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화상 1급 장애인이지만 이종격투기 선수로 거듭난 박현상(위)선수가 2일 유도가 주무기인 박종률 선수를 공격하고 있다. 박현상 판정승. 스핏코리아 제공 전신화상 1급 장애인이지만 이종격투기 선수로 거듭난 박현상(위)선수가 2일 유도가 주무기인 박종률 선수를 공격하고 있다. 박현상 판정승. 스핏코리아 제공](http://img.hani.co.kr/section-kisa/2005/07/04/00600000012005070402548189.jpg)
전신화상 1급 장애인이지만 이종격투기 선수로 거듭난 박현상(위)선수가 2일 유도가 주무기인 박종률 선수를 공격하고 있다. 박현상 판정승. 스핏코리아 제공
불사조가 여기 있었네 소주 5병을 거푸 마셨다. 죽을 용기가 생겼다. 하늘을 보았다. 구름이 멋있다. 큰 생수 병에 있던 휘발유를 몸에 고루 뿌렸다. 입에 마지막 담배를 물었다. 문득 찢기어 나간 아킬레스 건이 아파온다. 모든 것이 끝났다. 권투 선수로 올림픽 금메달의 꿈도, 전국 최고 주먹의 꿈도, 그리고 사랑하는 ‘엄지’와의 행복한 생활의 꿈도 모두 모두 사라졌다. 라이터를 켰다. 순간 ‘펑’하며 시야가 온통 붉게 변했다. ‘그래 죽는 거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아. ’ 그러나 그것은 결코 끝이 아니었다. 죽음보다 고통스런 이승의 삶이 시작된 것이었다.
핵주먹 자랑하던 권투선수
폭력조직 눈돌려 ‘큰형님’ 노릇
아킬레스건 잘리고 분신 기도
27번 수술끝 재활 격투기선수로
영화같은 삶 우리 곁에 있었다 생명은 이다지도 질긴 것인가. 그는 자살에 실패했다. 그리고 27번의 대수술을 받고 3년간 병상 생활을 했다. 전신 화상 1급 장애인. 남들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세월은 10여년 흘렀으나 지금도 그의 온 몸은 이글거린다. 흉터 때문이다. 손가락과 발가락의 움직임도 불편하다. 그러나 그는 불사조처럼 부활했다. 주변에선 그를 ‘피닉스’라고 부른다. 이종격투기 선수로 멋진 부활을 한 것이다. 38살의 적지 않은 나이의 박현상씨는 지난 2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형 종합격투기 대회인 ‘스프리트 엠시’대회에 출전, 현란한 주먹과 강한 승부 근성을 보이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박씨는 이날 ‘노장’답게 양 팔에 아들 기영(7)군과 딸 서연(5)양을 껴안고 링에 다가와. 둘의 볼에 사랑스런 뽀뽀를 한 뒤 매트에 올랐다. 링 주변에서 그들은 아버지를 응원했다. 애초 그는 아마추어 권투 유망주였다. 초등학교 때 6번 학교를 옮겨 다니며 그는 주먹을 믿었다. 대천 대명중학교 2학년 때까지 반장까지 하며 성적도 상위권이었으나 친구들과 ‘사고’를 친 뒤, 그는 권투부에 들어갔다. 소년원 가는 대신 운동을 택한 것이다. 이를 뒤늦게 안 아버지는 “전국대회 우승하면 허락하겠다”고 말했고, 그는 첫 출전한 전국대회에서 우승했다. 대전체육고에 스카우트됐다. 청소년 국가대표와 국가대표 2진까지 됐다. 86 서울아시아경기대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상대방을 두번 다운 시키고도 ‘억울하게’ 국가대표에 탈락했다. 88 서울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아쉽게 2등했다. 체대에 다니다가 홧김에 프로로 전향했다. 4전 4 케이오승. 핵 주먹이었다. 거칠 것도 없었다. 그때 고향 후배들이 찾아왔다. 그를 ‘형님’으로 모시겠다는 것이었다. 조직의 우두머리가 됐다. 신흥폭력조직에 발을 담근 것이었다. 그러던 지난 1993년, 그는 상대 조직원에게 납치돼 몰매를 맞았다. 온 몸의 뼈와 근육이 제자리를 잃었다. 전기톱에 왼쪽 발목 아킬레스건까지 잘렸다. ‘주먹 보스’로서 생명을 잃은 그는 휠체어를 타고 옥상에 올라갔다. 그리고 온 몸을 태우며 자살하려 했으나 실패한 것이다. 의사는 가망이 없다며 장례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러나 고교 때부터 그를 사랑해 온 부인(별명이 엄지)은 종합병원을 전전하며 그의 생명을 이어 놓았다. 그래서 재활운동을 시작했고, 마침내 지난 98년부터 권투 지도자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오기가 그를 이종격투기선수로 변신케 했다. 그의 온 몸 피부는 숨구멍이 막혀있다. 살짝 스쳐도 정상인보다 아프다. 그리고 한쪽 주먹은 제대로 쥐지 못한다. 아킬레스건이 잘렸던 왼발은 오른발보다 근육도 발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온 몸을 부딪치며 ‘맞짱’뜨는 종합격투기에 강자로 등장한 것이다. 영화 같은 삶이 바로 우리 곁에 있었다. 이길우 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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