드컵 금메달만 통산 14개다. 1997년에는 1000m(1분10초42), 2001년에는 1500m(1분45초20)에서 당시 세계기록을 작성했다. 하지만 올림픽 무대에서 좀처럼 한계점을 돌파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모범이 됐던 이규혁의 존재로 인해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금메달 삼총사’인 이상화, 이승훈, 모태범이 출현할 수 있었다. 이상화의 경우 특히 이규혁의 조언과 격려를 가장 많이 받았다. 이상화는 이규혁의 말이라면 절대적으로 따른다.
여름과 겨울올림픽을 통틀어 6차례 올림픽에 나선 국내 선수는 이규혁이 유일하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올림픽 메달에 걸었다. 최근에는 “20대까지는 모든 경기에서 일등을 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30대인 지금에 와서 세상은 성공과 실패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닌 줄 알았다. 이제 경기를 하면서 즐기겠다”고 말했다.
이규혁은 이제 떠나야 한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뒤 “안 되는 것에 도전하는 게 슬펐다”며 눈물을 쏟았던 이규혁은 이날 소치에서 “이제는 선수로서 (올림픽 무대에서) 스케이트를 못 타는 게 슬프다”며 작별을 고했다.
소치/허승 기자 raison@hani.co.kr
기자 한국 빙상의 이규혁이 12일 (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 경에서 역주하고 있다. 2104.2.12 소치/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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