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현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크리스털홀에서 열린 2023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남자 87㎏급 우승을 확정한 뒤 기뻐하고 있다. 세계태권도연맹 제공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목표가)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만 나가자’였다. 최종 선발전에서 2등을 하고 나니까 ‘국가대표 하고 싶다’ 이렇게 갔다. 국가대표가 되고 나니까 ‘세계 대회 나가서 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
강상현(21·한국체대)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거창한 청사진을 그리기보다는 지근거리에 당면한 미션만 바라보고 달렸다. 때로 넘어지고 돌아가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한 계단 한 계단 밟아가며 꿈을 쟁취했다. 그는 “단계별로 목표를 보다 보니 이루어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올해 처음 태권도 대표팀 1진에 선발된 강상현이 생애 첫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강상현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크리스털홀에서 열린 2023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남자 87㎏급 결승전에서 크로아티아의 아이반 사피나(24)를 라운드 점수 2-0으로 제압하고 정상에 섰다. 한국 선수가 이 체급에서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한 것은 2005년 마드리드 대회 오선택 이후 18년 만이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강상현은 마우스피스를 멀리 던지며 포효했다.
“큰 의미는 없었다. 제 안의 긴장감과 스트레스가 한 번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라고 세리머니 의미를 설명한 강상현은 그야말로 ‘혜성’이었다. 올해 2월 국가대표선발전에서 패자부활전을 거치며 어렵사리 태극마크를 달았고, 처음 밟은 세계선수권 무대에서도 매 라운드 힘겨운 경기를 했다. 강상현은 이날 치른 다섯 경기 중 세 경기를 역전하거나 역전당할 뻔하며 헤쳐 갔다.
백미는 준결승이었다. 세계태권도연맹(WT) 랭킹에서 강상현(29위)보다 열 계단 낮은 이란의 아리안 살라미(20·39위)를 만나 혈투를 벌였다. 1라운드를 9-6으로 따내고 돌입한 2라운드, 시작 7초 만에 머리(3점)를 얻어맞았으나 4초 만에 똑같이 갚아주는 것을 시작으로 둘은 16점을 주고받았다. 강상현은 경기 뒤 “지난 그랜드슬램(3월, 중국 우시)에서 졌던 상대였다. 가장 까다로웠다”라고 돌아봤다.
강상현(오른쪽)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크리스털홀에서 열린 2023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남자 87㎏급 크로아티아의 아이반 사피나(24)와 결승전을 치르고 있다. 세계태권도연맹 제공
그러나 세계 무대의 강자들도 강상현의 맹진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강상현은 16강에서 랭킹 1위 이카로 미구엘 소아레스(브라질), 8강에서 7위 아흐메드 라위(이집트), 결승에서 2위 사피나를 꺾었다. 그는 “제 체격이 세계로 나가면 왜소한 편일 수 있지만, 그게 단점만은 아니다”라며 “중량급에서 상대가 저보다 느리다고 생각하고 스텝과 움직임으로 상대를 까다롭게 만들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경기에서 밀릴 때마다 “나도 힘든데 상대는 더 힘들 것이다. 내가 여기서 하나만 더 보태면 할 수 있다”라고 되뇌며 평정을 찾는다는 그는 이미 올해 목표를 두 번(국가대표 발탁, 세계선수권 우승)이나 이뤘다. ‘다음’을 묻는 말에 그는 “올림픽에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나간다면 진짜 후회 없이 해보고 싶다”라고 답했다.
바쿠/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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