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열 대한농구협회 회장이 6일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발전 구상을 밝히고 있다.
선수 출신 첫 농구협회장 방열씨
“외압에 맞서 자율성 지키겠다
미국 명문팀과 대학농구 교류전
여대팀 부활시켜 리그전 치를 것
스폰서 부회장 10여명 영입 계획” “우리는 마당쇠가 아닙니다. 정치인이 부르면 달려와서 고개를 숙이는 그런 마당쇠가 아니라는 겁니다.” 방열(72·사진) 신임 대한농구협회 회장이 ‘스포츠인의 탈마당쇠’를 외쳤다. 지난 5일 농구인 출신으로는 처음 협회 수장이 된 방 회장은 “정치인은 여의도로, 농구인은 경기장에”라는 구호를 내세워 이종걸 현 회장(민주통합당)과 한선교 한국농구연맹(KBL) 총재(새누리당), 두명의 정치인 경쟁자를 1차 투표에서 가볍게 물리쳤다. 대부분 경기단체의 수장이 정치인과 경제인으로 채워지는 현실에서 방 회장의 ‘독한 목소리’는 어느 정도 현실에 먹힐 수 있을까? 4년 전 도전했다가 실패한 방 회장은 두번째 도전 만에 성공한 흥분이 아직 가라않지 않은 듯했다. 방 회장을 6일 서울 시내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품위 있는 백발에 정갈한 슈트 차림이 나이를 뛰어넘는 기개를 느끼게 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에 분명히 명시돼 있어요. ‘스포츠 단체는 정치, 경제, 종교, 법률 등 그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말고 자율성을 지켜야 한다’고요. 이제 정치인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협회가 어떤 모습으로 나가는지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방 회장은 덧붙힌다. “만약 제가 실패하면 다시는 농구인이 수장을 맡기 어려울 것입니다. 후배들의 기대를 위해서라도 협회를 멋있게 이끌어 갈 것입니다.” 방 회장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이전에 최고 인기였던 아마추어 농구는 이미 대중의 눈 밖에 있어요. 심지어 문화체육관광부조차 농구를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해 놓은 상태입니다. 우선 대학농구의 국제화를 이루려고 합니다. 국내 리그를 통해 상위 4개팀을 뽑아 미국 등의 대학농구 명문팀과 정기적인 교류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해 시도했던 프로와 아마가 함께 경기하는 이벤트성 대회는 의미가 없다고 진단한다. 방 회장은 여자 대학팀의 부활도 꿈꾼다. “여자 대학팀이 없어 고교 졸업 뒤 여자 선수들이 대학이 아닌 실업팀에 선수들이 들어갑니다. 전형적인 개발도상국의 모델입니다. 이화여대, 숙명여대, 성신여대 등 이전에 팀을 운용하던 대학을 설득해 여자대학 리그를 만들 계획입니다.” 가장 방 회장이 역점을 두고 싶은 분야가 농구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다. 순간 방 회장의 얼굴이 붉게 상기된다.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남녀농구는 본선 출전도 못 했어요. 예선전 개최도 중국에 빼앗겼어요. 심지어 지난 10년 동안 국내에서 딱 한번밖에 국제대회를 치러보지 못했어요.” 방 회장은 선거 공약으로는 대학 농구와 지방 농구를 살리는 것, 국가대표를 1군과 2군으로 나눠서 운영하는 것,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것, 국제심판학교를 설립하는 것 등을 내세웠다. 협회 예산 규모도 현재보다는 20% 정도 키울 욕심이다. 현재 37억원 정도인 예산을 50억원 규모로 늘려 다양한 사업을 펼치려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까? 순수 경기인 수장에게 가장 취약한 점으로 꼽히는 부분이다. “제가 지난 70년 동안 살며 많은 인맥을 구축해 놓았습니다. 스폰서 부회장을 10여명 영입할 것입니다. 그 부회장들이 충분히 출연할 수 있도록 이미 부탁을 해 놓은 상태입니다.” 방 회장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협회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한다. 지방에서 1년에 4차례씩 회의를 하는 철저한 현장주의를 지키겠다고 했다. “우리 민족은 손재주가 뛰어납니다. 고려청자 같은 도자기를 보십시오. 골프를 잘하는 이유도 유전자에 있습니다. 주로 손을 쓰는 농구를 한국이 잘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경복고와 연세대를 졸업한 방 회장은 국가대표로 활약하다가 1968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조흥은행에서 27살의 나이에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82년 뉴델리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대표팀 감독을 지낸 그는 1986년 실업 기아의 초대 사령탑을 맡아 기아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유재학(모비스 감독), 허재(케이씨씨 감독), 김유택(중앙대 감독), 강동희(동부 감독) 등 현재의 스타 감독들이 그의 수제자였다. 체육학 박사학위를 갖고, 농구 이론서인 <농구 바이블>을 쓰기도 한 방 회장은 이번 선거에서 ‘한국 농구 중흥을 염원하는 농구인 모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농구인들이 세게 뭉쳤습니다.” 방 회장의 손끝에 힘이 솟는다. 