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마라톤의 기대주 김도연이 22일 새벽 강원도 춘천 소양강변 길을 사뿐하게 달리고 있다.
하프코스도 뛰어본 적 없는 김도연
강한 파워에 회복속도 뛰어나 주목
체력 보강해 풀코스에 단계적 도전
“올림픽 금메달 현실로 다가올 것”
강한 파워에 회복속도 뛰어나 주목
체력 보강해 풀코스에 단계적 도전
“올림픽 금메달 현실로 다가올 것”
오늘도 달린다.
춘천에서 처음 맞는 겨울이라 생경하다. 밤새 굳었던 몸의 근육과 관절은 점차 윤활유를 친 듯이 부드러워진다. 심장박동 소리가 아스팔트 바닥에 마찰되며 내는 러닝화의 낮은 비명 소리를 제압한다. ‘나는 왜 달릴까’를 생각해 보지만 언제나 대답을 못한 채 달린다. 문득 달리는 것이 즐겁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젖산이 쌓이며 피로에 지친 근육이 그만 좀 달리라고 외치는 아우성도 듣는다.
김도연(19·강원도청)은 뺨에 흐르는 땀을 훔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춘천 소양강을 가로지르는 철교를 지나 강변길로 들어선다. 숨을 깊이 쉰다. 다리에 힘이 전달되며 속도가 올라간다.
여자 마라톤은 한국 육상의 시린 상처다. 아직 한번도 세계 정상은 물론, 아시아 정상에도 오르지 못했다. 북한과 중국, 일본은 모두 여자 마라톤 세계 정상에 올랐다.
한국 남자 마라톤이 세계를 몇차례 제패한 것에 비해 여자 마라톤은 아직 불모지에 가깝다. 여자 마라톤 세계기록이 2시간15분25초인데, 한국 최고기록은 2시간26분12초(권은주)로 한참 차이가 난다. 김도연은 이런 한국 여자 마라톤에 희망의 빛을 던져주는 기대주로 주목받는 것이 부담스럽다.
김도연은 2월 서울체고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곧바로 실업팀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10월 전국체전에서 5000m와 1만m에서 우승하며 2관왕에 올랐다. 쟁쟁한 실업 선배들을 제치고 한국 장거리를 휩쓸며 ‘예쁜 괴물’로 등장했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은 최근 김도연을 여자 마라톤 국가대표로 선발했다. 아직 한번도 마라톤 풀코스는커녕 하프코스에도 뛰어본 적이 없는 김도연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국가대표로 뽑힌 이유는 무엇일까?
김도연은 또래 육상선수들에 비해 뒤늦게 트랙을 달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중학교 1학년생 김도연은 서울시 육상대회 400m에 1등을 차지했다. 특기생이 아닌 일반 학생들만의 대회였다. 워낙 가볍게 트랙을 질주하는 것을 눈여겨본 선생님들은 자질이 아깝다며 부모에게 체육중학교로 전학 보내길 권했다.
서울체육중학교에 전학한 김도연은 곧 두각을 나타냈다. 중학교 3학년 때 소년체전 3000m에서 2등, 1500m에서 3등을 차지한 뒤, 중고 연맹전 대회 3000m에서 마침내 1등에 올랐다. 서울체고로 진학한 김도연은 고교 2학년 때 전국체전에서 5000m에서 1등을 차지하며 강자로 떠올랐고, 실업 1년차인 올해 2관왕에 올랐다.
김도연을 눈여겨보다가 영입한 최선근 강원도청 마라톤 감독은 23년째 여자 마라톤에 몰두한 집념의 지도자. 최 감독은 김도연에게 ‘올인’했다. “김도연은 순간 피로회복 속도가 남들보다 탁월하다. 아마도 뛰어난 유전자를 지닌 것 같다.”
최 감독은 일본 여자 마라톤을 세계 정상에 올린 후지타 노부유키 감독과 중국 여자 마라톤 상비군을 지도하는 루마니아 출신의 발레리우 토메스쿠 감독과 함께 김도연 세계 챔피언 만들기 작업을 펴고 있다. 이들 외국 감독들도 김도연의 달리는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고 한다.
지난 20년간 한국 여자마라톤대회에서 15차례 우승한 윤선숙(42·강원도청) 코치 겸 선수는 “김도연과 함께 달리면 강한 힘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낀다”며 “내가 한계로 느낀 여자 마라톤 2시간29분 벽을 김도연은 곧 깰 것”이라고 예고했다.
최 감독은 지난 4월과 9월 두차례에 걸쳐 김도연을 중국 쿤밍에 데리고 가서 고지훈련을 시켜 심폐 기능을 크게 강화시켰다. 김도연도 체력이 좋아진 것을 느낀다고 한다. 최 감독은 앞으로 1년간 김도연의 5000m와 1만m, 그리고 하프마라톤에 집중해 이 부문 기록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뒤 풀코스 도전에 진입시킨다는 계획이다. 성급한 풀코스 도전을 경계하고 있다. 키 162㎝, 몸무게 46㎏인 김도연은 세계적인 마라톤 선수로도 대성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기도 하다.
“올림픽 금메달은 공허한 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드릴게요.” 김도연이 앙증맞은 표정으로 약속한다.
춘천/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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