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무 선임기자의 스포츠 오디세이
어느 조직이든, 인사나 일처리에서 결정권자는 ‘정도’를 밟아야 한다. 꼼수를 부렸다간 조직이 망가지고, 외부에 신뢰도 잃게 된다.
요즘 한국배구연맹(KOVO) 행태를 보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지난해 10월 이동호 총재의 불명예 자진 사퇴 이후 1년간 박상설 사무총장 체제로 운영되던 배구연맹은 지난달 10일 새 총재를 뽑았다. 엘아이지(LIG)손해보험 구자준(62) 회장이다. 연맹 총재추대위원회의 추대에 구 회장은 이를 수락했다.
그러나 엘아이지그룹의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사건이 갑자기 터지면서, 구자준 총재는 지난달 26일 하려던 공식 취임식을 무기한 연기했다. 그러면서 새 총재 취임으로 기대됐던 연맹 행정의 정상화도 자연 유야무야됐다. 구 총재는 이후, 연맹 기금 80억원 전용 및 부문별한 사용과 인사 전횡 등으로 문제가 된 박상설 사무총장 처리 문제도 차일피일 미뤘다. 언론에서 수차례 문제 제기를 하자 어떤 답도 내놓지 않고 눈치만 살폈다. 사무총장을 그대로 안고 간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최근 다시 박 사무총장의 거취가 일부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자 엘아이지손보 쪽은 23일 오전 11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구 총재 취임식을 연다고 16일 발표했다. 사무총장에 대한 입장도 밝힐 예정이다.
구 총재는 이어 20일에는 조영욱(53) 엘아이지손보 감사실 부장을 연맹 사무처장에 내정했다. 사무총장과 사무국장이 있는데, 그 사이에 사무처장이라는 자리를 새롭게 만든 것이다. 완전 ‘옥상옥’이다.
새 사무처장은 1985년 엘지(LG)화재에 입사한 이래 주로 재무관리 파트에서 일해온 인사로 알려졌다. 구 총재가 그를 사무처장에 앉힌 것은 “사무국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수입 극대화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문제가 된 사무총장을 견제·감시하기 위해 총재 측근인사를 연맹에 심어놓는 꼼수를 부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박상설 사무총장은 대우자동차판매 대표이사 재직시 임금체불과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최근 인천지법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연맹 정관상으로는 사무총장직을 수행할 수 없는 처지다. 그런데도 박 사무총장은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고, 구자준 총재는 무책임하게 이를 묵인하고 있다. 전횡과 유용, 꼼수 등으로 얼룩진 배구연맹. 한국프로배구의 앞날이 참 암담해 보인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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