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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스포츠일반

소치올림픽을 누려~

등록 2014-01-10 20:38수정 2014-01-20 15:43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자신의 소속사 브리온 사무실에서 만난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25·서울시청) 선수가 밝게 웃었다. 이상화는 “올림픽에 대한 부담이 없지는 않지만 항상 해왔던 대로 열심히 훈련하겠다”며 한달 남은 소치겨울올림픽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자신의 소속사 브리온 사무실에서 만난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25·서울시청) 선수가 밝게 웃었다. 이상화는 “올림픽에 대한 부담이 없지는 않지만 항상 해왔던 대로 열심히 훈련하겠다”며 한달 남은 소치겨울올림픽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2연패 노리는 빙상계의 우사인 볼트
경기 한달 남긴 이상화 선수 인터뷰
▶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은 이상화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현재 이상화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자 단거리 스케이터이지요.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타고난 체력과 강인한 승부근성, 자신의 노력 등 이상화는 최고의 운동선수가 갖춰야 할 덕목을 다 갖췄습니다. 소치로 가기까지 남은 한달, 이상화는 자신과의 싸움을 준비합니다. 이상화의 소치는 2월11일 밤 9시45분(한국시각)에 시작됩니다. 그가 빙판 위에서 펼쳐갈 36초 동안의 여행을 응원합니다.


“식사하셨어요?”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인터뷰 앞뒤로 두 건의 기업홍보대사 촬영 일정이 차 있었다. 소속사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먹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바빠 보였다. 미안한 듯, 그러나 똑부러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이 정말 모든 일정의 마지막이에요. 한달 동안 훈련에만 집중할 거예요.”

2014 러시아 소치겨울올림픽 개막을 29일 앞둔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소속사 브리온 사무실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25·서울시청) 선수를 만났다. 피겨의 김연아와 함께 소치올림픽 금메달 후보 1순위로 꼽히며 ‘빙상계의 우사인 볼트’로 불린다. 금메달을 바라보는 500m 경기는 다음달 11일 한국시각으로 밤 9시45분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아레나 스케이팅센터에서 열린다. 1000m 경기도 출전하지만 메달은 크게 기대 안 한다. 5위권을 예상한다.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1월18~19일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 출전하지 않기로 했다. 국내에서 2주간 훈련을 하고, 오는 25일 대표팀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렌베인으로 떠나 유럽 적응 훈련을 한 뒤 바로 소치로 간다. 올림픽까지 남은 한 달, 마음은 이미 소치 경기장에 닿아 있었다.

­소치올림픽이 한 달 남았네요.

“다른 시합과 같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모든 시합이 다 날짜는 잡혀 있는 거잖아요. 경기가 한 달 남았다 정도로만 생각해요.”

-몸 상태는 어떤가요?

“지난해 세계신기록을 냈을 때, 그리고 귀국하고 나서도 심한 감기에 걸려 있었어요. 많이 회복됐어요. 100% 컨디션 기준으로 70% 정도?”

­아픈 몸으로 신기록까지 낸 거예요? 참았나요?

“제가 감기에 걸렸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알아줄 것도 아니잖아요. 최상의 빙질에서 한 해 마지막으로 하는 시합이라 포기할 수 없었어요. 경기에만 집중했던 것 같아요.”

­세계신기록 냈을 때랑 밴쿠버 금메달 땄을 때를 비교할 때, 축하는 언제 더 많이 받았어요?

“비슷했어요. 여느 때와 비슷하게 메시지를 받았죠. 고생했고 자랑스럽다고요.”

­함께 뛴 경쟁자들 반응이 궁금해요.

“독일 예니 볼프 선수와 중국 왕베이싱 선수는 시상식에 함께 많이 서본 사이예요. 서로 격려해주는 편이죠. 동료애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전력질주를 하고 나면 숨이 많이 찰 것 같은데, 영상으로만 보면 아직 더 뛸 힘이 남아 보여요.

“아니요. 진짜 힘들어요. 전광판에 뜬 기록을 보고 어떤 희열감을 느끼긴 해요. 그래서 화면으로는 안 힘들어 보일 거예요. 달리던 속도를 멈추지 못하고 원심력으로 돌고 있지만, 숨도 차고 다리도 너무 아파요.”


