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민상 수영 대표팀 감독
박태환 뒤에는 노민상 감독 있었다
“한국 수영의 한을 풀고 싶었다.”
박태환(17·경기고2)의 수영 3관왕 위업 뒤에는 노민상(50) 경영 총감독의 ‘집념의 10년’이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박태환은 노 감독의 인생이자 꿈이 되어버렸다.
노 감독이 박태환을 처음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7살 때. 천식 치료를 위해 수영을 시작한 박태환이 노 감독의 수영클럽을 찾으면서 인연은 시작됐다. 박태환은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낸 건 아니었다. “처음엔 그저 부모의 지나친 열의 때문에 들어온 아이로 생각했다”고 노 감독은 10년 전을 회상한다.
그러던 태환이 8살 후반부터 소질을 보였고,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소년체전에 나가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노 감독은 “박태환의 뛰어난 심폐지구력은 12살 이전의 시기, 꾸준한 유산소 운동으로 길러진 결과”라고 말한다. 지금은 폐활량 7000㏄나 되는 박태환의 심폐지구력은 노 감독의 조기교육으로 형성된 것이다.
박태환에게 쏟는 정열은 갈수록 커졌다. 노 감독은 “태환이라면 국제대회마다 망신만 당하는 한국 수영의 한을 풀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고 말한다.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으로 ‘될성부른 떡잎’은 쑥쑥 컸다.
대표팀 감독이 아니어서 박태환이 태릉에 들어가면 훈련을 시킬 수 없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부정출발로 실격을 당했을 때는 박태환의 아버지와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나누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러나 7월 수영대표팀 경영 사령탑에 선임되면서 대표팀을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평생 스승을 사령탑으로 맞은 박태환은 8월 범태평양수영대회에서 금 2, 은메달 1개를 따냈다. 노 감독은 이 대회에서 아시아 신기록 및 한국 신기록을 13개나 작성했다. 이번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금3, 은2, 동메달 11개로 한국 경영 사상 최고성적을 일궈낸 것은 그의 높은 지도력의 방증이다.
무언가 이뤘다는 기쁨에 찬 노 감독은 “젊은 수영 지도자들이 열심히 하고 있다. 앞으로 제2의 박태환이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라며 한국 수영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한편, 이번 대회 경영에서는 중국(금16 은22 동6)이 은메달 수에서 일본(금16 은14 동17)을 제쳤지만, 총 메달 수에선 일본이 3개 차로 앞섰다. 또 114개의 총 메달 중 80%를 쓸어간 중국과 일본을 제외하면 박태환이 3개의 금메달을 딴 한국을 비롯해 카자흐스탄과 싱가포르, 시리아 네나라만이 금메달을 따냈다. 도하/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한편, 이번 대회 경영에서는 중국(금16 은22 동6)이 은메달 수에서 일본(금16 은14 동17)을 제쳤지만, 총 메달 수에선 일본이 3개 차로 앞섰다. 또 114개의 총 메달 중 80%를 쓸어간 중국과 일본을 제외하면 박태환이 3개의 금메달을 딴 한국을 비롯해 카자흐스탄과 싱가포르, 시리아 네나라만이 금메달을 따냈다. 도하/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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