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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타는 마음보다 짜릿한 건 없을걸~

등록 2013-07-09 20:06수정 2013-07-10 17:26

산소를 씹는 즐거움에 취해 산악자전거에 빠진 가수 김세환씨가 우면산 산길을 힘차게 내달리고 있다.
산소를 씹는 즐거움에 취해 산악자전거에 빠진 가수 김세환씨가 우면산 산길을 힘차게 내달리고 있다.
[건강과 삶] ‘산악자전거 원조’ 가수 김세환씨
”나~ 원~참! 이제 지하철도 무임승차할 나이가 됐네요.” 지난 1일 서울 양재동 집에 우편으로 날아온 ‘기초노령연금’ 신청서 양식을 보며 가수 김세환(65)씨는 차라리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다. 1948년 7월15일에 태어나 곧 65번째 생일을 맞는 김씨는 자신의 나이가 밉다. 벌써 환갑을 지낸 지 5년. 그러나 누가 김씨를 60대 중반의 중늙은이로 볼 것인가.

국내 산악자전거의 원조로 알려진 김씨를 따라 집 뒤의 우면산에 올랐다. 산악자전거 안장에 올라탄 김씨의 뒷모습은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아주 건장한 20대였다. 우람한 허벅지에, 근육이 터질 듯 불거지는 종아리 근육까지.

아주 가파른 산길을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올라간 김씨는 자전거 안장에 올라탔다. 마치 정복지를 눈 아래 둔 장수처럼 그 기세가 늠름하다. 비탈진 산길을 자전거를 타고 내려간다. 보기에도 겁이 난다. 경사가 가파른 산길은 물론, 나무로 만든 계단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내달린다. 내리막길이라 안장에서 일어나 몸을 뒤로 빼 엉덩이를 뒷바퀴 위쪽까지 민다. 안장이 가슴부분에 닿을 정도로 몸을 최대한 낮춘다. 상황에 따라 몸 중심을 바꾸고, 기어도 자주 바꿔줘야 한다.

65살 나이를 믿기지 않게 만드는 김씨의 팽팽한 얼굴과 튼튼한 다리 근육.
65살 나이를 믿기지 않게 만드는 김씨의 팽팽한 얼굴과 튼튼한 다리 근육.
입을 조금 벌리면 상쾌한 공기 속에
흠뻑 담긴 산소가 쏟아져 들어와요
청정 산소를 담고 씹는 기분입니다

문명의 편리함에 중독된 현대인들에게
불편함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
바로 산악자전거입니다

순식간에 저 아래까지 내려간 김씨는 다시 자전거를 메고 뚜벅뚜벅 계단을 올라온다. 주름을 찾기 어려운, 검게 탄 얼굴에 땀방울이 뚝뚝 흐른다.

짙은 초록빛 녹음과 건강한 즐거움, 그리고 산악자전거의 거친 이미지가 뒤섞여 얼굴엔 밝은 웃음이 가득 찬다.

“젊었을 때부터 스키와 산악자전거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지하에 있는 작업실 한쪽엔 잘 손질한 산악자전거가 자리잡고 있다. 문득 세월을 27년 전으로 돌린다. 김씨가 국내 산악자전거의 원조가 된 역사이기도 하다.

“1986년에 미국에 갔어요. 길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진열된 산악자전거를 봤어요. 헉! 하고 숨이 막혔어요. 어릴 때 본, 남산을 자전거를 타고 오르던 그 외국인이 탔던 자전거였어요. 앞뒤 가리지 않고 샀어요. 당시 거금인 800달러를 주고. 그리고 호텔로 끌고 와 분해를 했어요. 수건과 테이프로 부품을 감쌌어요. 연결 부위는 사인펜으로 표시했어요. 귀국길의 큰 여행가방에는 자전거 부품으로 가득 찼어요. 마치 면화 씨를 몰래 붓두껍에 넣어 국경을 넘은 문익점 선생님이 느꼈던 그런 가슴떨림이었어요.”

한강 공원에서 조립한 산악자전거를 몰고 다니던 김씨 주변에 동호인들이 모였다. 주말 오후 1시 반에 모인다고 해서 동호회 모임 이름을 ‘한시반 클럽’으로 정했다.