이상화 선수
이상화 선수


뒤에서 따라잡아야죠, 그래서 아웃코스가 좋아요


이상화는 지난해 4번의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다가올 소치올림픽을 향한 기대감을 높여준 최고의 한 해였다. 지난해 1월20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2012~2013시즌 월드컵 6차대회에서 36초80을 기록하며, 이상화만의 500m 세계신기록 레이스는 시작했다. 11월10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2013~2014시즌 월드컵 1차대회에서 36초74, 일주일 뒤인 16일과 17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 2차대회에서 36초57과 36초36으로 연달아 기록을 앞당겼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 금메달, 2012년과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2013년 세계신기록 4차례 경신과 자신이 출전한 월드컵대회의 7연속 우승까지, 이상화는 현재 자타 공인 세계 최정상의 단거리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다. 독일의 예니 볼프, 중국의 왕베이싱과 위징, 미국의 헤더 리처드슨, 러시아의 올가 팟쿨리나 등 다른 선수들이 서로 엎치락뒤치락하지만 모두 이상화의 기록보다 0.4초 이상 뒤져 있다. 현재 이상화의 머리말은 ‘자신감’이다.

체중감량으로 가벼운 몸을 만들다

-지난 7일 태릉에서의 기록이 38초11이에요. 기록에 만족했나요?

“38초 초반 예상했어요. 지난번 태릉에서 뛴 대표선발전에서 37초 후반대를 탔거든요. 이번에는 혼자 타는 바람에 기록이 더 안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었어요. 마지막에 스텝이 엉켜서 자세가 좀 높아졌는데, 그것만 아니었어도 기록이 0.01~0.02초 정도 앞당겨졌겠죠. 크게 상관은 안 해요.”

지난 7일 오전 11시5분 이상화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국제스케이트장 스타트라인에 서 있었다. 7일과 8일 이틀간 열린 제44회 대한빙상경기연맹회장배 전국남녀 스피드스케이팅대회의 여자 일반부 500m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소치올림픽 전 실전감각을 익히기 위해 출전한 마지막 대회였다.

“삐-.”

버저가 울리고 이상화 선수의 스케이트가 빠르게 빙판을 차고 달려나갔다. 칼날이 얼음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는 마치 칼싸움이 벌어지는 전쟁터를 연상시켰다. 이상화는 이날 100m를 10초60에 끊었다. 자신의 최고기록인 10초16보다는 뒤진 기록이었다. 최종 기록 38초11. 3명의 선수 중에 1위를 했다.

이상화는 이날 케빈 크로킷 코치의 구령에 맞춰 한 차례의 스타트 훈련(50m 전력질주)을 하고 시합에 나섰다. 크로킷 코치는 캐나다 단거리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선수 시절 세계신기록을 2번이나 냈다. 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 남자 500m 동메달리스트다.

이상화 선수
이상화 선수


-스타트 훈련을 집중적으로 한다고 하는데 왜 그런가요?

“500m 경기는 초반 100m가 좋아야 그 힘으로 남은 400m도 잘 탈 수 있어요. 후반 기록은 지금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초반 스피드에 집중하려고 해요. 또 초반이 좋아야 상대 선수를 제압할 수 있는 만큼 초반 훈련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어요.”

-100m용 훈련이 따로 있나요?

“특별한 건 없고요. 단거리는 타고난 순발력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크로킷 코치와의 호흡은 어때요?

“좋아요. 저희 팀으로 오기 전에 중국 대표팀에서 코치 하는 걸 봤거든요. 오래전부터 보아온 분이라 그가 국가대표 코치로 온다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사실 코치가 하는 이야기는 별게 없어요. 운동은 본인이 알아서 하고 코치는 조언을 할 뿐이죠. 크로킷 코치는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많이 불어넣어줘요.”

한달 앞둔 세번째 올림픽
“부담이 있다면 뭘 새로
이루겠다는 마음보다
지금 오른 정상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겠죠”

초등학교 때 시작한 스케이트는
투지와 승부근성을 자극했다
‘욕심 많은 아이’였던 그는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 따고
지난해엔 신기록 4번 갈아치워

-레인은 아웃코스에서 출발하는 걸 좋아한다고요?

