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우 선임기자 ‘한여름에 달린 42.195㎞’
서울대공원 동물원 안팎 돌기
고무호스 물세례로 활력 충전
평소기록 훌쩍 넘겨도 월계관
열무비빔밥·막걸리 소풍 기분
고무호스 물세례로 활력 충전
평소기록 훌쩍 넘겨도 월계관
열무비빔밥·막걸리 소풍 기분
이길우 선임기자 ‘한여름에 달린 42.195㎞’
삼복 더위 속에 매미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아스팔트 언덕을 오르는 다리는 뻑뻑하기만 하다.
이름하여 ‘혹서기 마라톤대회’.
30도를 훌쩍 넘은 여름 한복판에 열리는 이색 마라톤대회이다.
한달전 인터넷 참가 신청 시작 30분만에 마감이 될 만큼 국내 마라톤 마니아들에겐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혹서기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12일 열린 대회 장소는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 동물원 내부와 코끼리 열차 코스를 7㎞가량 달린뒤 동물원 외곽 코스(약 7㎞)를 5번 왕복한다. 거리는 42.195㎞의 풀코스.
오전 8시에 출발하기에 오전 7시께 과천 서울대공원에 도착했는데, 이미 참가자 차량의 행렬이 꼬리를 문채 주차를 기다린다.
스트레칭에 이어 이번 대회 참가로 풀코스 100회를 기록하는 2명의 참가자에게 기념패를 주는 행사를 마친뒤, 출발이다.
출발선 앞에는 여자 마스터스 ‘몸짱’으로 유명한 김영아(32)씨와 감전 사고로 양 손이 없는 장애임에도 2시간 30분대로 풀코스를 뛰는 김영갑(33)씨 등 아마추어 마라톤 유명 인사들이 호흡을 고르고 있다.
이번이 풀코스 도전 14번째인 기자는 4시간 30분을 목표로 했다. 최고 기록(3시간 59분)보다 30분 늦춘 것은 삼복 더위에 무리해 몸을 상하지 않게 한다는 염려도 있지만, 마라톤 코스가 오르내리막이 심해 기록은 다른 대회보다 늦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대회를 올해로 7번째 주최하는 서울 마라톤클럽은 다른 마라톤 대회와는 달리 순위를 시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1300여명의 대회 출전자들은 대부분 ‘마라톤에 미친 사람’이라고 불렸을 정도의 마니아들. 복장과 몸매가 예사롭지 않다.
출발선에서 주최자는 “처음엔 걸으세요. 한바퀴 돌면 실감합니다”라고 외치며 초반 오버페이스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속도를 낸다. 첫 5㎞는 30분 페이스. 그러나 불곰과 늑대 우리를 지나 외곽코스로 빠지며 오르막이 시작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어 중반까지는 힘차게 달릴 수 있었으나 시간이 흐를 수록 자꾸 몸이 처진다.
군데 군데 물을 뿌려주는 장소와 얼음물 급수대, 수박과 메론, 오이, 배, 김밥 등을 먹기 좋고 풍성하게 차려 놓아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고무호스와 바가지로 시원하게 머리와 등에 물을 뿌려주는 자원봉사자는 “10분을 줄여 줍니다”라며 ‘호객 행위’를 한다.
키가 큰 플라타나스 이파리가 햇빛을 가려주긴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걷는 시간이 많아진다.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 참가자 몇분도 호흡을 조절하며 포기하지 않고 달린다. 같은 복장을 하고 다정하게 손잡고 달리는 부부 마라토너도 있다. 정상인과 끈으로 연결한채 달리는 시각장애인도 몇몇 참가했다. 사진기를 들고 달리니 곱절 힘이 든다.
두바퀴(약 12㎞)를 남기자 내리막에 걷는 것도 힘이 든다. 틈나는대로 소금과 얼음물을 마셔댔으나 대부분 땀으로 배출된다.
한바퀴를 남기자 앞뒤로 참가자가 띄엄띄엄이다. 이미 시간은 출발한지 5시간이 훌쩍 넘었다. 오전 8시에 출발했으니 오후 1시가 넘은 셈이다. 발바닥은 얼얼하고 허리는 자꾸 굽혀진다. 응원을 하는 자원봉사자과 어울려 흥겹게 춤도 추고, 배가 고파 도시락도 얻어 먹으며 걷다 뛰다 하니 마침내 결승점. 손목에 찬 마라톤 시계는 5시간 45분 50초를 찍고 있었다.
주최쪽은 모든 완주자에게 월계수 관을 머리에 올려 기념 사진을 찍어준다. 그리고 맛있는 열무고추장 비빔밥과 막걸리, 수박 등으로 소풍 분위기를 돋우었다. 비공식 기록으로 1등은 2시간 51분, 꼴찌는 6시간 20분. 삼복 더위를 잊은 유쾌하고도 고된 휴일 한나절이었다.
과천/글·사진 nihao@hani.co.kr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벌어진 혹서기 마라톤대회 참가자들이 가쁜 숨을 내쉬며 언덕길을 오르고 있다.
더위에 지친 참가자들이 찬 물을 머리와 얼굴에 퍼부으며 기력을 회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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