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례(36·전라남도 유베이스 알스타즈)씨
‘금녀의 벽’ 깬 레이서 최윤례
학생때 아버지 몰래 오토바이 타다
아시아 첫 여성 슈퍼바이크 선수 돼
3년전부터 ‘네개 바퀴 세계’ 빠져
지난달 대회서 포르테급 5위 차지
“빨리 달리려면 브레이크 잘 밟아야”
학생때 아버지 몰래 오토바이 타다
아시아 첫 여성 슈퍼바이크 선수 돼
3년전부터 ‘네개 바퀴 세계’ 빠져
지난달 대회서 포르테급 5위 차지
“빨리 달리려면 브레이크 잘 밟아야”
“아주 어릴 때, 아버지께서 자전거 앞에 만든 조그만 자리에 앉혀 태워주실 때 느꼈던, 빠른 바람의 스침, 그 상쾌함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유전자 탓일까? 아니면 성장기의 특별한 경험일까?
20대에 그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1000㏄급 슈퍼바이크(오토바이)를 몰고 트랙을 달리던 아주 ‘특별한 여성’이었다. 무게가 200㎏에 가까운, 시속 300㎞로 달리는 무시무시한 굉음의 오토바이를 몰고 남성들과 실력을 겨루었다.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전혀 없는 모터스포츠 세계에서 그의 존재는 아주 특별했다. 수려한 외모 탓에 팬카페까지 생겼다. 한때 회원이 1만명에 육박했다. 화장품 모델도 했고, 영화에도 출연했다. 국내 영화 가운데 여자 주인공이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에서는 대부분 그가 대역을 하거나 ‘스턴트우먼’ 역할을 했다. 일부 영화에는 단역으로도 출연했다. 결혼했고, 아들도 낳았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카레이서로 변신했다. 3년 전부터 레이싱걸이 아닌 레이서로 모터스포츠에 뛰어든 그는 예선 2등, 본선 3등까지 하며 주변을 놀라게 했다.
남자보다 빠른 여자, 카레이서 최윤례 [한겨레TV]
지난달 전남 영암에서 열린 ‘코리아 스피드페스티벌’ 포르테급에 출전해 5등을 하며 올 시즌을 마무리한 최윤례(36·전라남도 유베이스 알스타즈)씨는 지난 3일 자신과 속도를 함께하며 많은 생채기를 간직한 승용차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다보았다.
물론 부모의 반대는 심했다. 고등학교 시절 용돈과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으고 모아 처음 오토바이를 샀다. 부모님 몰래 사고, 몰래 탔다. 마침내 발각되고 아버지는 딸의 오토바이를 부숴버렸다. 미친 듯이 몰입되는 모터의 가슴 떨리는 시동 소리와 온몸을 파고드는 속도감을 포기 못한 그는 또 오토바이를 샀다. 아버지는 또 부수거나 내다 팔았다. 결국은 부모님을 경기장까지 모시는 데 성공했다. 공교롭게도 부모님이 앉아 있는 코너에서 다른 선수가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넘어졌다. 선수는 바닥에서 몇 바퀴를 돌았다. 그런데 그런 선수가 벌떡 일어나 넘어져 있는 모터바이크를 세우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안전 장구가 부상을 방지한 것이다. 그때부터 부모의 마음은 바뀌었다. “진작 너를 지원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구나.”
결혼을 앞두고 양가 상견례 자리에서 아버지는 ‘우리 딸내미가 철딱서니없이 오토바이 선수랍니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런 아버지 덕택에 최씨는 슈퍼바이크의 강자가 됐다.
“몰래 타고, 제대로 배우지 않고, 위험하게 타기 때문에 오토바이가 위험한 물건으로 인식됩니다.”
연예인 가운데 대표적인 카레이서인 이세창씨가 최씨를 카레이서로 스카우트했다. 과감하고 용감한 성격에 섬세함까지 갖춘 최씨를 극도의 민첩함과 예민함,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한 경주 자동차 세계로 끌어들였다.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어요. 전속력으로 질주하다가 차의 속도를 줄이며 핸들을 틀어 방향을 바꾸고, 또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속도를 높이고…, 전 다시 두개 바퀴에서 네개 바퀴 세계로 빠졌어요.”
최씨의 카레이싱은 아직 초보 단계. 실력에 따라 참여하는 대회가 다른데 최씨는 가장 낮은 급이다. 그러나 3㎞의 트랙을 25바퀴 도는 동안 시속 150~180㎞ 정도를 유지하며 40분 정도 달려야 하는 카레이싱은 어느 스포츠보다 강한 정신력과 체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최씨는 또 다른 스포츠에 도전했다. 바로 스쿠버다이빙이다. 이미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평일에는 스쿠버 입문자를 지도하는 최씨는 수영을 통해 체력을 비축한다.
이제 6살인 아들(서보민)을 미래의 세계 최고 정상의 카레이싱 세계인 F1 레이서로 키우기 위해 카트(어린이용 경주차)를 태우고 있다는 최씨는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받았는지 아들이 핸들을 잡는 것을 즐거워한다고 자랑한다.
“빨리 달리기 위해선 브레이크를 잘 밟아야 해요. 적절하게 속도를 줄이고 변속을 해야 경쟁자보다 빨리 달릴 수 있으니까요.”
금녀의 벽을 산산조각 내며 달리는 최씨의 긴 머리카락이 가을바람과 잘 어울린다. 용인/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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