“(트랙을 왼쪽으로 돌기 때문에) 처음에 아웃코스에서 타면 인코스에서 타는 상대 선수를 보면서 달릴 수 있어요. 안쪽에서 도는 상대 선수를 따라잡는다는 마음으로 가다 보면 저도 스케이팅 속도가 빨라지죠. 상대의 기선을 제압한다는 의미에서도 시작을 아웃코스에서 하는 게 좋아요. 경기 시간이 워낙 짧기 때문에 아무 생각 안 하고 앞만 보고 달려요. 하하.”

-요즘 특별히 신경쓰는 몸의 부위가 있나요?

“(웃으며) 아뇨. 제 몸은 모든 게 다 소중하니까, 어디 하나 특별히 신경쓰는 건 없어요. 체중이 빠지면서 모든 게 다 좋아진 것 같아요. 가벼운 몸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어요.”

이상화의 좋은 기록은 체중감량으로 상체가 날렵해지고 전체적으로 자세가 낮아진 것이 큰 몫을 했다. 킥을 할 때 스케이트날에 자신의 힘을 완벽하게 전달시키는 모습도 전보다 좋아졌다는 평을 듣는다.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과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국가대표 감독을 지내며 이상화를 6년 동안 직접 지도한 김관규 대한빙상경기연맹 전무이사의 평가다.

“지금 상화 성적이 워낙 좋아요. 밴쿠버 때나 신기록을 낸 지난해보다 올해가 훨씬 더 안정된 자세예요. 상체를 날렵하게 하고 더 낮은 자세로 스케이트를 타기 때문에 바람의 저항을 줄일 수 있어요. 그동안 지켜봐왔던 상화보다 더 성숙한 상화예요.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있게 레이스를 펼치는 모습을 보면 지금이 정신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매우 완벽한 상태라고 느껴요. 올림픽은 다른 대회와 달라서 쉽게 예상할 수는 없지만 90% 이상 금메달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상화 선수
이상화 선수


마취 없이 얼굴 7바늘 꿰맨 초등학생 이상화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이상화는 어릴 적부터 특출한 선수였다. 이상화를 가르친 빙상지도자들은 이상화의 남다른 모습을 잘 기억했다. 운동선수로서 갖춰야 하는 타고난 재능(순발력)과 강인한 정신력(승부근성, 성실함)이 돋보였다.

이상화가 처음 스케이트를 신은 것은 초등학교 입학 이후다. 스케이트부가 있는 서울 은석초등학교에서 특기적성수업으로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을 배웠다. 스케이트를 먼저 배운 오빠가 영향을 줬다. 이상화에게 스케이트를 처음 가르친 빙상지도자 강예용씨는 어린 나이에도 심지가 굳은 아이, 이상화를 기억했다. 7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만난 강씨와 그의 부인이 이상화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상화는 강씨의 부인을 ‘이모’라 부르며 잘 따랐다. 강씨의 부인이 말했다.

“참을성이 좋아요. 스케이트 훈련을 시켜도 힘들다고 한 적 없던 아이였어요. 한번은 앞에서 달리던 아이의 스케이트날에 상화 얼굴이 살짝 베인 사고가 있었어요. 아주 작은 바늘로 촘촘히 일곱 바늘 정도 꿰맸죠. 마취를 안 하고 꿰매면 흉이 덜 생긴다는 의사 말에 그 어린애가 잘 참더라고요.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도 어른스러웠어요.”

취미생활로 탔던 스케이트가 인생의 목표가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다.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선발되기 전까지 빙상지도자 전품성(당시 은석초 스케이트부 감독)씨가 이상화를 지도했다. 이상화에 대한 첫 느낌은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아이도 좋아하고 부모님도 한번 스케이트를 시켜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처음에 제가 봤을 때는 뭐랄까… 운동에 대한 선수의 욕심이 남달랐어요. 다른 아이들이랑 다르다는 생각이 확 들었죠.”

전씨가 기억하는 이상화의 장점은 ‘투지’와 ‘승부근성’이었다.

“하루는 2등을 했는데 상화가 시상대에 나오지 않더라고요. 보니까 저쪽 화장실에서 울고 있어요. 기록이 자기 생각보다 안 나왔대요. 속상한 거죠. 누구한테 져서가 아니라 자기 목표가 이뤄지지 않아서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어요. 운동선수로서는 꼭 필요한 근성을 타고났죠.”

