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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돌아오지 마, 너를 죽여버릴 거야”

등록 2012-08-17 20:42수정 2012-08-17 20:51

[토요판]승부 / 런던 영웅들, 그 뒤
▶ 지난 13일 폐막한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13개를 따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최다 금메달 타이를 이뤘습니다. 자기 인생 최고의 값진 메달을 딴 사람들도 있습니다. 허들을 넘으며 끔찍한 성추행 피해 경험을 극복한 미국의 육상 선수도, 티베트인의 함성을 들으며 묵묵히 걸었던 중국의 경보 선수도 모두 메달을 땄습니다. 악몽 같은 과거와 싸워 이기고 부조리한 현실에 대항한 올림픽 영웅들의 이야기를 읽어보시죠.

과거와의 싸움

“나는 ‘과거’가 아닙니다.”(I am not my past) 고교 2학년이던 켈리 웰스(미국)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방금 전 그는 엄마(저넷 웰스)와 엄마의 약혼자(리처드 고메스)가 끔찍한 교통사고로 모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일’이 있고 집을 떠나온 지 한달쯤 되는 날이었다. 비극은 어쩌면 ‘그날’부터 시작됐다.

한 달 전 그날, 엄마의 약혼자는 켈리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갑자기 나를 너무 가깝게 대했고, 무슨 일이 있든지 꼭 그 옆에 붙어 있기를 원했어요. 그런 게 싫어서 학교에서 달리기 연습을 더 오래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지요. 하지만 어느 날 벌을 준다면서 옷을 벗으라고 하더군요.”(영국 <데일리메일>인터뷰 중)

당시 켈리의 나이는 열여섯. 모든 사실을 엄마에게 털어놨지만 침묵할 뿐 아무런 조처도 없었다. 엄마에게마저 버림받은 듯한 상실감에 켈리는 집을 나왔다. 엄마의 약혼자로부터 멀리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친구의 집에 머물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갈 즈음 사고 소식이 들린 것이었다. 켈리는 영국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어쩌면 우리 주위의 흔한 이야기일지 몰라요. 하지만 두꺼운 덮개로 가리고 쉬쉬하는 거겠지요”라고 말했다.

엄마를 잃고 뒤죽박죽된 삶 속에서 켈리는 더욱 달리기에 몰입했다. 가족과 관련된 얘기는 가슴속에 꽁꽁 묻어두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기준기록을 통과하고도 불의의 햄스트링(허벅지 뒤쪽의 근육과 힘줄)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이듬해 대부분의 시간을 트랙 밖에서 보내면서 켈리는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니 위로받고 싶었다. 켈리는 <엔비시>(NBC)에 “한동안 뛸 수 없게 되니까 다른 치유 방법을 찾게 됐다”고 털어놨다.

8일(한국시각) 런던 올림픽 스타디움. 만 서른살이 된 켈리는 여자 허들 100m 결선에서 3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비가 흩뿌렸던 그날, 켈리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하게 웃었다. 두 눈에서는 빗물에 섞인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시상식 직후 그는 “나로 인해 사람들이 희망을 보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용기를 얻는다면, 나의 삶은 아주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들에게 ‘당신은 절대 피해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런던올림픽에서 어두운 과거를 딛고 비로소 미소를 찾은 선수는 비단 켈리 웰스뿐만이 아니었다. 미국 유도 역사상 첫 금메달을 안긴 케일라 해리슨(22)도 그들 중 한 명이다. 해리슨은 13살부터 16살 때까지 가족과 친분 관계에 있던 열여섯 연상의 유도 코치 대니얼 도일에게서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했다. “처음에는 둘 사이의 비밀 같은 것이었어요. 그를 사랑한다고 믿었지요. 나중에는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해리슨의 친구에게서 모든 사연을 전해 들은 어머니 지니 야젤은 도일을 고소했고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해리슨은 이후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성추행 사실을 밝히는 것은 일종의 금기 사항처럼 되어 있었어요. 유도 관련 사이트를 보면 ‘케일라가 사실을 말했는지 어떻게 알아?’, ‘걔는 몇살인데’라는 식의 댓글들이 있었죠. 그때부터 거울을 못 봤어요. 사람들이 저를 성추행 피해자로 바라보면서 자존감도 사라졌고, 유도도 싫어졌지요.”(<세인트루이스 투데이>인터뷰 중)

해리슨은 유도장으로 돌아왔고,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해리슨은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스스로 피해자라고 규정해버리면 진짜 피해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지옥에 사는 듯한 기분을 느껴도 용기를 가져야만 하고 “나는 피해자가 아니다”고 당당히 외쳐야만 한다”고 했다.

