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없었다. 그래도 희망은 봤다.
남자 테니스 대표 팀이 국가대항전 데이비스컵 아시아-오세아니아지역Ⅰ그룹 2회전 호주와의 원정 경기에서 최종 전적 0-5로 패했다. 6일(1, 2단식), 7일(복식)에 이어 8일(현지시각) 브리즈번 퀸즐랜드 테니스센터 하드코트에서 열린 3, 4단식에서도 모두 졌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단 두 세트를 따냈지만, 3단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경기 내용이 훌륭했다. 윤용일 대표 팀 감독은 “세계 순위 차이가 워낙 많이 나는 상황에서도 선수들이 굉장히 잘 싸웠다. 멀리 봐서는 희망적”이라고 평가했다. 팻 라프터 호주 대표 팀 감독 또한 “한국 선수들은 자신들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줬고 경기 태도도 훌륭했다”며 “선수들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 만한 경기였다”고 칭찬했다.
이틀 동안 단식, 복식을 연속해서 뛰어 허리 통증이 온 정석영(19·건국대·세계 730위) 대신 3단식(3세트 경기)에 나선 선수는 나정웅(20·부천시청·842위). 그는 이번이 데이비스컵 첫 출전이었다. 나정웅은 경기 초반 버나드 토믹(20·36위)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는가 싶었지만 1세트 6번째 자신의 서비스게임을 브레이크당한 뒤부터 무기력한 모습을 선보였다. 2-2에서 내리 4게임을 내주면서 2-6 패배. 2세트에서도 토믹의 정교한 서브와 직선 공격에 맥을 못 추면서 1-6으로 졌다. 상대 서비스게임은 단 1게임도 빼앗지 못했다. 나정웅은 “좋은 경험이었다. 좀 더 노력해서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는 선수가 되겠다”고 밝혔다. 윤용일 대표 팀 감독은 “비록 졌지만 세계적인 선수와 싸워본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4단식은 이번 대회 백미였다. 6일 첫 단식에서 토믹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조민혁(25·국군체육부대)은 전날 복식 경기에 출전했던 마린코 마토셰비치(27·121위)와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1세트를 2-6으로 내줬으나 2세트에는 두 차례나 상대 서비스게임을 브레이크해내면서 6-2로 승리했다. 상대 허를 찌르는 다운더라인 샷이 일품이었다. 서브나 리턴도 흠잡을 데 없었다. 3세트에서도 둘은 팽팽한 경기 내용을 펼쳤다. 비록 0-6으로 졌지만 듀스 상황이 많았다. 마토셰비치 서비스게임이던 3번째, 5번째 게임 때는 각각 3차례, 4차례 듀스 상황이 펼쳐졌다. 경기가 잘 안 풀렸던지 마토셰비치는 경기 내내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으면서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였다.
조민혁은 이번 대회에서 토믹과 상대로 2차례, 마토셰비치를 상대로는 3차례나 서비스게임을 빼앗았다. 호주 팬들조차 그의 분전에 박수를 보낼 정도로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였다. 군 복무 중이라 국제 대회에 나가지 못해 세계 순위가 없는 조민혁은 오는 9월에 제대할 예정이다. 조민혁은 “마지막 세트에서 좀 더 자신 있게 치지 못한 게 아쉽다”며 “좋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다음번에 기회가 있으면 꼭 이기고 싶다”고 밝혔다. 윤용일 감독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고 했다.
월드그룹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된 한국은 2013년 다시 지역 예선 1회전을 치르게 된다. 3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호주는 오는 9월 월드그룹 진입을 노린다.
브리즈번/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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