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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해체 설움에서 MVP 영예까지

등록 2007-06-01 19:42수정 2007-06-01 20:05

<b>최광희는 누구 </b> <br>경기도 화성에서 1974년 4월7일 출생 / 성호초-수일여자중-한일여고-경희대(스포츠지도학)-경희대대학원 / 1m74/73㎏ / 한일합섬(1992년~1998년)-KT&G(1998년~2007년 5월) / 올림픽 대표 3차례/아시아경기대회 대표 1차례 / 2004년 배구대상 최우수선수/2005년 V-리그 챔프전 최우수선수
최광희는 누구
경기도 화성에서 1974년 4월7일 출생 / 성호초-수일여자중-한일여고-경희대(스포츠지도학)-경희대대학원 / 1m74/73㎏ / 한일합섬(1992년~1998년)-KT&G(1998년~2007년 5월) / 올림픽 대표 3차례/아시아경기대회 대표 1차례 / 2004년 배구대상 최우수선수/2005년 V-리그 챔프전 최우수선수
[36.5˚C 데이트] 23년 정든 배구코트 떠나는 최광희

그의 태몽은 이랬다. “배구를 하고 있는데 길가에 둔 손수건을 뱀이 물어가더라.” 태몽 때문일까. 최광희(33)는 1992년 한일합섬에 입단해 2006~2007시즌 뒤 KT&G에서 최고령 현역선수로 마침표를 찍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 “키가 크다”는 이유 하나로 늦깎이로 배구를 시작한 그의 23년 코트 위 인생을 시작(1막1장)부터 끝(3막3장)까지 풀어봤다.

1막1장 배구인생은 합숙과 함께 시작됐다. 초등학교 시절 합숙소로 들어갈 때마다 버스터미널에서 어머니와 한편의 드라마를 찍었더랬다. “나는 가기 싫다고 울고, 엄마는 ‘그럼 그만두라고’ 울고.” 훈련이 힘들어 한번은 초등학교 배구 친구들과 합숙소에서 연탄 보일러 구멍을 열어 자살도 시도했다. 합숙소를 봐주던 할머니에게 들켜 다행히 미수에 그쳤다. 훈련 도중 체벌 때문에 오른쪽 귀 고막까지 터졌다. 그래도, 꿋꿋하게 버텼다. 어린 시절 배구는 그에게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지만 절대 관두고는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초등 합숙소서 배구 첫걸음
‘백조’신세되자 나홀로 연습
프로원년에 13년 무관 한 풀어
이젠 첫 ‘여성 배구감독’ 꿈

2막3장 1998년 1월 한일합섬 배구단이 IMF체제를 맞아 해체되면서 그는 ‘백조’가 됐다. 담배인삼공사(현 KT&G)가 그해 11월 팀을 창단할 때까지 10개월 간의 ‘백수생활’은 길었다. 당시 사귀고 있던 “4살 연상의 남자와 결혼할까”도 했다. 하지만 미련이 너무 컸다. 힘든 이별 뒤 나홀로 훈련을 시작했다. 추석날 아무도 없는, 굳게 잠긴 모교 한일여고 배구연습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반쯤 열린 화장실 창문까지 기어올라가기까지 했다. 뒤늦게 수능시험을 봐서 다음해 경희대 스포츠지도학과(야간)에 들어갔다.

3막2장 2005년 3월 배구연맹소개로 소아암을 앓고 있는 한 소년을 만났더랬다. (송)상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모, 이모”하면서 그를 따랐다. 만화책과 게임을 좋아하는 소년은 정이 넘쳤다. 선물로 받은 것은 감춰뒀다가 형에게 줬고, 엄마가 울까봐 아픈 내색도 잘 하지 않았다. 2006년 1월 상호는 영영 그의 곁을 떠났다. 지금도 가끔 그는 까까머리 소년 사진을 꺼내본다. “앞으로는 오래 만날 수 있는 외로운 노인분들을 만날까 해요. 상호가 너무 일찍 떠나니까 가슴 속에 크나큰 상처가 되어 남더라고요.”

3막3장 그는 90년대 장윤희 김남순(이상 한일합섬)부터 2000년대 김연경(흥국생명)까지 세대를 아우르며 함께 뛰었다. 13년 무관으로 지내다가 2005년 프로원년에 우승의 한도 풀었다. 비결은 꾸준한 자기관리. 30살 이전에는 콜라 같은 탄산음료도 절대 안 마셨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하루 2~3시간씩 했다. “나는 내 몸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예전에는 20대 중반이면 선수생활을 마감했는데, 제가 33살까지 했으니 후배들은 더 오랫동안 운동하겠지요.”

그는 “이제 배구인생의 3막이 끝났고, 이제 곧 4막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지도자생활을 시작할 지, 6개월 동안 브라질 연수를 다녀올 지 아직은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금 제가 멈춰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IMF 시절 팀이 없어졌을 때도 내 자신을 충전했던 것처럼 지금은 잠시 잠복기를 가진 뒤 꼭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거예요.” 그의 배구인생 마지막 목표는 “첫 여성 배구감독”이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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