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소치 겨울올림픽(2월7~23일)이 30일 앞으로 다가왔다. 1936년 독일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 대회에 일본 유학생들이 일장기를 달고 처음 출전했고, 48년 스위스 장크트모리츠 대회에 태극기를 달고 나간 이래 한국의 겨울스포츠는 김연아, 이상화 등 세계적인 스타를 배출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종목에서도 올림픽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겨레>는 금메달 4개와 종합순위 7위라는 대한체육회의 목표에 포함되지 않지만 순수한 열정과 즐거움으로 꿈의 무대에 도전하는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을 소개한다.
2009년 1월 경북 의성도 매서운 영하의 추위에 휩싸였다. 그 추운 날씨에 정영섭(56) 경기도청 컬링팀 감독과 최민석 코치는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300㎞ 가까운 길을 달려 의성의 한 어린이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슬비(26)를 찾아갔다. 사전에 연락도 없이 무작정 찾아간 정 감독은 이슬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경기도청에 들어와 컬링을 계속해볼래?”
■ 외인구단…드라마의 시작 이슬비는 컬링 명문 의성여고 주장 출신의 유망주였다. 하지만 동료들이 흩어진 뒤 팀을 찾지 못한 채 어린이집 교사로 일한 지 1년이 됐다. 정 감독은 이슬비가 운동을 쉬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의성으로 내려갔다. 정 감독의 제안은 갑작스러웠지만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네, 하고 싶어요.” 이슬비는 다시 스톤을 잡게 해준 정 감독에게 오히려 감사 인사를 했다.
정 감독은 이슬비 영입으로 드디어 팀을 완성했다. 2003년 시작된 경기도청 여자컬링팀은 선수들이 출산, 진로 변경 등 다양한 이유로 팀을 떠나고 신미성과 이현정만이 남아 있었다. 정 감독은 중국 유학까지 가 눈칫밥을 먹으며 컬링을 배워 왔지만 팀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김지선(27)과, 컬링으로 성신여대에 입학했지만 등록금 문제로 휴학중이던 김은지(24)를 합류시켰다. 여기에 이슬비를 끝으로 팀 구성을 마쳤다. 이런저런 이유로 운동을 하지 못하고 흩어져 있던 선수들이 모인 외인구단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3년 뒤. 경기도청팀은 2012년 3월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컬링연맹(ICF) 세계대회에서 한국의 대표팀으로 나가 1패 뒤 6연승을 달리며 기적의 4강을 이뤘다. 당시 스웨덴, 이탈리아, 스코틀랜드, 미국, 덴마크가 제물이 됐다. 이 대회에서 확보한 포인트 9로 한국 컬링은 사상 최초로 올림픽 출전권을 챙겼다.
■ 외국 선수가 버린 브러시 빨아 써도 한국은 컬링 불모지였다. 선수들은 어린이대공원 야외 링크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스톤을 굴리기도 했다. 2012년 이전까지 경기도청은 정식 실업팀이 아니어서 도체육회로부터 1인당 20만~30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뿐이었다. 도구가 부족해 일회용인 브러시 헤드를 경기마다 빨아 써야 했고, 외국 선수가 버린 걸 주워 쓰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컬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뻤다. 경기도청의 맏언니 신미성(36)은 “그땐 그게 진짜 재밌었어요. 그냥 컬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죠”라고 말한다. 김은지는 경기도청팀에 들어가기 위해 대학을 자퇴했다. 이슬비 역시 운동을 못할 때도 다른 진로를 찾기보다 다시 컬링을 할 팀을 1년 동안 찾아 헤맸다. 정영섭 감독은 현직 교사 신분이어서 실업팀의 정식 감독으로 이름을 올리지 못한 채 지금까지 무보수로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보수는커녕 선수들 훈련시키는 데 차곡차곡 모아온 돈을 다 쓰고 있다. 정 감독은 “하도 돈을 많이 써서 이혼당할 뻔한 위기도 있었다”고 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컬링에 빠졌을까? 5명의 선수와 정 감독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재밌잖아요”라는 답을 한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유망주들
경기도청 감독이 모아 팀 꾸려
세계4강 오른 뒤 올림픽팀으로
찬바람 맞으며 야외링크 훈련에
1회용 브러시 헤드 빨아 쓰기도
“즐겁게 하다보면 메달 따라올 것”
■ 팀워크가 주는 감동과 반전 얼음을 빗자루로 쓸 때 선수들의 몸놀림은 바빠진다. 마찰에 녹은 얼음은 스톤의 속도와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꾼다. 선수들의 호흡에 따라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방향으로도 휜다. 김지선은 “내가 실패하더라도 동료들의 스위핑으로 그걸 성공샷으로 바꾼다. 팀원들의 호흡으로 성공샷을 만들어냈을 때 더 짜릿하다”고 했다. 혼자 만드는 투구는 하나도 없다. 컬링은 겨울올림픽 여섯 종목 중 유일하게 선수가 아닌 팀이 국가대표로 뽑힌다.
반전은 컬링의 묘미다. 신미성은 “스톤 하나가 승패를 좌우할 때 받는 반전의 경험은 느껴보지 못하면 모른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대회 결승전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중국에 6-8로 뒤지던 한국은 후공팀으로 시작한 마지막 10엔드에서 하우스 앞에 방어벽을 친 중국의 스톤을 파고들었다. 스킵 김지선의 마지막 16번째 스톤이 중국의 스톤 두개를 한번에 밀어내면서 3점을 따 9-8로 역전에 성공했다. 김은지는 “막판 뒤집기로 이겼을 때 가슴이 아플 정도로 짜릿하다. 그래서 컬링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 사상 첫 올림픽 메달? 지난달 미국의 <로이터>는 소치의 다크호스로 한국 컬링 대표팀을 꼽았다. 모든 나라의 무시를 받던 최약체에서 올림픽 다크호스가 되기까지는 2년이 채 안 걸렸다. 언론에서도 메달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선수들 역시 그런 시선이 부담되기도 한다. 이슬비는 “생전 처음 받아보는 관심에 모두 부담을 느낀다. 그래서 같이 있을 때는 서로 그런 이야기는 안 하고 그냥 재밌는 이야기만 나눈다”고 말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데 메달을 목표로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세계랭킹 10위의 한국은 올림픽에 출전하는 10개 나라 중 최약체다. 임신으로 팀을 떠난 이현정을 대신해 지난해 합류한 막내 엄민지(23)는 “목표가 꼭 메달을 따자는 건 아니다. 언니들은 열심히 즐겁게 하다 보면 메달이 따라올 거라고 한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해서 이기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주장 김지선은 “이번 올림픽이 중요한 것은 메달보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컬링이 어엿한 스포츠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허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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