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국 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 장대높이뛰기 한국기록 작성에 실패한뒤 함께 포즈를 취한 이원(오른쪽)씨와 최윤희. 지난 4일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국 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 장대높이뛰기 한국기록 작성에 실패한뒤 함께 포즈를 취한 이원(오른쪽)씨와 최윤희.](http://img.hani.co.kr/section-kisa/2005/06/13/00600000012005061302500084-.jpg)
지난 4일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국 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 장대높이뛰기 한국기록 작성에 실패한뒤 함께 포즈를 취한 이원(오른쪽)씨와 최윤희.
인생이 장대높이뛰기 같았습니다 고교시절 싸워서 제적당했다. 권투를 하던 탓에 ‘쌈짱’이었다. 6개월 뒤 학교에선 복교를 받아줬다. 대신 조건부였다. 육상부에서 운동하라는 조건이었다. 육상부에선 투포환을 하라고 했다. 별로 재미가 없었다. 장대높이뛰기가 흥미로웠다. 제일 높이 뛰는 후배를 불러 팔씨름, 100m 달리기를 해보니 이길 수 있었다. 그 후배보다 키도 컸다. 그 길로 집에 돌아와 뒷산의 잘 자란 대나무를 잘라 장대를 만들었다. 그리곤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됐다. 한국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신기록 제조기 최윤희(19)를 발굴해 지도하고 있는 이원(65·전북 육상연맹 부회장)씨는 인생 자체가 아슬아슬한 장대높이뛰기이다. 그는 국내 장대높이뛰기에서 곧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고교생임에도 전국체전에 가선 일반부를 제치고 우승했다.
고교시절 ‘쌈짱’ 에서 선수로
63년 국가대표 선발전서 중상
좌절 딛고 지도자의 길 개척
신기록 제조기 최윤희 발굴
“못이룬 꿈 제자가 이뤄주길” 마치 그가 쥐고 달린 대나무처럼 쭉쭉 기록도 올랐다. 한양대에 스카우트됐다. 그리고 입대해서 육군본부(현 상무)소속으로 64년 도쿄올림픽 장대높이뛰기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갔다. 때는 1963년 가을, 장소는 효창운동장. 이 선발전에서 그는 왼쪽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 당시에는 매트가 없었다. 매트대신 모래밭에 떨어져야 했다.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물론 가로대(바)를 넘은 뒤 지금은 등부터 떨어지나 당시는 발부터 떨어져야 했다. 이미 여러 차례 근욱이 파열됐으나, 뼈가 부러진 뒤에는 정상적인 선수 생활을 할 수 없었다.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 나가 태극기를 휘날린다는 기개는 담배연기처럼 허공에 사라졌다. 서울에서 이것저것 사업을 하다가 낙향한 이씨는 교육청에 근무하면서 오후에는 학생들에게 장대높이뛰기를 가르쳤다. 그러다가 최윤희를 발견했다. 한 초등학교 운동장을 갔는데, 남자애들과 축구를 하는 키가 큰 여자애를 본 것이다. 이미 그 여자애는 태권도가 2단이었다. 장대높이뛰기는 주력과 장대를 잡는 악력, 그리고 높이를 두려워하지 않는 담력 등이 필요한 어려운 운동이다. 현재 대학교 이상의 선수는 불과 20여명. 초등학교 시절부터 넓이 뛰기 등 육상 선수에 입문한 최윤희는 김제 금성여중에 들어가면서 이씨로부터 기술을 전수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2번의 한국기록을 갈아 치우며 이미 ‘마(魔)의 4m’를 넘었다. 이씨의 윤희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171㎝, 59㎏ 시원스런 신체에 ‘얼짱’으로 꼽히고 있는 윤희는 현재 공주대 기숙사에서 산다. 이씨는 윤희가 혹시 간식거리를 사러 밤길을 가다가 남학생들로부터 애정 공세를 받을 것을 걱정해 기숙사에 간식거리를 항상 채워 놓는다. “공부 따라 가기도 힘든데 연애까지 하면 운동은 끝이죠.” 이씨는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윤희가 풀어주길 바란다. “윤희는 연내에 4m20, 내년까지는 4m40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 있는 표정이다. 현재 아시아기록은 4m52(가오슈잉·중국). 4m40이면 아시아권 대회에선 메달 색갈이 문제이다. 한때 ‘쌈짱’과 ‘얼짱’의 만남. 그들이 연출하는 신기록 행진을 지켜보자. 글·사진 이길우 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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