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열전을 치르고 있는 아시안게임처럼 굵직한 국제경기가 개최되기 전에는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지냈던 종목들이 그리 드물지 않다. 인기종목과는 아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과 음지의 설움을 이겨낸 낸 비인기 종목들이 건져내는 금메달의 가치는 어떻게 표현하기 어렵다. 그런 선수들이야 말로 진정한 스포츠맨으로 추앙받아 마땅할 것이며 그들에게 주어지는 포상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보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비인기 종목이라고까지는 할 수는 없지만 그리 대중화되지 못한 스포츠 가운데 양궁이 있다. 양궁은 지명도도 대단하고 쇼트트랙과 태권도와 더불어 국내챔피언이 바로 세계챔피언으로 인정되는 몇 안 되는 종목이어서 선발과 생존경쟁이 살인적일 정도로 치열하다. 그에 따라 두꺼운 선수층을 보유했지만 양궁이 본래 대중적 성향과 그리 가깝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태권도야 걸음마와 함께 배우는 것이며 쇼트트랙 역시 일반인들이 접하기에 그리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양궁을 잡아본 사람이 대체 몇 명이나 되겠으며 경기장을 찾아 양궁을 관람한 사람은 얼마나 되겠는? 우선 장비를 구하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며 배우기도 까다로운데다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렵다면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되어 선수 수급 자체가 곤란해야 할 것인데 이상하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쟁취하는 금자탑을 쌓았으며 이후에도 감히 양궁의 아성에 도전할 종목이 없을 지경이다. 결코 대중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에의 기여도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모습을 보면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다.
우리의 양궁을 일약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영웅은 바로 김진호(金珍浩) 선수다. 1979년 독일이 통일되기 훨씬 이전에 서베를린에서 열린 제3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 혜성 같이 나타난 김진호는 60m, 50m, 30m의 개인 및 종합우승을 석권해버렸다. 육상이나 수영을 제외하면 세계선수권에서의 4관왕은 극히 드문 것이었다. 그야말로 세계가 경악했고 우리나라는 발칵 뒤집어졌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양궁이라는 종목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지만 이름도 몰랐던 조국의 딸이 세계에 우뚝 선 것을 너무나 감격스러워했다. 탁구의 이에리사가 사라예보의 세계선수권에서 일궈낸 우승과 더불어 초창기에서 그리 벗어나지 못한 한국스포츠가 거둔 일대 쾌거였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김진호를 선봉에 내세운 여자양궁은 세계선수권과 월드컵을 위시한 국제대회를 휩쓸기 시작했다. 신화의 개척자이며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하던 김진호는 선수생활의 대미(大尾)를 올림픽의 우승으로 장식하고 싶어 했다. 그때까지 올림픽에서의 우승경험이 없었지만 김진호의 실력으로는 그리 어려울 것은 없어보였다. 레벨이 다른 실력에다 유달리 강한 승부근성을 보유한 김진호는 여유 있게 대표선발전을 통과하였고 마침내 1984년 미국의 LA에서 개최된 올림픽의 결승에 올랐다. 김진호의 금메달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금메달의 주인은 김진호가 아니었다. 반란의 주인공은 아직 여고생으로서 같은 대표 팀의 일원이었던 서향순, 결승에서 격돌한 서향순의 반란에 양궁의 여제(女帝)는 비참하게 패배했다. 김진호은 비통하게 눈물을 뿌리며 활을 거두었지만 그것은 올림픽 6연패라는 일대위업의 출발이기도 했다. 자랑스런 우리의 딸들은 1984년 LA 올림픽부터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 개인전의 금메달을 빼앗기지 않았다. 무려 24년에 이르도록 올림픽을 주름잡은 위대한 역량은 대체 어디에서 발원하였다는 말인가? 본래부터 주몽의 후예들이라서 활에 대해서는 천부적인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김진호라는 불세출의 슈퍼스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이제는 남자들도 정신을 차려(?) 빛나는 금메달의 전통을 수립하고 있으니 참으로 대견스럽기 그지없다. 