어릴 적 친아버지에게 당한 성적 학대를 딛고 여자 복싱 라이트급 60㎏에 출전했던 퀸 언더우드(29·미국)는 올림픽 첫 경기에서 졌다. “악몽 같은 나의 과거를 계속 얘기하는 이유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에게 쥐구멍에 숨어 살지 말라고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 변명으로 일관된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경기는 졌지만 퀸 언더우드의 투혼은 지지 않았다”고 평했다.

현재와의 싸움

등번호와 함께 쓰여진 이름이 ‘모하메드 파라’였다. 오지랖 넓은 영국 취재진이 앞다투어 물었다. “번호판은 모 파라가 준 것인가요?” ‘모 파라’는 영국 국적의 장거리 남자 육상 선수 모하메드 파라를 줄여 부르는 말이다. 물론 그는 8살 때 모가디슈를 탈출한 소말리아인이었다. 모 파라는 남자 1000m 결승에서 영국에 100년 만에 1000m 금메달을 안겨줬다. 질문을 받은 잠잠 모하메드 파라(21)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당당히 말했다. “아니에요. 이건 제 이름이에요.” 순간 취재진은 머쓱해졌다.

런던올림픽 육상 경기 첫날(8월3일). 인터뷰장에 들어서기 직전 파라는 히잡을 쓰고 손과 발을 모두 옷으로 감싼 채 올림픽 스타디움을 달렸다. 여자 400m 예선에서 1위보다 30초나 뒤진 1분20초48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8만여 관중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지루하게 이어져 온 내전을 뚫고 올림픽 무대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위대했다. 파라는 남자 1500m에 참가한 모하메드 하산 모하메드(20)와 함께 런던올림픽에 참가한 ‘유이한’ 소말리아 국적의 선수였다.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소말리아는 1991년 이후 21년 동안 내전이 진행중이고, 총성이 하루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 한 유명 코미디언이 수도 모가디슈 라디오 방송국을 나서다가 암살을 당하는 등 혼란이 거듭되고 있다. 현실의 암담함에도 파라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파라는 <스코티시 익스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내전이 최악으로 치달을 때도 모가디슈 거리 외에는 갈 곳이 없었다. 무장한 군인들을 피하기 위해 더 빨리 달려야 했고, 가끔은 자살폭탄 테러리스트로 오인 받아 총을 쏘겠다는 군인들의 협박까지 받았다”고 했다. 파라는 훈련한 모가디슈 거리를 ‘죽음의 도로’라고 표현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203개 국기와 함께 소말리아가 함께 입장했다는 거예요. 그 자체로 성공한 거지요. 소말리아는 죽지 않았어요. 이렇게 살아있어요.”(영국 <더시티스>인터뷰 중)

파라와 모하메드는 런던올림픽에서 소말리아를 ‘대표’했지만 소말리아로 돌아가 그들이 맞닥뜨려야 할 현실은 암담하다. 가뜩이나 무슬림인 파라는 신성한 라마단 기간에 경기에 출전해 주위 시선이 곱지 못하다. 파라는 영국 <유니버설 티브이>와의 인터뷰에서 “페이스북과 전화를 통해 많은 협박이 있어요. 부모님 또한 옳지 못한 일을 했다고, 그에 대한 책임은 제가 져야 한다고 말씀하세요”라고 밝혔다. 더불어 “모하메드는 돌아가면 살기 어려울 것 같다고도 말하지요”라며 두려움을 표했다. 4월에 이미 소말리아의 올림픽조직위원장과 축구협회장이 자살폭탄 테러로 숨진 바 있다. 여러 정황상 망명설도 불거졌으나 이들은 부인했다. 올림픽 참가에 용기가 필요했듯,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도 용기가 필요한 그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대표로 출전한 여자 유도 선수 우즈단 알리 압둘라힘 샤히르카니(16)는 고국에서 냉대를 받고 있다. 경기 때 변형 히잡을 사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샤히르카니와 함께 사라 아타르도 여자 육상에 참가했지만, 아타르는 본래 미국 태생이고 지금도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 상황이 다르다. 샤히르카니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권고로 경기 동안 수영모자와 비슷하게 생긴 변형된 히잡을 착용했고, 예선 1차전에서 82초 만에 한판으로 패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몸에 붙는 의상을 착용해 남성들 앞에서 경기하는 것은 스스로와 가족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다. 샤히르카니는 속세의 덧없는 명예를 위해 내세를 위태롭게 하는 짓을 중단하라”는 사우디 내 보수파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에 샤히르카니의 아버지는 “딸은 세계적으로 사우디 여성사를 새로 썼다는 찬사를 받았으나 국내 보수파들로부터는 ‘창녀’라는 심한 욕을 듣고 있다”며 딸을 모욕한 이들을 고소할 뜻을 내비쳤다.

