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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얼음닦는 다섯 자매…막판 뒤집기 짜릿함 모르실 걸요

등록 2014-01-07 21:14수정 2014-01-21 10:59

한국 여자 컬링 대표로 2014 소치올림픽에 출전하는 경기도청 선수들이 태릉 빙상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신미성, 이슬비, 김지선, 엄민지, 김은지.  연합뉴스
한국 여자 컬링 대표로 2014 소치올림픽에 출전하는 경기도청 선수들이 태릉 빙상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신미성, 이슬비, 김지선, 엄민지, 김은지. 연합뉴스



[소치올림픽 D-30] 컬링 여자대표팀

2014 소치 겨울올림픽(2월7~23일)이 30일 앞으로 다가왔다. 1936년 독일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 대회에 일본 유학생들이 일장기를 달고 처음 출전했고, 48년 스위스 장크트모리츠 대회에 태극기를 달고 나간 이래 한국의 겨울스포츠는 김연아, 이상화 등 세계적인 스타를 배출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종목에서도 올림픽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겨레>는 금메달 4개와 종합순위 7위라는 대한체육회의 목표에 포함되지 않지만 순수한 열정과 즐거움으로 꿈의 무대에 도전하는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을 소개한다.

2009년 1월 경북 의성도 매서운 영하의 추위에 휩싸였다. 그 추운 날씨에 정영섭(56) 경기도청 컬링팀 감독과 최민석 코치는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300㎞ 가까운 길을 달려 의성의 한 어린이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슬비(26)를 찾아갔다. 사전에 연락도 없이 무작정 찾아간 정 감독은 이슬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경기도청에 들어와 컬링을 계속해볼래?”

■ 외인구단…드라마의 시작 이슬비는 컬링 명문 의성여고 주장 출신의 유망주였다. 하지만 동료들이 흩어진 뒤 팀을 찾지 못한 채 어린이집 교사로 일한 지 1년이 됐다. 정 감독은 이슬비가 운동을 쉬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의성으로 내려갔다. 정 감독의 제안은 갑작스러웠지만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네, 하고 싶어요.” 이슬비는 다시 스톤을 잡게 해준 정 감독에게 오히려 감사 인사를 했다.

정 감독은 이슬비 영입으로 드디어 팀을 완성했다. 2003년 시작된 경기도청 여자컬링팀은 선수들이 출산, 진로 변경 등 다양한 이유로 팀을 떠나고 신미성과 이현정만이 남아 있었다. 정 감독은 중국 유학까지 가 눈칫밥을 먹으며 컬링을 배워 왔지만 팀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김지선(27)과, 컬링으로 성신여대에 입학했지만 등록금 문제로 휴학중이던 김은지(24)를 합류시켰다. 여기에 이슬비를 끝으로 팀 구성을 마쳤다. 이런저런 이유로 운동을 하지 못하고 흩어져 있던 선수들이 모인 외인구단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3년 뒤. 경기도청팀은 2012년 3월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컬링연맹(ICF) 세계대회에서 한국의 대표팀으로 나가 1패 뒤 6연승을 달리며 기적의 4강을 이뤘다. 당시 스웨덴, 이탈리아, 스코틀랜드, 미국, 덴마크가 제물이 됐다. 이 대회에서 확보한 포인트 9로 한국 컬링은 사상 최초로 올림픽 출전권을 챙겼다.

■ 외국 선수가 버린 브러시 빨아 써도 한국은 컬링 불모지였다. 선수들은 어린이대공원 야외 링크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스톤을 굴리기도 했다. 2012년 이전까지 경기도청은 정식 실업팀이 아니어서 도체육회로부터 1인당 20만~30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뿐이었다. 도구가 부족해 일회용인 브러시 헤드를 경기마다 빨아 써야 했고, 외국 선수가 버린 걸 주워 쓰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컬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뻤다. 경기도청의 맏언니 신미성(36)은 “그땐 그게 진짜 재밌었어요. 그냥 컬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죠”라고 말한다. 김은지는 경기도청팀에 들어가기 위해 대학을 자퇴했다. 이슬비 역시 운동을 못할 때도 다른 진로를 찾기보다 다시 컬링을 할 팀을 1년 동안 찾아 헤맸다. 정영섭 감독은 현직 교사 신분이어서 실업팀의 정식 감독으로 이름을 올리지 못한 채 지금까지 무보수로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보수는커녕 선수들 훈련시키는 데 차곡차곡 모아온 돈을 다 쓰고 있다. 정 감독은 “하도 돈을 많이 써서 이혼당할 뻔한 위기도 있었다”고 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컬링에 빠졌을까? 5명의 선수와 정 감독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재밌잖아요”라는 답을 한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유망주들
경기도청 감독이 모아 팀 꾸려
세계4강 오른 뒤 올림픽팀으로

찬바람 맞으며 야외링크 훈련에
1회용 브러시 헤드 빨아 쓰기도
“즐겁게 하다보면 메달 따라올 것”

■ 팀워크가 주는 감동과 반전 얼음을 빗자루로 쓸 때 선수들의 몸놀림은 바빠진다. 마찰에 녹은 얼음은 스톤의 속도와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꾼다. 선수들의 호흡에 따라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방향으로도 휜다. 김지선은 “내가 실패하더라도 동료들의 스위핑으로 그걸 성공샷으로 바꾼다. 팀원들의 호흡으로 성공샷을 만들어냈을 때 더 짜릿하다”고 했다. 혼자 만드는 투구는 하나도 없다. 컬링은 겨울올림픽 여섯 종목 중 유일하게 선수가 아닌 팀이 국가대표로 뽑힌다.

반전은 컬링의 묘미다. 신미성은 “스톤 하나가 승패를 좌우할 때 받는 반전의 경험은 느껴보지 못하면 모른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대회 결승전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중국에 6-8로 뒤지던 한국은 후공팀으로 시작한 마지막 10엔드에서 하우스 앞에 방어벽을 친 중국의 스톤을 파고들었다. 스킵 김지선의 마지막 16번째 스톤이 중국의 스톤 두개를 한번에 밀어내면서 3점을 따 9-8로 역전에 성공했다. 김은지는 “막판 뒤집기로 이겼을 때 가슴이 아플 정도로 짜릿하다. 그래서 컬링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 클릭하면 자세히 보입니다


■ 사상 첫 올림픽 메달? 지난달 미국의 <로이터>는 소치의 다크호스로 한국 컬링 대표팀을 꼽았다. 모든 나라의 무시를 받던 최약체에서 올림픽 다크호스가 되기까지는 2년이 채 안 걸렸다. 언론에서도 메달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선수들 역시 그런 시선이 부담되기도 한다. 이슬비는 “생전 처음 받아보는 관심에 모두 부담을 느낀다. 그래서 같이 있을 때는 서로 그런 이야기는 안 하고 그냥 재밌는 이야기만 나눈다”고 말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데 메달을 목표로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세계랭킹 10위의 한국은 올림픽에 출전하는 10개 나라 중 최약체다. 임신으로 팀을 떠난 이현정을 대신해 지난해 합류한 막내 엄민지(23)는 “목표가 꼭 메달을 따자는 건 아니다. 언니들은 열심히 즐겁게 하다 보면 메달이 따라올 거라고 한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해서 이기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주장 김지선은 “이번 올림픽이 중요한 것은 메달보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컬링이 어엿한 스포츠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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