가수 김세환의 산악자전거 [건강과삶 #4]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좋은 건 없을걸/ 사랑받는 그 순간보다 흐뭇한 건 없을걸~’

‘긴∼머리에 짧은 치마 아름다운 그녀를 보면/ 무슨 말을 하여야 할까, 오 토요일 밤에~’

밝고 정겨운 노래만을 부르는 가수로 이름을 날리던 김씨는 헬멧과 마스크,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자전거 안장에 올라타면, 거칠고 용감한 산악자전거 ‘캡틴’으로 변신했다.

“자유로웠어요. 얼굴을 가리니 사인해 달라는 팬들도 없고, 전국의 산하를 마음껏 즐겼어요. 5만분의 1 지도가 친구였어요. 아침에 동쪽을 향해 달립니다. 13시간 걸려 강원도 미시령에 도착해요. 지는 해를 바라보며 지친 몸을 달랩니다. 비록 몸은 지쳤지만 정신은 팔팔하게 살아났어요.”

김씨는 동호인들과 지리산도 올랐다. 벽소령 대피소까지 자전거를 메고 올랐다. 매년 5000㎞를 달렸다.

“산소가 씹힌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나요? 임도를 따라 힘겹게 산 정상에 올라 물웅덩이에 풍덩 빠집니다. 도시락을 함께 먹고 자전거를 타고 내려옵니다. 낙엽이 춤추고, 고추잠자리와 코스모스가 인사를 해요. 입을 조금 벌리면 상쾌한 공기 속에 흠뻑 담긴 산소가 입 속으로 쏟아져 들어와요. 그야말로 청정 산소를 입에 담고 씹는 기분입니다. 그러니 산악자전거에 미치지 않을 수 있나요?”

물론 산을 자전거로 즐기기 위해서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김씨는 자신의 집 마당에서 자전거 기술을 선보인다. 가장 중요한 스탠딩 기술. 안장에 오른 채 중심을 잡고 넘어지지 않는다. 신기하다. 마치 서커스 단원 같다. 핸들을 움켜잡은 강한 팔뚝 근육에 질긴 혈관이 불끈불끈 얼굴을 내민다.

앞바퀴를 들고 달리는 ‘윌리’, 앞뒤 바퀴를 동시에 공중으로 띄우는 ‘바니’, 그리고 착지 기술인 ‘다니엘’ 등의 기본 기술을 익혀야 산길을 탈 수 있다.

물론 산악자전거는 위험하다. 크고 작은 부상은 정겹게 여겨야 한다.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내보이는 김씨는 “손가락이 이상하죠? 부러졌어요. 다행이죠. 기타 치는 데 별로 소용이 없는 손가락이죠.”

김씨는 자전거가 바로 자신의 ‘주치의’라고 정의한다.

“안장에 올라 페달을 밟으면 몸 상태를 즉시 알 수 있어요. 자가 진단이죠.” 그래서 물었다. 자전거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이 뭐냐고. 김씨는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안장 위에 올라탄 인간입니다.”

자전거의 가격이 비싸고 싼 것을 넘어서 안장에 올라탄 사람의 인격이 그 자전거의 성능과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내공이 깊다.

“자전거는 허리를 곧고 강하게 하는 데 특효약입니다. 허리가 곧지 않고서는 페달을 양다리로 힘차게 밟을 수 없어요.”

김씨는 지금도 양재동 자택에서 서울 시내 약속 장소까지 가능하면 자전거를 타고 간다. 텔레비전 출연을 제외하고 대부분 인터뷰는 자전거 복장으로 한다.

김씨 덕분에 많은 연예인들이 자전거 동호인이 됐다. 백남봉, 이문세, 김현철, 박명수, 윤다훈, 최유라, 주병진씨 등이 김씨에게 전염됐다. 바지도 20여년 전 입던 바지를 그대로 입는다. 몸무게도 한결같다. 다들 묻는다.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뭐냐고. “더 늙기 전에 도전하세요. 일상에서 탈출하고 도발하는 일은 어느 정도 불편을 즐기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문명의 편리함에 중독된 현대인들에게 불편함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산악자전거입니다.”

김씨의 휴대폰이 울린다. “조금만 기다려. 곧 갈게.” 김씨와 산악자전거를 즐기려는 친구가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다. 햇살이 강한 대낮인데….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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