모하메드 파라(오른쪽)가 런던올림픽에 앞서 연습을 하고 있다. 구조단체인 미국난민위원회(ARC)는 런던올림픽에 출전하는 소말리아 선수들을 지원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미국난민위원회 제공
모하메드 파라(오른쪽)가 런던올림픽에 앞서 연습을 하고 있다. 구조단체인 미국난민위원회(ARC)는 런던올림픽에 출전하는 소말리아 선수들을 지원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미국난민위원회 제공

미래로의 한 걸음

22살의 키 초에양(Kyi Choeyang)은 티베트 출신으로 최초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하지만 티베트를 대표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여자 20㎞ 경보 선수로 출전했다. 조국인 티베트가 아니라, 60여년간 티베트를 강점한 중국의 오성홍기를 가슴에 달고 뛰는 초에양. 선수명도 중국명인 선제체양(Shenjie Qieyang)이다. 마치 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때 일장기를 달고 뛰는 모습과 겹쳐진다.

외신은 11일 버킹엄궁에서 출발한 2012 런던올림픽 경보 여자 20㎞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중국 사람들은 힘내라는 뜻의 ‘짜여우’를, 티베트 사람들은 ‘기우크’라며 응원을 했다. 적대적인 두 나라 사람들은 다른 국기를 들고 똑같은 목표(승리)를 기원했다.”

출발지에서 초에양은 티베트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쳐다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첫발에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초반부 2㎞를 따라 달리며 응원해준 망명 티베트 사람들의 목소리를 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1시간25분16초 골인 동메달. 1위인 러시아의 옐레나 라시마노바와는 14초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밝은 표정으로 골인한 초에양은 “티베트 사람으로 처음 올림픽 메달을 따 영광이다. 티베트 사람들이 나를 응원해주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이상 선을 넘어갈 수는 없었다. 중국 취재진이 (눈 덮인 산 위로 태양이 솟는) 티베트 국기를 보았냐는 질문에, 고개를 흔들며 대답을 거부했다. 매우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기 때문이다.

티베트의 유목민 부모 밑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부터 달리기를 좋아한 초에양은 7월 중국 공산당에 들어갔다. 조국이 강점당한 현실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경보 선수로서 자기 전망을 세워나가고 있다.

물론 티베트 사람들의 해석은 다르다. 밝은 얼굴로 결승선을 통과한 것에도 의구심을 갖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인도에서 태어난 티베트 여성인 양천 키크항의 얘기를 전했다. 양천은 “티베트 사람들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중국 정부가 초에양에게 압력을 가했거나 세뇌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초에양이 자랑스럽지만, 초에양이 중국을 대표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키프로스의 파블로스 콘티데스(22)는 6일 런던올림픽 요트 남자 레이저에서 준우승해 사상 처음 조국에 올림픽 메달을 선물했다. 1980년 모스크바 대회부터 올림픽 문을 두드린 뒤 첫 광맥이다. 일부에서는 1896년 1회 올림픽에서 키프로스 출신 이오아니스 프랑구디스가 사격에서 금·은·동메달을 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키프로스 국가올림픽위원회의 스타브로스 미하일리디스는 “프랑구디스는 그리스 대표로 나갔다. 키프로스는 1960년 독립해 1974년부터 남북 키프로스로 나뉘었지만, 1980년부터 올림픽에는 단일팀으로 나가고 있다”며 첫 메달임을 강조했다.

이번 올림픽에는 204개 올림픽위원회 회원국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80개 나라는 이번 런던올림픽 전까지 메달을 따지 못했다. 런던올림픽을 통해 과테말라, 가봉, 그레나다, 키프로스, 보츠와나가 메달리스트 국가에 이름을 올렸다. 콘티데스의 메달은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키프로스 상황에서 국민들한테는 기쁜 뉴스다. 키프로스 대통령까지 나서 축하전화를 하는 등 열광적이다. 하지만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남쪽과 터키어를 사용하는 북쪽 사이엔 여전히 경계가 있다. 키프로스 올림픽위원회 쪽은 “단일팀으로 참가하고 북쪽의 키프로스 선수들한테 문호는 개방돼 있다”고 했지만, 북쪽 키프로스 선수가 키프로스공화국의 이름을 달고 올림픽에 나가기는 앞으로도 어려워 보인다. 마치 티베트의 초에양이 독립국가의 국기를 달고 나가기 힘든 것처럼.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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