그의 승부근성에 얽힌 일화는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당시 500m에서 5위를 한 이상화의 눈물을 기억하는 이가 많았다. 국가대표 상비군에 선발된 중학교 3학년생 이상화를 지도한 양주 백석고 스케이트부 코치 강세융씨도 “전지훈련으로 일본에 갔을 때 이상화가 일본 선수에게 졌다고 억울해하고 분해하는 모습에서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남한테 지는 건 싫어하고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는 부모의 말을 이상화 자신도 인정했다. 지금은 “초등학교랑 중학교 때 많이 울었다. 승부욕이 워낙 강했다”며 웃어넘기는 큰 선수가 됐다.

이상화 선수
이상화 선수


단거리 선수로서 타고난 순발력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능이다. 전품성씨는 단거리 선수로서의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봤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대략 윤곽이 나와요. 상화가 대회에서 1위를 한 게 초등학교 5~6학년 때부터예요. 초등학생들은 500m, 1000m, 1500m, 3000m 네 종목을 다 타고 점수를 합산해 등수를 매기는데, 사실 상화가 장거리에서는 잘 타는 다른 선수에게 밀렸어요. 그런데 단거리가 워낙 좋아서 종합 1위를 했죠. 단거리에 소질이 있는 친구구나 생각해서 중학생 이후로는 단거리 집중 훈련을 시켰어요.”

차근차근 기량이 오르던 중학교 시절, 이상화는 학교 수업이 끝나는 3~4시부터 훈련에 집중했다. 당시 옥외에 있던 태릉스케이트장은 겨울에만 문을 열었다. 여름에는 지상훈련에 집중하고 겨울이 되면 얼음 위에서 자세 연습을 주로 했다. 일반인이랑 같이 타기 때문에 속도 훈련을 따로 하지는 못했지만 좋은 실력이었다. 중학교 2학년이던 2002년 이상화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주최하는 회장배 전국남녀빙상경기대회 여자 중등부 500m에서 대회신기록을 깨며 1위에 올랐다. 2003년 12월에는 15회 한·일 스피드스케이트 교환교류 경기대회에서 종합 1위를 하는 등 국제시합에서도 승리를 이어 나갔다.

“엄마가 해주는 밥이 정말 맛있어”

이상화는 스케이트부가 없는 서울 휘경여중고를 다녔다. 그의 아버지가 관리직원으로 있는 학교였다. 밝은 성격의 이상화를 학교 선생님들은 여전히 잊지 않았다. 휘경여중에서 이상화를 가르쳤던 이기웅 교감선생님(당시 체육교사)은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도 성실하게 운동하던 이상화의 모습을 기억했다. 생활기록부에 기록된 이상화와 부모의 꿈은 언제나 스케이트 국가대표 선수였다. 8일 학교 교무실에서 만난 이씨가 말했다.

“정식 스케이트부가 있는 학교가 서울에 몇 곳 없어요. 배정받은 대로 학교에 온 거죠. 국가대표가 되기 전이라 부모님 지원만으로 운동을 했어요. 어린 나이지만 열심히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그때도 했던 것 같아요. 새벽에 훈련 다녀와 지쳐하던 모습들이 기억에 남아 있어요.”

휘경여고에서 이상화를 지도한 학생부장 유응욱 선생님(당시 체육교사)은 이상화의 부모가 딸에게 헌신적이었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많은 부모가 자식의 미래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듯 이상화의 부모도 최선을 다했다고 돌아봤다.

“부모님이 물심양면 상화가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었어요. 지금 상화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그때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요. 자식을 생각해 사립초등학교를 보내고 스케이트를 타게 하는 것 자체는 아무 부모나 못하지요. 상화는 말수가 적어 내색을 안 하는 편이었어요. 아버지가 학교에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운동으로 꼭 성공하겠다고 마음에 새긴 게 많았을 거예요.”

유씨는 이상화에게 한국체육대학교 진학을 권유했다. 한국체육대 진학 뒤 모교인 휘경여고로 교생 실습을 온 이상화는 줄넘기 수업을 착실하게 준비해 온 성실한 제자였다. 2010년 4월 밴쿠버 올림픽 이후 모교 방문 행사에서 휘경여고를 방문한 이상화는 후배들에게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7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부모 이우근(57)·김인순(53)씨는 눈을 떼지 못하고 딸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머니 김씨가 말했다.