그런데 활을 조금 아는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양궁은 우리의 활과 전혀 다르다. 활의 외형적 구분은 활줄을 풀었을 때 의 모양에 의한 것인데, 외형으로 직궁(直弓)이며 재질로 보아서도 단일궁(單一弓)에 속하는 양궁과 극단적인 만곡(彎曲)의 형태에다 재질도 여러 가지가 복합된 우리의 활은 본질적으로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 선수들이 중세의 서양에서 주력무기로 사용하던 롱보우(long bow)에서 파생된 것 같은 양궁을 쏘는 모습은 확실히 어딘가 어색하다. 하기야 아무려면 어떤가, 양궁이든 뭐든 간에 잘 쏴서 금메달 따면 그만이겠지만 정작 문제는 경기의 진행방식에 있다고 할 것이다. 양궁은 전형적인 기록경기임에도 불구하고 경기방식은 격투기의 그것을 채용하고 있다. 개인전에서 선수들을 2명씩 토너먼트로 대결시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양궁과 함께 쏘아 겨루는 대표적인 기록경기인 사격에서는 결승에 진출한 모든 선수가 일렬로 서서 솜씨를 겨루지 않는가? 종목은 다르지만 육상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 올림픽 육상의 100미터나 200미터 결승에서 토너먼트 방식을 채용하여 최종적으로 남은 2명이 결승전을 벌이는 것을 보았는가? 당연히 절대적 평가가 채용되어야 할 기록경기에서 격투기에나 적합한 토너먼트 방식이 사용되는 것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우리나라 선수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나라 여자선수들을 견제하자는 목적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인 기록경기 방식으로는 조 예선을 통과하면 바로 결승이지만 지금 사용되는 방식으로 결승까지 오르려면 무려 다섯 번을 싸워 이겨야 한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우월한 서양 여자선수들이 유리할 것이다. 게다가 중인환시(衆人環視)에 단 둘이 맞붙는 것에서 오는 심리적인 부담도 그리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아무리 외형적으로 같은 조건이라고는 하지만 본래부터 개방적이어서 덜컥 애를 배어도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서양여자들과 유교적 교육으로 인해 소극적이며 수줍음을 많이 타는 우리의 어린 딸들이 어떻게 같을 수 있다는 말인가? 지금의 경기방식은 우리의 특성을 파악하여 이용하려는 악의적 시도에서 출발한 것이 분명하다. 불리하게 장치된 요소까지 극복하고 6연패를 이루는 것을 보노라면 정말이지 감격스럽다는 말밖에 달리 할 것이 없다.
그런데 정말로 분통이 터지는 것은 메달의 수효가 왕창 적어졌다는 것에 있다. 김진호가 데뷔할 때만 해도 60m, 50m, 30m의 거리 별 종목이 있었으며 종합우승까지 있었지만 이제는 달랑 개인전과 단체전 두 종목뿐이다. 사격과 비견되는 양궁에서 거리 별로 종목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임에도 언젠가부터 슬그머니 2개로 줄어들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딸들을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으니 기왕에 빼앗길 것 같으면 아예 금메달 개수를 왕창 줄여버리겠다는 심보인데 그야말로 놀부가 울고 갈 지경이다. 세상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분통이 터지다 못해 혀를 빼물고 나자빠질 지경이다.
정당하게 겨루는 단순한 미덕이 제일로 추앙받는 스포츠맨십이 통하지 않은지 이미 오래다. 특히 포퓰리즘이 진하게 채색되는 올림픽의 오염도는 매우 심각하다. 크게는 히틀러가 베를린에서 치러진 올림픽을 정치선전의 도구로 활용한 것을 말할 수 있겠고, 작게는 솔트레이크에서 벌어진 동계올림픽에서 9.11을 상징하는 찢어진 성조기를 들고 입장했던 미국이 김동성의 손에 잡힌 금메달을 빼앗아 안톤 오노의 목에 걸어준 것을 샘플로 제시할 수 있겠다. 힘 좀 있다고 해서 다른 나라의 국민들이 상처를 받건 말건 제 하고 싶은 대로 노는 꼴은 스포츠의 세계에서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강한 자에게 겸손까지 주문하는 것은 애당초 될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우리의 아들딸들이 금메달을 따기를 바라고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바라는 것을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포퓰리즘의 포로가 아닐까 한다.
나도 이제는 메달 하나 쯤은 욕심내고 싶은 나이가 된 것 같은데 메달 대신 해고통지를 받고보니 너무나 서글프고 처량하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양궁이 제패하는 것을 지켜보며 시름을 달랠까 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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