글·사진/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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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서 부회장 10여명 영입 계획” “우리는 마당쇠가 아닙니다. 정치인이 부르면 달려와서 고개를 숙이는 그런 마당쇠가 아니라는 겁니다.” 방열(72·사진) 신임 대한농구협회 회장이 ‘스포츠인의 탈마당쇠’를 외쳤다. 지난 5일 농구인 출신으로는 처음 협회 수장이 된 방 회장은 “정치인은 여의도로, 농구인은 경기장에”라는 구호를 내세워 이종걸 현 회장(민주통합당)과 한선교 한국농구연맹(KBL) 총재(새누리당), 두명의 정치인 경쟁자를 1차 투표에서 가볍게 물리쳤다. 대부분 경기단체의 수장이 정치인과 경제인으로 채워지는 현실에서 방 회장의 ‘독한 목소리’는 어느 정도 현실에 먹힐 수 있을까? 4년 전 도전했다가 실패한 방 회장은 두번째 도전 만에 성공한 흥분이 아직 가라않지 않은 듯했다. 방 회장을 6일 서울 시내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품위 있는 백발에 정갈한 슈트 차림이 나이를 뛰어넘는 기개를 느끼게 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에 분명히 명시돼 있어요. ‘스포츠 단체는 정치, 경제, 종교, 법률 등 그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말고 자율성을 지켜야 한다’고요. 이제 정치인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협회가 어떤 모습으로 나가는지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방 회장은 덧붙힌다. “만약 제가 실패하면 다시는 농구인이 수장을 맡기 어려울 것입니다. 후배들의 기대를 위해서라도 협회를 멋있게 이끌어 갈 것입니다.” 방 회장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이전에 최고 인기였던 아마추어 농구는 이미 대중의 눈 밖에 있어요. 심지어 문화체육관광부조차 농구를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해 놓은 상태입니다. 우선 대학농구의 국제화를 이루려고 합니다. 국내 리그를 통해 상위 4개팀을 뽑아 미국 등의 대학농구 명문팀과 정기적인 교류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해 시도했던 프로와 아마가 함께 경기하는 이벤트성 대회는 의미가 없다고 진단한다. 방 회장은 여자 대학팀의 부활도 꿈꾼다. “여자 대학팀이 없어 고교 졸업 뒤 여자 선수들이 대학이 아닌 실업팀에 선수들이 들어갑니다. 전형적인 개발도상국의 모델입니다. 이화여대, 숙명여대, 성신여대 등 이전에 팀을 운용하던 대학을 설득해 여자대학 리그를 만들 계획입니다.” 가장 방 회장이 역점을 두고 싶은 분야가 농구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다. 순간 방 회장의 얼굴이 붉게 상기된다.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남녀농구는 본선 출전도 못 했어요. 예선전 개최도 중국에 빼앗겼어요. 심지어 지난 10년 동안 국내에서 딱 한번밖에 국제대회를 치러보지 못했어요.” 방 회장은 선거 공약으로는 대학 농구와 지방 농구를 살리는 것, 국가대표를 1군과 2군으로 나눠서 운영하는 것,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것, 국제심판학교를 설립하는 것 등을 내세웠다. 협회 예산 규모도 현재보다는 20% 정도 키울 욕심이다. 현재 37억원 정도인 예산을 50억원 규모로 늘려 다양한 사업을 펼치려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까? 순수 경기인 수장에게 가장 취약한 점으로 꼽히는 부분이다. “제가 지난 70년 동안 살며 많은 인맥을 구축해 놓았습니다. 스폰서 부회장을 10여명 영입할 것입니다. 그 부회장들이 충분히 출연할 수 있도록 이미 부탁을 해 놓은 상태입니다.” 방 회장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협회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한다. 지방에서 1년에 4차례씩 회의를 하는 철저한 현장주의를 지키겠다고 했다. “우리 민족은 손재주가 뛰어납니다. 고려청자 같은 도자기를 보십시오. 골프를 잘하는 이유도 유전자에 있습니다. 주로 손을 쓰는 농구를 한국이 잘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경복고와 연세대를 졸업한 방 회장은 국가대표로 활약하다가 1968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조흥은행에서 27살의 나이에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82년 뉴델리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대표팀 감독을 지낸 그는 1986년 실업 기아의 초대 사령탑을 맡아 기아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유재학(모비스 감독), 허재(케이씨씨 감독), 김유택(중앙대 감독), 강동희(동부 감독) 등 현재의 스타 감독들이 그의 수제자였다. 체육학 박사학위를 갖고, 농구 이론서인 <농구 바이블>을 쓰기도 한 방 회장은 이번 선거에서 ‘한국 농구 중흥을 염원하는 농구인 모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농구인들이 세게 뭉쳤습니다.” 방 회장의 손끝에 힘이 솟는다. 글·사진/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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