“속썩인 적 없는 딸이에요. 항상 가족들 기쁘게 해주고 친구 같은 딸. 그동안 엄마·아빠 고생 많으셨다고 이제 편히 즐기며 사시라고 하는 말 들으면 눈물이 왈칵 쏟아지죠. 대견스럽고요. 우리집에서는 보물이에요. 없어서는 안 되는 보물, 복덩이죠.” 아버지 이씨는 말없이 딸의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이상화 선수에게 가족에 대해 물었다.

-아버지가 훈련하라고 직접 운동기구도 만들어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 국가대표가 되기 전이에요. ‘슬라이드 보드’라고 나무 위에 비닐장판 같은 걸 깔아두고 연습하는 기구예요. 빙상장에 가지 못하는 날이면 그 위에서 양말을 신고 운동하는 거죠. 아빠가 그런 걸 직접 만들어주셔서 집에서도 훈련한 적이 많았죠. 그때 저는 계속 놀고 싶고 쉬고 싶은데 자꾸 아빠는 운동하라고 시키셨죠. 그때는 그 상황이 싫었는데 생각해보니 감사해요. 제가 철이 없었어요.”

체중감량으로 상체 날렵해지고
자세 낮아지면서 좋은 기록 나와
정신적·기술적 완벽한 상태에서
500m 경기 흐름 좌우하는
스타트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운동선수로서 국가대표로서
저는 이룰 건 다 이뤘어요
순간순간에 집중하는 편이지만
올림픽 끝나면 여유 찾고 싶어”
금메달 이야기는 한 번도 없었다

-부모님 생각하면 어떤 마음이에요?

“늘 저한테 고마워하세요. 힘든 운동 하는 거 보고 엄마는 우신 적도 많고요. 기특해하시죠. 잘하건 못하건 결과에 상관없이 칭찬해주세요. 부모님의 지원이 없었으면 전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거예요. 지금에야 성공하고 보답드리는 것이니 뿌듯하죠. 저한테 부모님 같은 분들이 안 계셨다면 이 자리까지 절대 못 왔을 것 같아요.”

-휴일에는 집에 간다고요?

“네, 시즌 중에는 이틀 내내 집에서만 쉬는 편이에요. 선수촌에 있다가 집에 가면 편해서 잠이 막 쏟아져요. 대부분 자는 시간이 많아요. 밥도 먹고요. 엄마가 해주시는 밥이 정말 맛있어요.”

-무슨 음식 잘 먹어요?

“부대찌개랑 꽃게탕, 사골국…. 그런 걸 잘 해주세요. 엄마 음식은 맛있어서 잊을 수가 없어요. 전지훈련 갔다 오고 이러면 어머니가 제 입맛에 맞게 끓여주시기 때문에 다양하게 주문해도 ‘오케이’ 하고 다 만들어주세요. 새해 들어 부모님이랑 셋이 일식집에 가서 식사를 했어요. 여기까지 왔으니 소치올림픽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오겠다, 즐기는 마음으로 경기하고 오겠다고. 그리고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 많이 나누고 왔어요.”

“목표를 이루지 못한 건 거의 없어요”

-체육 말고는 음악을 좋아하죠?

“네, 집에 피아노가 있어서 피아노를 쳤어요. 체르니 30번까지 배웠어요. 아빠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셔서 많이 틀어주셨고요. 노래는 잘하지 못해요.”

-좋아하는 음악은 뭐예요?

“가요도 듣고 외국 노래도 듣고 다양하게 들어요. 70곡 정도 다운받아 랜덤으로 들어요. 특히 좋아하는 장르나 가수는 없어요.”

-성격이 예민한 편은 아니죠?

“무던한 편인데 경기를 앞두고는 모든 선수들이 예민해지니까요. 올림픽이 다가오면 더 그럴 수도 있고요.”

-올림픽, 세계선수권, 월드컵 연속 우승, 세계신기록 작성까지 정상을 지켜야 하는 부담이 상당할 것 같아요. 인터뷰를 보면 오히려 부담이 없다고 말하던데 진짜예요?

