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 선수가 29일 새벽(한국시각) 올림픽파크 아쿠아틱스센터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수영 남자 자유형 400m 결선에서 2위로 터치패드를 끊은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충격의 실격…기적같은 번복…박태환 ‘감동의 물살’
천당·지옥 오간 자유형 400m
쑨양에 금 내주고 끝내 눈물
천당·지옥 오간 자유형 400m
쑨양에 금 내주고 끝내 눈물
참아야 했다. 눈물을 보일 순 없었다.
그래도 은메달인데…. 비록 올림픽 2연패를 놓치고, 숙적 쑨양(21·중국)과의 재대결에서 졌지만 박태환(23·SK텔레콤)은 얼굴에서 미소를 놓지 않았다.
그런데 가슴은 답답해져 왔다.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가슴을 가볍게 쳤다. 순간 악몽 같은 결승 마지막 50m가 생생히 떠올랐다.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아, 미안해요.”
은메달의 박태환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얼굴을 감싼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흐른다. 기자들도 더는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마린보이’ 박태환에게 2012년 7월28일(현지시각) 런던올림픽 첫날은 정말 길고도 힘든 하루였다. 지옥과 천당을 오간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 하루’였다.
이날 오전 10시40분 런던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수영 남자 자유형 400m 예선 3조 경기. 박태환은 4번 레인에서 힘차게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자신의 주종목이다. 지난 4년을 벼르고 벼른 런던올림픽이 아닌가. 수없이 많은 전지훈련과 마인드컨트롤 등으로 이 순간을 기다렸다. 몸 상태도 최고조였다. 수영 불모지인 한국에서 처음으로 서양 선수들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낸 ‘국민 영웅’ 박태환 아닌가.
날렵하게 물살을 가른 박태환은 조 1위로 가볍게 예선을 통과하는 듯했다. 기록도 3분46초68로 예선 전체 4위였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박태환을 질투하는 듯했다. 전광판에 ‘DSQ’(Disqualified·실격)가 표시된 것이다. 부정출발로 예선 탈락인 것이다.
억울했다. 자기 힘의 75%만 쓰면서 가뿐하게 조 1위로 들어왔기에 탈락의 상처가 더 컸다. 뭐가 잘못됐는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표정은 감출 수 있었지만 아쉬움은 억제하기 어려웠다.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단 포기했다. 비록 한국 선수단 차원에서 판정 번복을 위한 노력을 한다고 했지만 한번도 국제대회에서 판정이 번복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앞으로 있을 200m와 1500m에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진정이 안 됐다. 보통 때라면 점심도 먹고 좋아하는 음악도 들었을 것이다. 에너지를 축적하기 위해 1시간이나 1시간30분 잠을 잤던 게 지금까지의 훈련 패턴이었다. 그러나 상심으로 인한 마음의 혼란을 억누르는 것도 힘들었다.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답답하고 숨막히는 적막감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오후 4시께 실격 판정이 번복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성이 하늘을 감동시킨 것일까?
저녁 7시50분에 예정된 결승전에 나서기 위해선 몸을 풀어야 했다. 판정 번복 소식에 식욕이 살아나 밥도 먹었다. 하지만 평상시의 몸상태는 아니었고, 리듬이 헝클어졌다. 마이클 볼 코치도 무거워진 박태환의 몸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박태환은 결승전 6번 레인에 섰다. 4번 레인에는 맞수 쑨양이 서 있었다. 박태환은 출발과 동시에 치고 나갔다. 300m 지점까지 쑨양에게 앞서 있었다. 턴하고 마지막 50m가 남았다. 그러나 그때부터는 쑨양이 앞서 나갔다. 거리는 점차 벌어졌다. 4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박태환이 막판 50m에서 중국 장린에게 대역전극을 펼쳤는데, 바로 그 상황이 거꾸로 벌어진 것이다.
결국 1위로 터치패드를 찍은 쑨양은 올림픽신기록인 3분40초14를 기록했다. 박태환은 쑨양보다 1.92초 늦은 3분42초06. 박태환은 승리의 세리머니를 하는 쑨양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예선 판정 오류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에스케이텔레콤 관계자는 박태환이 3분39초대에 맞춰서 훈련을 해왔다고 했다. 만약 순조롭게 결승전을 준비할 수 있었다면, 박태환은 다른 상황으로 쑨양을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눈물이 없는 편인 박태환은 경기 뒤 믹스트존에서 참고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바로 그 순간 옆에서는 쑨양이 중국 기자들 앞에서 감격에 겨워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 두 고수의 길고 긴 런던의 하루는 그렇게 눈물로 마무리됐다. 런던/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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