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원
유니폼 여섯번 갈아입었지만…
‘여수 코리아텐더’ 못잊어
부도직전 ‘눈물의 4강신화’
“내 인생의 전환점” 감회 그날 밤 남쪽 바다가 감동으로 출렁였다. 여수 시민들은 만세를 불렀다.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2003년 3월17일, ‘헝그리 구단’ 여수 코리아텐더가 4강 신화를 창조했다. 무명 선수들이 번갈아 폭죽처럼 3점슛을 터뜨리며 ‘부자 구단’ 서울 삼성을 격침시킨 것이다. 코리아텐더는 부도 직전이었다. 주요선수 1명을 다른 구단에 판 돈으로 겨우 리그에 참여했다. 그런 팀이 4강에 오른 것이다. 당시 코리아텐더 김호겸 사무국장(현 KT&G 사무국장)은 4강 신화 3인방으로 이상윤 감독, 에릭 이버츠, 그리고 황진원(29)을 꼽았다. 코리아텐더는 그해 11월, KTF로 넘어갔고, 연고지도 부산으로 바뀌었다. 4강 주역 황진원은 올 시즌 KTF를 떠나 안양 KT&G에 새 둥지를 틀었다. 황진원은 요즘 여수에서 맹훈련중이다. 팀이 여수에 전지훈련 캠프를 차린 덕분이다. 오랜만에 찾은 여수는 2012년 해양박람회 유치를 앞두고 활기가 넘쳤다. 그는 지금도 여수에서 “시의원 출마해도 당선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많다. 당시 저돌적인 골밑 돌파와 시원한 3점슛으로 시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2일 저녁 선수단 팬 사인회에서도 팬들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그는 “옛날 생각 많이 난다. 팬들이 틈만 나면 힘내라고 갓김치와 고들빼기를 가지고 왔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곳”이라며 감회에 젖었다. 일부 팬들은 “KT&G가 여수로 연고지를 옮기면 안되느냐”고 농담을 던졌다. 황진원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우유 공짜로 주겠다”는 농구부 코치의 ‘유혹’에 넘어가 처음 농구공을 만졌다. “어릴 적 뛰고 노는 것을 좋아했어요. 처음엔 육상부에 들어갔었죠.” 마산동중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농구를 배웠고, 농구명문 마산고와 중앙대를 거쳐 2000년 프로에 뛰어들었다. 그는 화려하진 않지만 어느 팀이건 탐내는 소금같은 존재다. 그러다보니 비시즌 때 ‘트레이드 카드’로 딱 알맞았다. 삼성을 시작으로 무려 6번이나 팀을 옮겼다. 그러나 우승컵은 한번도 품어보지 못했다. KT&G 유니폼을 입은 뒤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황진원은 지난 5월 딸을 얻었다. 자신과 아내(유혜영)의 이름을 한 자씩 따 ‘영원’이라고 지었다. 등번호도 자신(9월24일)과 딸(5월24일)의 생일을 기념해 ‘24번’으로 정했다. 그가 여수 앞바다 모래사장과 고락산에서 입에 단내가 나도록 몸을 던진 이유는 세가지다. “딸의 이름으로, 여수의 이름으로, 그리고 KT&G의 이름으로 꼭 우승하고 싶어요.”
글·사진 여수/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부도직전 ‘눈물의 4강신화’
“내 인생의 전환점” 감회 그날 밤 남쪽 바다가 감동으로 출렁였다. 여수 시민들은 만세를 불렀다.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2003년 3월17일, ‘헝그리 구단’ 여수 코리아텐더가 4강 신화를 창조했다. 무명 선수들이 번갈아 폭죽처럼 3점슛을 터뜨리며 ‘부자 구단’ 서울 삼성을 격침시킨 것이다. 코리아텐더는 부도 직전이었다. 주요선수 1명을 다른 구단에 판 돈으로 겨우 리그에 참여했다. 그런 팀이 4강에 오른 것이다. 당시 코리아텐더 김호겸 사무국장(현 KT&G 사무국장)은 4강 신화 3인방으로 이상윤 감독, 에릭 이버츠, 그리고 황진원(29)을 꼽았다. 코리아텐더는 그해 11월, KTF로 넘어갔고, 연고지도 부산으로 바뀌었다. 4강 주역 황진원은 올 시즌 KTF를 떠나 안양 KT&G에 새 둥지를 틀었다. 황진원은 요즘 여수에서 맹훈련중이다. 팀이 여수에 전지훈련 캠프를 차린 덕분이다. 오랜만에 찾은 여수는 2012년 해양박람회 유치를 앞두고 활기가 넘쳤다. 그는 지금도 여수에서 “시의원 출마해도 당선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많다. 당시 저돌적인 골밑 돌파와 시원한 3점슛으로 시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2일 저녁 선수단 팬 사인회에서도 팬들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그는 “옛날 생각 많이 난다. 팬들이 틈만 나면 힘내라고 갓김치와 고들빼기를 가지고 왔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곳”이라며 감회에 젖었다. 일부 팬들은 “KT&G가 여수로 연고지를 옮기면 안되느냐”고 농담을 던졌다. 황진원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우유 공짜로 주겠다”는 농구부 코치의 ‘유혹’에 넘어가 처음 농구공을 만졌다. “어릴 적 뛰고 노는 것을 좋아했어요. 처음엔 육상부에 들어갔었죠.” 마산동중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농구를 배웠고, 농구명문 마산고와 중앙대를 거쳐 2000년 프로에 뛰어들었다. 그는 화려하진 않지만 어느 팀이건 탐내는 소금같은 존재다. 그러다보니 비시즌 때 ‘트레이드 카드’로 딱 알맞았다. 삼성을 시작으로 무려 6번이나 팀을 옮겼다. 그러나 우승컵은 한번도 품어보지 못했다. KT&G 유니폼을 입은 뒤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황진원은 지난 5월 딸을 얻었다. 자신과 아내(유혜영)의 이름을 한 자씩 따 ‘영원’이라고 지었다. 등번호도 자신(9월24일)과 딸(5월24일)의 생일을 기념해 ‘24번’으로 정했다. 그가 여수 앞바다 모래사장과 고락산에서 입에 단내가 나도록 몸을 던진 이유는 세가지다. “딸의 이름으로, 여수의 이름으로, 그리고 KT&G의 이름으로 꼭 우승하고 싶어요.”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