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스포츠 스포츠일반

[현장] 기자가 뛴 세계육상 800M

등록 2005-08-14 14:14수정 2005-08-16 13:30

이길우 기자( 맨 앞쪽 모자쓴 이)가 12일 오후 헬싱키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육상 기자들의 800m 대회에서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이길우 기자( 맨 앞쪽 모자쓴 이)가 12일 오후 헬싱키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육상 기자들의 800m 대회에서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헬싱키 올림픽 스타디움은 이제 세계적인 육상의 메카가 됐다.

지난 1983년 제1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한 핀란드는 이번 대회(10회)를 치르면서 유일하게 세계육상대회를 두차례 치르는 국가가 됐다. 1920년대 3개 올림픽대회 장거리 육상 종목에서 모두 6개의 금메달을 차지한 파보 누르미의 동상이 서있는 올림픽 스타디움은 대회가 치러지는 10일간 3만5천석 관중석이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세계 육상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런 올림픽 스타디움 트랙에서 열린 800m 달리기 경기에 출전하는 ‘행운’을 누렸다. 세계적인 선수들만이 달릴 수 있는 그 트랙에서 거친 숨을 내쉬며 달린 것이다.

경쟁 선수들은 이번 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온 전 세계 체육기자들. 대회 조직위는 경기가 없는 지난 12일 오후, 미리 출전 신청을 한 57명의 체육기자들을 스타디움에 불러 공식대회와 똑같은 방식으로 경기를 치렀다. 대회 이름은 ‘미디어 레이스’.

출전신청 기자들은 자신의 800m 기록과 예상기록을 신청서에 써야 했다. 마라톤 풀코스는 몇차례 완주했으나 800m는 한번도 뛰어 본 적이 없는 기자는 학창시절 100m 기록을 상기해, 넉넉히 20초 곱하기 8하면 160초, 즉 2분 40초를 예상 기록으로 써 넣었다. 접수 받는 관계자는 “매우 빠르다”며 놀라는 표정이다.

스타디움에는 비가 내렸다. 모두 10번의 경기가 예정됐고, 기자는 8번째에 소속됐다. 물론 정식 경기처럼 한 레인에 한 명씩 뛰고, 기록도 정확히 계측했다. 긴장됐다. 그러나 첫번째 경기에 출전한 기자들은 대부분 참가에 의의를 둔 듯 별로 스피드가 없다. 두번째 경기에 출전한 기자들도 헉헉대며 완주를 한다. 속으로 “저 정도면...”이라는 생각을 한다.

트랙 한켠에서 몸을 풀며 이번 한국선수단의 단장인 황규훈 대한육상연맹 전무이사가 한 충고를 떠올렸다. “첫번째 한바퀴(400m)는 70% 정도의 스피드로 달려야 후반에 처지지 않는다”, 즉 초반에 흥분해서 자신 능력 이상으로 달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드디어 차례가 왔다. 같이 뛰게 된 ‘선수’들을 보니 앞에서 뛴 선수들과는 모습이 다르다. 대부분 날렵하고, 젊고, 힘이 넘친다. 그제서야 눈치챘다. 신청서에 써 놓은 개인기록을 참작해 비교적 잘뛰는 선수들을 뒷쪽에 함께 배치한 것이다.


배정받은 레인은 1번, 가장 안쪽에서 뛰게 됐다. 모두 7명이 뛴다. 관중석에는 함께 취재 온 한국 기자 3명이 응원한다. 드디어 스타트 총성이 울렸다. 작전은 첫 바퀴는 중간에 끼어 달리다가 두번째 바퀴에 스퍼트, 3등 안에 드는 것.

모두 잘 달린다. 자연스럽게 중간(4번째)에 끼어 레이스가 시작됐다. 트랙은 비록 비가 왔으나 전혀 미끄럽지 않다. 기록 향상을 위해 대회 조직위원회는 최신 소재로 교체했다. 안쪽 레인을 지키며 한 바퀴를 달렸는데, 숨이 헉헉 막힌다. 나름대로는 ‘오버’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속도가 처지는 것 같다. 뒤에서 달리던 영국 기자가 두번째 바퀴에 들자 앞서 나간다. 추월하기는 커녕 추월 당한 것이다. 그러나 당황하지 않고 제 속도를 지키며 달렸다. 조금 있다가 또 헝가리 기자가 추월한다. 이제 200m 남았는데 힘이 부친다. 앞서 뛰어 가는 기자들을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을 것 같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달렸다. 드디어 골인. 기록은 2분56초13. 7명 가운데 6등이다. 간신히 꼴찌는 면했다. 우리 조 1위는 독일 방송기자인 요한 프리데무스로 2분22초11이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30분을 기다려 응원하는 ‘동지애’를 보여준 한국기자들이 “수고했어요”라며 격려해준다. 그러면서 “마치 한국 육상처럼 세계의 벽은 기자 육상에도 높았다”라고 농담한다.

저녁 때 조직위는 출전선수 모두의 개인기록과 순위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1위는 이스라엘의 신문기자 아미 시거요른으로 1분57초81. 엘리트 선수 수준이다. 기자는 57명 가운데 44등을 차지했다. 비록 순위는 하위권이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더욱 평소에 열심히 달려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헬싱키/이길우 기자 niha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스포츠 많이 보는 기사

여자국수 김채영 9단, 박하민 9단과 결혼…12번째 프로기사 부부 1.

여자국수 김채영 9단, 박하민 9단과 결혼…12번째 프로기사 부부

파리 생제르맹·레알 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PO 1차전 승리 2.

파리 생제르맹·레알 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PO 1차전 승리

아깝게 메달 놓쳤지만…37살 이승훈, 역시 ‘한국 빙속 대들보’ 3.

아깝게 메달 놓쳤지만…37살 이승훈, 역시 ‘한국 빙속 대들보’

최성원과 차유람 앞세운 휴온스, 팀 리그 PO 기적의 막차 탈까? 4.

최성원과 차유람 앞세운 휴온스, 팀 리그 PO 기적의 막차 탈까?

한국 여자컬링, 일본 ‘완벽봉쇄’…2연승으로 1위 순항 5.

한국 여자컬링, 일본 ‘완벽봉쇄’…2연승으로 1위 순항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