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이 8일(한국시각) 2014 소치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 경기를 마친 뒤 아쉬운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소치/연합뉴스
소치 겨울올림픽
빙속 5000m서 12위 그쳐
강점인 후반 스퍼트 사라져
“잠 못 잘 정도로 적응 실패”
빙속 5000m서 12위 그쳐
강점인 후반 스퍼트 사라져
“잠 못 잘 정도로 적응 실패”
265㎝의 발바닥은 물집투성이다. 5000m, 1만m를 달려야 하니 발이 성한 곳이 없다. 그 발로 4년을 기다려 받아든 기록은 6분25초61로 12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 은메달을 기대했던 이승훈(26·대한항공)은 믿기 힘든 듯했다.
하루가 지난 9일 오후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대표팀 훈련에 참가한 이승훈은 “자신 있었고 준비도 철저히 했는데 부족했다. 네덜란드와 유럽의 벽은 철옹성 같았다”고 털어놨다. 또 “스벤 크라머르의 우승은 예상했지만 2, 3위를 기록한 다른 네덜란드 선수들의 기록은 예상보다 저조해 자신감이 있었는데, 출발 때부터 여유가 없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했다.
실제 코너링과 3000m 이후에 더 속도를 내는 이승훈의 장점이 전혀 발휘되지 않았다. 마지막 세 바퀴가 29초대로 경쟁자들보다 1초가량 빨랐던 밴쿠버올림픽 때와 달리, 31~32초대로 저조했다. 3000m 전까지는 크라머르보다 1~5초대로 늦었지만, 마지막 세 바퀴에서는 9~14초대까지 벌어졌다. 밴쿠버 때 막판 세 바퀴 차이는 1초 남짓이었다. 5000m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받아든 것에 대해서는 현지 적응 실패와 심리적 부담감을 들었다. 이승훈은 “러시아에 와서 잠을 못 자는 등 적응을 잘 못했다. 전날까지 괜찮았지만 경기장에 오니 긴장되더라. 이겨냈어야 하는데 제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밴쿠버에서는 보란듯이 은메달을 땄지만, 이젠 메달은 당연하다는 주변의 시선이 부담으로 작용한 셈이다. 이승훈은 “이번 시즌에 좋아진 부분이 많고 기록이 좋았는데 결국엔 올림픽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올림픽은 특별하다”고 말했다. 밴쿠버올림픽 때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감독이었던 김관규 대한빙상경기연맹 전무는 “이승훈은 3000m 이후 빨라지는데 자신보다 뒤처진다고 생각한 독일의 파트리크 베케르트가 같은 조 경쟁에서 계속 레이스를 이끌어 나가면서 급격히 긴장했을 수 있다. 또 마지막 조에 뛰면서 크라머르가 좋은 기록을 찍은 게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승훈은 밴쿠버 이후 후반 구간 기록은 안 좋았지만, 지난해 열린 월드컵에서 두 차례 동메달을 따내며 다시 시동을 걸었다. “역기를 들어올릴 때와 얼음을 칠 때 허벅지의 힘이 비슷하다”며 역도 훈련까지 병행했고, 쇼트트랙의 코너돌기 훈련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하지만 올림픽 메달은 미친 듯이 훈련한 대로 목에 거는 게 아니다. 이승훈은 18일 5000m보다 더 힘든 1만m와, 21일 팀추월을 앞두고 있다. 이승훈은 “1만m도 네덜란드가 강하겠지만 다른 선수를 의식하지 않고 5000m보다 좋은 성적을 내겠다. 팀추월에서 잘하려면 형인 제가 기죽어 있으면 안 된다”며 씩씩하게 경기장을 떠났다.
남지은, 소치/허승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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