얼음 위를 달리는 이상화는 눈빛만으로도 승부사로서의 모습이 잘 드러났다. 7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4회 회장배 전국남녀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일반부 500m 경기를 앞두고 이상화가 몸을 풀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A href="mailto:khan@hani.co.kr">khan@hani.co.kr</A>
얼음 위를 달리는 이상화는 눈빛만으로도 승부사로서의 모습이 잘 드러났다. 7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4회 회장배 전국남녀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일반부 500m 경기를 앞두고 이상화가 몸을 풀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부담이 아주 없지는 않아요. 부담이 있다면 뭘 새로 이루겠다는 마음보다 지금 오른 정상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겠죠. 그런데 그건 이미 밴쿠버에서 금메달을 따고 나서 한번 느껴본 것 같아요. 올림픽 이전이나 이후나 똑같다는 걸요. 그래서 지금은 밴쿠버올림픽 끝나고보다는 덜 힘들어요.”

-올림픽 금메달 이후 슬럼프가 왔나요?

“아니요, 그건 슬럼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냥 2010년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거죠. 2011년에는 1등이 아닌 2~3등을 했어요. 사람들이 ‘쟤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는데 2~3등 한다’고 했죠. 그런데 2~3등 한다고 슬럼프는 아니에요. 슬럼프였으면 더 떨어졌겠죠. 잠시 힘들었던 시간 정도라고 받아들여요. 그냥 제가 가던 길이었고, 저는 그때도 최선을 다해서 했고 결과가 그렇게 나온 거였죠. 저는 만족해요.”

-시합을 앞두고 부담될 때는 어떻게 극복해요?

“극복하는 방법은 따로 없어요. 다만 많은 생각들이 저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았어요. 머릿속을 다 비우고 하던 대로 쭉 한다고 생각해요.”

- 목표한 걸 달성하지 못한 적도 있나요?

“음….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스케이터로서는 다재다능한 편이었고요. 스케이트 말고도 살면서 어려웠던 건 물론 많이 있었지만, 그 역시 어렵다고 생각 안 하고 쉽게 쉽게 하려고 하는 편이었어요. 깊이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가, 목표를 이루지 못한 건 거의 없었어요.”

- 어린 시절부터 꿈이 국가대표였지요?

“네, 국가대표가 꿈이었어요. 국가대표가 되어도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나라를 위해서라기보다 저 자신을 위해서죠. 저한테 힘이 되는 모든 분들께 국제대회에서 얻는 좋은 성적으로 보답을 드리고 싶었어요.”

- 남은 꿈이 더 있나요?

“이미 저는 이룰 건 다 이뤘다고 생각해요. 운동선수로서, 스피드스케이트 선수로서, 국가대표로서 제가 해야 할 일에는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전 더이상 이룰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잖아요. 일단은 지금도 충분히 감사한 마음이 있어요.”

- 올림픽이 끝나면 뭐 하고 싶어요?

“쉬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운동하느라 쫓기는 마음이 많았어요. 올림픽 결과가 좋으면 물론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저를 찾겠지만, 일단은 여유를 찾고 싶어요. 올림픽에 대한 걱정 없이 쉬고 싶어요.”

- 평창올림픽까지 도전할 건가요?

“그건 아직 모르겠어요. 저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걱정하지도 않고요. 순간순간을 집중하는 편이라 내일 일은 생각 안 하죠. 일단은 이번 올림픽에 집중하고 있어요.”

이상화는 현실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집중할 뿐 미래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고 했다. 스피드스케이트 선수 이상화에게 한달 뒤 올림픽은 또 하나의 경기일 뿐이다. 이상화의 라이벌 독일의 예니 볼프와 중국의 위징 등 30대 중반의 스케이터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노련하다. 500m 단거리 경기의 특징상 4년 전 이상화가 그랬듯 그날 컨디션에 따라 다크호스가 떠오를 수도 있다. 자만은 금해야 한다.

7일 오전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는 경기를 마친 이상화를 알아보고 유소년 선수들이 다가왔다. 사진을 찍고 싶은 눈치였다. 아이들은 수줍은지 쭈뼛거리며 주저했다. 아이들을 발견한 이상화가 먼저 다가가 친절하게 사진촬영을 해주었다. 인터뷰에서 이상화는 “누군가의 롤모델로 살고 있다는 건 내게서 꿈과 희망을 발견한다는 말로 들려 감사한 일이다. 어린 시절의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금메달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도 꺼내지 않은 인터뷰였다. 이상화는 언제나 그랬듯 눈앞의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목표는 2월11일 러시아 소치다.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이상화의 손톱에서 금색 왕관이 반짝였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관련영상] [최성진·허재현의 토요팟 #2] 소치의 꽃, 이상화를 만나다

■ 전문가가 본 이상화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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