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원 집행위원
세계태권도연맹 문대원 집행위원
멕시코 전역에 450개 도장 운영
미국 유학시절 정착해 씨 뿌려
제자 30만명…유단자만 5만명
멕시코 전역에 450개 도장 운영
미국 유학시절 정착해 씨 뿌려
제자 30만명…유단자만 5만명
연일 만원이다. 입장권을 사려고 줄을 서고, 입장하려고 설레는 표정으로 줄을 선다. 언론에서는 태권도에 대한 특집으로 분주하고, 경기장에는 텔레비전 생중계 카메라가 진을 친다. 금메달를 딴 사나이는 눈물을 흘리며 하루아침에 ‘국민 영웅’이 된다.
태양신에게 인간의 심장을 제물로 바치던 아즈텍 전사의 나라, 멕시코가 태권도에 빠졌다. 마치 태권도 종주국 같다. 지난 15일부터 멕시코 ‘제4의 도시’ 푸에블라에서 열리고 있는 ‘2013 세계태권도대회’는 그야말로 멕시코인들의 축제다.
멕시코 전역에는 태권도장이 무려 3500여곳이나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태권도 프로리그도 운영중이다. 150만명이 태권도를 수련한다. 이처럼 멕시코를 태권도의 나라로 만든 한국인이 있다. ‘대사부’(그랑 마에스트로)로 불리는 문대원(71·사진) 사범이다. 멕시코 정부로부터 훈장도 받은 그는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한다.
세계태권도연맹(WTF) 집행위원인 그는 지난 44년간 멕시코에 태권도의 씨를 뿌려 이제 활짝 꽃을 피웠다. 30만명의 제자가 그의 엄한 호령에 따라 태권도를 익혔고, 그 가운데 5만명의 유단자가 탄생했다. 멕시코 전역에 직접 450개의 도장을 운영하느라 일년에 8개월을 돌아다닌다.
1969년 5월께 당시 27살의 미국 유학생이었던 그는 혈혈단신 멕시코 땅을 밟았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대전중 2학년 때부터 태권도를 배워 공인 2단을 딴 그는 경희대 정외과 2학년 때인 62년 미국 텍사스주립대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다 우연히 무술 경연대회에 나갔다. 당시 미국에서는 일본인들이 전파한 가라테가 판을 치고 있었다. 타고난 ‘깡다구’와 빠른 몸놀림, 공포스런 격파술로 경량급(171㎝·68㎏)을 휩쓴 그는 중량급 챔피언과 통합전에서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키가 2m가 넘는 거구를 넘어뜨렸고, 꽁꽁 언 두꺼운 벽돌을 손날로 깨뜨리며 미국 전역에 무명(武名)을 날렸다. 그러다가 운명적으로 무술대회 초청을 받아 처음 와본 멕시코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처음 접수한 도장은 가라테 도장. 일장기와 가라테의 전설인 마부니의 초상을 떼어 버리고 태극기를 붙이는 것으로 멕시코에서 태권도 전파를 시작했다.
“강하고 정신이 있는 태권도를 가르쳤습니다.” 문 사범은 공격과 수비를 동시에 하는 격렬한 태권도를 선보였다. 입문하고 4~5년 이상 지나야 검은 띠를 맬 수 있는 시험을 볼 자격을 부여했다. 태권도의 역사와 유래에 대한 논문도 쓰게 했다. 3일간 금식을 해야 했고, 3 대 1의 대련을 통과해야 했다. 특히 15살 미만의 청소년들은 학교 성적이 80점을 넘어야 검은 띠의 자격이 됐다. 그 덕분에 4년 만에 서울에서 열린 세계태권도대회에 멕시코팀을 이끌고 참가해 3위를 차지했다. 멕시코는 일약 세계 태권도 강국으로 부상했다.
75년에 멕시코 태권도협회를 설립해 초대 회장에 취임한 문 사범은 ‘무덕관’의 이름으로 전국에 태권도장을 퍼뜨렸다. 83년부터 시작한 ‘문대원컵 전국 태권도대회’는 전국을 축제 분위기로 바꾼다. 또 집 없는 멕시코 소녀들이 2~3년간 머물며 직업교육을 받는, 한국인 수녀가 운영하는 기숙학교에서도 그는 태권도를 가르쳤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멕시코 역사상 처음으로 남자부 금메달을 딴 기예르모 페레스도 그의 제자다.
문 사범은 수련복에 수련생의 이름을 한글로 지워지지 않게 써준다. “비교적 다혈질이고, 격투기를 좋아하는 국민성이 다른 무술보다 강하고 격렬한 태권도가 멕시코에 뿌리박을 수 있는 요인”이라고 그는 나름대로 분석했다.
그는 2년 전 이번 세계태권도대회를 멕시코에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3년 전부터 멕시코에 자리잡은 ‘티케이(TK)-5’ 태권도 프로리그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인 덕분이다.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에서 불고 있는 한류의 바탕에는 태권도의 오랜 뿌리내림이 자리잡고 있지요.” 마침 경기장을 지나가던 한 소녀가 수줍게 다가와 문 사범에게 사인과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했다. 멀리서 바라보던 소녀의 어머니도 냉큼 달려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푸에블라(멕시코)/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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